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조국’(감독 이승준)은 2019년,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되면서 각종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시점부터 임명 67일 만에 결국 장관직을 사퇴해야 했던 과정을 복기하며, 당시 검찰과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해졌던 여론재판의 실상과 은폐되었던 진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연출을 맡은 이승준 감독은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앞서 2018년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 2021년 의도치 않게 탈북자가 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자꽃>을 거쳐, 올해 내놓은 작품이 바로 <그대가 조국>이다.

정치적으로 갈등이 첨예한 이슈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이 세상의 병폐와 그로 인해 생긴 개인의 억울함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결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국 전 장관의 이야기는 이승준 감독에게 있어 우리사회의 병폐를 또 다른 시선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구로 작용한다.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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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의 순간을 증언하다

<그대가 조국>은 무소불위의 권력에 의해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검찰과 언론의 표적이 된 당사자 뿐 아니라 그의 주변인들의 삶조차 흔들리는 상황이 주는 괴로움을 상상할 수 있는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표현처럼 ‘당하지 않으면 모를’일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관객이 당장 내일이라도 내가 수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세운 듯하다.

조국 전 장관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출연하여 검찰 조사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데, 이를 평범한 일상의 모습과 병치시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라는 것을 꾸준히 환기시킨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1심 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최성해 전 총장의 위증이 담긴 자료화면 뒤에는 장경욱 동양대 교수의 논리적 반박이 담긴 인터뷰가 배치된다.

3년 전 재판에서는 쉽게 간과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당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증언들이었지만 이제는 이 영화를 통해 힘을 얻게 된다.

카메라에 담긴 장 교수의 진심 어린 눈빛과 표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학교에 출근하는 모습 등 일상성을 함께 담아내면서 그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한 개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편 동양대학교의 어느 조교는 이 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했다.

그는 직접 출연은 하지 않지만, 떨리는 목소리로만 등장하여 당시 강압적이었던 조사의 순간을 증언한다. 여기에는 어떤 거창한 대의도 바라는 대가도 없다.

정겸심 교수를 두둔하는 증언을 한다고 해서 그에게 주어질 이득도 없으니 말이다.

인권의식이 있는 한 시민으로서 그 자신이 겪었던 공포스러운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뱉어낼 뿐이다.

답답한 검찰 조사실 안에서의 기억은 어떤 구체적 재현 없이 말로 인해 묘사되지만 이를 듣는 관객의 머릿속에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켜켜이 쌓여온 중첩의 이미지.

어딘가 익숙한 조사와 심문, 그리고 고문의 이미지까지도 그려질지 모른다.

이와 비슷한 기억은 조국 전 장관 동생의 친한 지인에게도 깊게 남아있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검찰 조사 당시 들었던 ‘모욕적인 말’을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채 겨우 삼켜낸다.

촉촉해진 눈가가 그날의 치욕스러웠던 기억을 대신할 뿐이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죄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 내가 뱉은 말이 어떻게 악용될지 모른다는 공포,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이들의 얼굴, 목소리에 공통된 점은 하나같이 슬픔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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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온 정보는 이미 굉장히 치우쳐 있다”

이승준 감독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겸심 교수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접한 정보는 편향되고, 극히 일부분이라면서 <그대가 조국>은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 영화는 편중된 여론 형성에 크게 일조한 언론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논조를 보여주는데, 표적 수사를 목적으로 강압적 조사를 진행한 검찰만큼이나 가히 충격적이다.

조국 전 장관의 후보 지명 이후 우후죽순 흘러나온 여러 보도들.

이로 인해 인사청문회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결국 직접 기자간담회를 열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영화는 당시 간담회 영상과 각종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점철된 기사들을 콜라주하듯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영화에서도 말하듯, 권력을 지닌 자에 대한 잘못된 기사는 묵인되고 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때의 묵인이란 권력을 지닌 자는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구시대적 인식에 기인한다.

이로써 어떤 기사의 진위여부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며 사람들은 이 자극적인 프레임을 연예인들의 가십거리를 대하듯 가벼이 수용한다.

이 영화는 왜곡되고 편향된 기사를 무분별하게 퍼다 나르는 언론에 대한 비판의식과 더불어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우리의 모습까지 총체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애초에 검찰 개혁의 칼날을 갈고 있던 조국 전 장관을 대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표적 수사가 대전제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립을 지킬 자는 몇 없을지도 모른다.

이 무디고 무딘 재판 과정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날카롭고 구체적인 증거는 분명 존재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인간의 속성상 유죄 판결이라는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증거들은 무참히 사장된다.

여기서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인 언론은 검찰의 계획을 충실히 돕는 연합군처럼 그려진다.

이 영화의 가치는 이처럼 언론에서 보여주지 않은 것들을 역으로 드러내며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서서히 잡아가려는 것에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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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이 아닌 우리 조국을 수호하자

<그대가 조국>의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가고 이윽고 화면이 어두워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잔상은 2019년 ‘검찰개혁, 조국수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던 100만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이 잔상 위로 자연히 덧입혀지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광장 위 촛불의 형상일 것이다.

조국 전 장관 역시 (개인) 조국이 빠지더라도 이 집회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결국 이 영화는 단지 조국이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나라, 이 조국을 구하는 데 더 무게를 싣고 있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 사건으로 제 본심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 개혁의 국면에서 그들이 보여준 급박하고 강압적인 대응은 그만큼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조국의 개혁과 검찰의 수사가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교차로 제시되는 영화 속 몽타주를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방패로도 막을 수 없는 창, 혹은 어떤 창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

이러한 존재가 과연 우리 사회에 존재해도 되는 것일까?

영화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그에 관한 답을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한편 지난 25일 개봉한 <그대가 조국>은 개봉 첫 주 16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큰 관심을 얻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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