그동안 우리에게 파리는 무슨 색이었나. 흑백으로 표현되는 이 영화는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들의 역사가 깃든 파리의 이미지를 반전시킨다.

‘파리’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낭만과 아름다움을 가장 큰 아시아타운인 파리 13구에 빗대어 아이러니하게 해석한다.

낭만이라는 이미지에 감춰진 고독과 우울에 대하여 영화는 우리에게 알려진 ‘낭만의 파리’가 사실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적어도 현재로선 말이다.

ⓒ파리, 13구
ⓒ파리, 13구

네 명의 캐릭터가 등장해 현대의 사랑을 스케치한다.

명문대를 졸업한 뒤 콜센터에서 일하는 대만계 프랑스인 에밀리, 선생님이 되고 싶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부딪혀 부동산업에 뛰어든 아프리카계 프랑스인 카미유, 상처받았던 사랑을 잊고 다시 학업을 시작하려는 노라, 자신의 몸과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캠걸 앰버 스위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펼쳐진다.

이들은 파리에 살고 있으며,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하지만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사랑의 의미는 희미해져간다.

극 초반, 흑과 백으로 보여지는 화면엔 젊은이들의 고독한 일상과 가볍기를 희망하는 육체적 관계만이 존재한다.

영화의 감독인 자크 오뒤아르는 한 인터뷰에서 ‘요즘의 연애’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와 잠자리의 순서가 바뀌어도 사랑이 가능한지에 대해서이다.

오뒤아르는 현재의 연애가 과거의 연애와는 다르며 그 과정이 뒤바뀐 채라고 말한다. 

영화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이 갈 곳을 잃기 시작한 지점에서 말이다.

직접적인 대화보다 텍스트 전달이 쉬운 요즘의 관계 안에서 더욱 강조되는 건 사랑의 필요성이다.

에밀리의 사랑을 거부하는 카미유가 노라에게 보다 깊은 관계를 원하는 것은 흔한 삼각관계처럼 여겨지지만 영화 내부에서 실제 이들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표현된다.

여러 상대와의 가벼운 만남이 지속되는 건 한 상대에게 정착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에밀리와 잠자리하는 스케쥴을 만들지만 일상과 개인 사정까진 공유하지 않는 카미유가 그렇다.

관계에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서로에게 일정 이상의 관심도 거부하는 카미유는 에밀리와 육체적, 정신적 관계를 완전히 분리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꿈에 대한 불안이 증폭된 젊은 세대를 표상한다.

영화는 쾌락 목적의 잠자리가 주는 삶의 기쁨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파리, 13구
ⓒ파리, 13구

소비자를 향한 성적인 언행이 문제가 되어 해고당한 에밀리는 중국 다이닝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일을 하던 도중 잠시 자리를 비운 에밀리는 앱에서 만난 익명의 남자와 잠자리를 한 뒤 돌아온다.

쾌락지수를 채운 에밀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해맑은 웃음과 함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춤을 푼다.

감정에 가장 솔직한 캐릭터를 선두로 인생을 보다 만족스럽게 만드는 지점이 무엇인지 유쾌하게 들춰내며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필요성만큼 육체적 쾌락 또한 삶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크 오뒤아르 감독이 요즘의 연애, 청춘들에게 느낀 새로움은 이전과 다르게 해석되는 육체적 관계에 있을 것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이후 호감을 통해 시도되었던 전과 달리, 현재에는 단순히 앱을 통해 사람을 고르고 목적만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라와 앰버는 에밀리, 카미유와 반대로 먼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을 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앰버 스위트는 돈을 받고 쾌락을 주는 캠걸이며, 노라는 앰버 스위트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만 상처 받은 노라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신과 닮은 앰버 스위트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소통하는 것이다. 

'파리, 13구'에 가장 낭만적인 씬을 고르라면 노라와 앰버스위트가 실제로 만나게 되는 장면일 것이다.

온라인 속 익명이 아닌 실제 주체로써 마주하는 그 순간 노라는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쓰러진다.

이는 온라인의 한계를 표현하는 동시에, 두 사람이 사랑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노라가 받은 쓰러질만큼의 충격은 감독이 현 세대에게 말하고자 한 과거의 사랑방식에 따른 감동이며, 이러한 사랑들을 옴니버스로 표현해 한 지역에 공존하는 두가지의 사랑법을 대조하며 사회 속 다양성을 강조한다.

자크 오뒤아르 감독은 그가 연출했던 영화 '러스트 앤 본'에서 상실의 순간에 더욱 뚜렷해지는 사랑에 대해 표현한 바 있다.

ⓒ파리, 13구
ⓒ파리, 13구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문득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카미유는 가족을 잃고 자신과 같은 상실을 갖게 된 에밀리를 사랑하게 된다.

감독은 사랑이 설레이는 낭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슬픔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주제성을 강조한다.

불필요한 사랑은 없다. 굳이 모든 게 사랑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관계를 정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쁨을 점차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기에, 사랑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인종과 젠더에 구분되어지지 않고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진화되어진 현대의 사랑방식을 응원하며, 일상을 기꺼이 채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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