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학동참사 유가족 대표 이진의입니다. 

아직까지 차마 떼어내지 못한 어머니의 영정사진 아래 쭈그려 앉아 고인들을 위한 추모사를 쓰고 있자니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일 년이 지났지만 그 원통함은 커져만 갑니다. 매일 밤 눈물로 삭이던 고인들에 대한 그리움과 설움은 처음 생긴 그 자리에 그대로 뿌리내려 더 크게 부풀고, 비극적 사고 이후 몸과 마음 이곳저곳에 생겨난 크고 작은 상처들은 아물 틈도 없이 계속해서 벌어져만 갑니다.

시간은 잔인하게 흐릅니다.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건물붕괴 참사 1주기 추모제가 9일 오후 참사 현장에서 열린 가운데 김연우 무용가가 진혼굿을 공연하고 있다. ⓒ예제하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건물붕괴 참사 1주기 추모제가 9일 오후 참사 현장에서 열린 가운데 김연우 무용가가 진혼굿을 공연하고 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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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참사 1주기 추모제에서 이진의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예제하

유월이 되어서인지 주위에선 그동안 유족에게 조금이라도 상처가 될까 차마 꺼내지 못했던, 참사의 후속조치에 대한 걱정어린 안부 말씀들을 건네주십니다. “다음 주 목요일이 어머니 기일이다”라고 하면 “아... 벌써 일 년이 되었냐.”며 놀라워합니다.

벌써, 이제 일 년이 지났습니다.

2021년 6월 9일, 그리고 장례를 치르던 나흘 동안 우리 유가족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유도 모른 채 경황없이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지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가장 비참하고 끔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고 무얼 먹으며 견뎌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에 휩싸인 채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심경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우리 딸, 내 아들이 그래도 나와 가까이 있었던 그날. 그분들이 재가 되기 전에 허락되었던, 짧게 주어진 이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예제하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예제하

그분들은 일말의 저항도 허락하지 않은 거대한 건축 쓰레기에 짓눌려 그토록 괴롭게 눈을 감았음에도 내가 죽은 이유, 본인의 사망원인을 밝히려 이미 해체되고 차가워진 몸을 그보다 더 차가운 부검대 위에 뉘여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때, 손이라도 잡을 수 있었을 때, 얼굴이라도 쓰다듬을 수 있었을 때, 발이라도 어루만져볼 수 있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분들을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 상처 난 곳을, 짓이겨진 상처들을 언제까지고 어루만져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악몽이더라도 악몽에서라도 우리 엄마를, 아버지를, 우리 딸, 내 아들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지난해 9월 21일, 참사 이후 처음 맞는 추석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첫 번째 추모제를 지냈습니다.

그날 저희는 부끄러운 죄인들이 된 것 같았습니다.

어찌 몇몇 문자와 문장으로 이분들에 대한 그리움을 형용할 수 있겠냐며 부끄럽고 죄인이 된 것 같다.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 있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하지만 참사가 발생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죄인의 마음과 울분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학동참사 1주기 추모제에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예제하
학동참사 1주기 추모제에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예제하

우리는 참사 이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심지어 생업을 포기하고 일상 회복을 미뤄둔 채 참사의 제물로만 고인들을 추억할 수는 없다며, 더 이상의 희생물을 만들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더 이상 이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인재사고는 없어야 한다,

우리 이웃들을, 시민들을, 사람을 지켜 달라고 외쳤습니다.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현재 건설 중인 현장의 안전사고에 대한 감시와 경고를 확실히 하라 요청하고 읍소하며 열심히도 목소리를 내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2022년 1월 11일, 학동참사 발생 7개월 만에 또 다시 여섯 분의 무고한 시민이 고인이 되었습니다.

화정동 참사가 발생하고 우리 유가족은 다시 한 번 극도의 우울증과 무력감,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죄송했습니다. 화정동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롭고 또 고통스러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화정 아이파크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신 여섯 분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여섯 유가족께도 감히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제하
ⓒ예제하

일 년이 지난 지금, 학동 참사의 진상 규명 재판은 아직 1심 판결도 마무리되지 못했고, 관련 피의자와 증인들은 재판을 참관하는 유가족들을 조롱하거나, 진술을 번복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지목한 가해자들 상당수가 이미 책임과 처벌을 면했고, 당연히 주어질 것이라 믿었던 추모공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난항에 봉착해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일천여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이후 그 자리 위에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선 역사가 우리에게 다시 반복될 것 같아 원통한 심정입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그만큼 숨어서 우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시시때때로,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슬픔을 숨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아픔이 부끄러워서가 아닙니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의 평온한 마음에 내 슬픔이, 우리의 고통이 스며들까봐, 그래서 그들이 나와 같이 힘들고 불편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짖난해 6월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일어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 ⓒ예제하
짖난해 6월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일어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 ⓒ예제하

그래서 우리는 그 슬픔을 숨기는 게 타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더 나은 일이라 여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곳에 숨어서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되풀이될 뿐이지만, 그 기계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께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고 그리움의 하소연을 쏟아내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이제 고인이 된 아홉 분의 전화번호는 모두 주인이 바뀌어 ‘엄마’, ‘아빠’, ‘아들’, ‘딸’이라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지만 사실 그 보다 더 찬란할 수 없는 일상의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꿈도 많고 친구도 많던 고등학생은 더 이상 꿈을 꿀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없게 되었고, 세상 그 누구보다 착하고 예쁜 딸이 수의사 되기 위해 들였던 노력의 시간들은 한순간에 무의미해졌습니다.

돌아보면 순탄치 않은 고생스러운 인생이었지만 장성한 아들과 딸, 손주들을 보면 그동안의 고역들은 잊히고, 이제 고생은 그만 해도 될 것 같다, 이제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들을 환하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겠다 여긴 뿌듯함 들도 모두 헛된 것이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원통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울 뿐이지만, 또한 고인들의 명예회복이 이런 추모행사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걸 알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잠든 아홉 분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해주신 자리이니 오늘만큼은 저희도 비통하고 서러운 심정을 가라앉히고 고인들의 명복을, 평온한 휴식을 기원하겠습니다.

ⓒ예제하
ⓒ예제하

끝으로 그동안 유가족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릴 수 있도록, 바로 옆에서 함께 싸우고 도와주신 광주시민협의회 및 학동참사대책위 활동가님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또한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유가족의 호소와 슬픔을 함께 공유해주시는 시민 분들과 기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2년 6월 9일 

이진의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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