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의 음악칼럼] 바로크 음악
[정수영의 음악칼럼] 바로크 음악
  • 정수영 광주아트가이드 편집위원(문학박사)
  • 승인 2022.05.01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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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의 학문에서건 시대의 역사와 내용을 살펴보고 탐구한다고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배움의 자세이고 꽤 매력적인 할애(割愛)의 시간이다.

왜 시대를 구분하는지에 대한 답은 그저 단순하다. 인간이 좀 더 편안하게 잘 살고 행복한 삶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과 발상으로 사회를 바꾸고 발전시키며 끊임없이 예술 문화를 창조하는 것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서양음악사에서 구분하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전(前)시대인 르네상스와 비교하면 장식적이며 요란하고 보다 복잡한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반면에 후(後)시대인 고전파 시대의 음악에 비해서는 딱딱 맞아떨어지는 균제와 조화의 비율이 뼈대를 이루는 형태에 그친다.

그렇지만 이 뼈대는 현재까지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의 완벽한 화성과 아름다운 멜로디의 근본적인 골격을 이루고 있는 토대이며 역사적인 업적이다.

조화와 화합을 완벽하게 이루어 냈던 ‘장조와 단조’의 체계가 완전히 그 틀을 잡으면서 명확하게 표현했던 이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 바흐와 헨델에 의해 집대성 되며 이들에 의해 규칙적이고 질서를 지키며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장식적인 꾸밈을 드러낸 음악이 표현된다.

바로크 음악의 배경

앙드레 부이스(André Bouys), 《음악모임》. 캔버스에 유채, 1710년경.전형적인 바로크 실내악 연주를 보여준다. ⓒ나무위키 갈무리
앙드레 부이스(André Bouys), 《음악모임》. 캔버스에 유채, 1710년경.전형적인 바로크 실내악 연주를 보여준다. ⓒ나무위키 갈무리

극음악이 탄생하는 1600년경부터 바흐(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685~1750, 독일 음악가)가 사망한 1750년까지의 150년을 기준으로 하여 바로크 시대라고 정의한다.

종교개혁을 통해 급격한 사회적 변동을 겪으면서 중앙집권적인 절대 군주제가 강화되어 기존의 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음악이 자연스럽게 궁정과 귀족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이 체제를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확립했던 프랑스에서는 루이 13세(재위 1610~1643), 루이 14세(재위 1643~1715), 루이 15세(재위 1715~1774)라는 3대의 군주가 서게 된다. 

특히 루이 14세에 의해 절대 군주제가 강화됨으로써 바로크 시대의 가장 유명한 건축인 베르사유 궁전을 중심으로 하여 궁정과 귀족 중심의 화려한 문화예술의 꽃이 펼쳐진다.

이에 걸맞게 건축과 문화예술의 규모가 커지며 표현의 폭이 넓고 다양한 음악 양식들이 나타나게 된다.

음악적인 특징

시대가 발전하면서 악기가 진보되어 탄생된다. 쳄발로, 오르간 등의 건반악기는 물론이거니와 현악기인 바이올린이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활동한 3명의 바이올린 거장(니콜로 아마티, 주세페 콰르네리,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에 의해 완성되면서 바로크 음악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이는 이 악기들을 위해 조직된 현악 오케스트라가 오페라든지, 오라토리오(성서를 내용으로 하는 종교음악으로 오페라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하지만 오페라처럼 무대장치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점과 출연자들이 배역에 따라 분장이나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르다)의 반주를 담당하게 되면서 기악과 현악이 성악의 부수적인 역할만 했던 기존의 형태에서 벗어났음을 상징한다.

악기와 연주자가 완벽하게 지위 향상을 하며 음악사상 처음으로 연주 기량을 뽐내고 자신의 한계까지 밀고 갈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악기의 발달로 인해 작품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 기악작품, 협주곡, 교향곡, 오페라 등이 크게 발전되고 향상되면서 연주자의 연주 기술과 함께 작품의 화려함과 장식이 더욱더 견고해졌다.

이 결과는 성악에서는 카스트라토를 낳았고 현악에서는 비발디를 낳았으며 기악에서는 바흐와 헨델이 그 가치의 정점을 찍었다.

바로크 시대는 이렇게 음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음악가들은 필요한 상황에 따라 엄청난 양의 작품을 쏟아냈다.

이 시대는 작품의 질보다는 얼마나 빨리 작곡하여 발표하는가에 따라 작곡가의 능력을 평가받았던 시기이다.

따라서 딱 한 번만 연주되고 파기되는 작품들이 허다했다.

실제로 비발디의 경우, 협주곡만 해서 450여 곡을 남기고 있다.

낭만파 시대 600여 편의 가곡을 남겼던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으로 평가받고 있는 점을 볼 때, 450여 곡의 협주곡을 발표한 비발디가 ‘협주곡의 왕’으로 평가받아도 충분할법한데 그러지 않은 상황을 유추한다면 바로크 시대 얼마나 많은 작품이 그저 쉽게 발표되어 사람들에게 잊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나 싶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50호(2022년 5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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