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의 음악칼럼] 어두움에서 발현한 빛의 음악
[정수영의 음악칼럼] 어두움에서 발현한 빛의 음악
  • 정수영 광주아트가이드 편집위원(문학박사)
  • 승인 2022.03.12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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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요새는 ‘옷깃만 스쳐도 최악’이라는 분위기가 난무하다.

침체되는 사회속에서 탄생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마음과 행동의 어두움은 반대로 또 다른 광대한 빛을 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위기 속에서 희망 또는 기회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선수들이 위기에 굴하지 않고 희망의 시간으로 버텨내는 모습에 국민이 절대적인 응원을 하며 사랑의 찬사를 보냈다.

많은 어두움의 조건에서 발휘되는 선수들의 기질은 그 어떤 빛보다도 찬란하고 광대한 멋있는 태양의 탄생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서양음악은 기존의 규칙과 형식, 전통과 양식을 완전히 무시한 새로운 흐름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4년 초연)에서 미묘하고 몽롱한 어색함에서 시작하는 울림을 선보이는가 싶더니 10년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에 의해 멜로디와 화성은 기존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울림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귀를 때리는 듯한 울림으로 당시대의 새로운 ‘아이돌’로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은 현상이 삐져 들어온다.

많은 연주자와 음악가, 청중들은 귀를 때리는 듯한 울림이 싫었다. 너무 지루했고 그저 듣기 싫은 기분 나쁜 울림이었다.

“이런 화성이 어떻게 음악이 될 수 있지? 듣기에도 좋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성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이런 지루하고 듣기 싫은 기분 나쁜 울림이 유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새로운 음악의 탄생이라는 찬사 뒤에 그늘처럼 따라다니는 불평불만의 비판이었다.

그러자 서서히 또 하나의 얼굴이 들이밀기 시작했다.

다시금 옛날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전통에서 나오는 절제의 양식에서 20세기라는 시대의 ‘자유로움과 현대’라는 내용을 담아 ‘전통 속에서의 현대’라는 음악의 얼굴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음악이 ‘어둠 속에서의 빛’이라고 하기에는 ‘기분 나쁜 울림’의 양식은 ‘20세기를 대변했던 빛’이었다. ‘위기 속에서의 기회·희망’이라고 하기에도 위기가 아니었고 ‘전통 속에서의 현대’ 양식의 음악이 기회·희망은 아니었다.

확실한 것은 ‘기분 나쁜 울림’에 대항하여 나타난 ‘전통 속에서의 현대적인 음악’은 어두움 속에서 발화된 빛이었고 위기 속에서 발현된 기회·희망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너무 무겁고 장엄한 음악은 안된다.
미묘하게 울리는 화성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그저 가벼운 음악으로 청중의 마음과 귀를 붙잡아
멀어지는 클래식 음악의 묘미를 붙잡고 싶다.

르로이 앤더슨(1908~1975, 미국 작곡가 겸 지휘자)은 자신의 음악을 그저 이런 마음으로 단순하게 표출했다.

‘재미있게, 경쾌하게, 듣기 편하게’로 표현하고 싶었던 그는 클래식이라고 해서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재미있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음악을 구성해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플링크, 플랭크, 플렁크(Plink, Plank, Plunk)〉에서는 현악기가 활을 사용하지 않고 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인 ‘피치카토 주법’으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한다.

또한 현악기의 본체 뒷부분을 손바닥으로 쓸어올린다든지, 더블베이스는 연주 도중에 악기를 회전시키는 퍼포먼스를 한다.

이 작품은 활을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만으로 통통 튕기는 울림의 상큼함을 전달하는 묘미가 대중을 사로잡는다.

〈샌드페이퍼 발렛(Sandpaper Ballet)〉은 사포(沙布/砂布)를 사용해서 음악과 어우러지는 묘미를 더한다.

그저 사포를 문지르기만 하면 된다. 멜로디에 맞춰 때로는 춤을 추면서 연기를 하며 손에 든 사포를 문지르며 유쾌하게 청중들의 시선과 귀를 집중시킨다.

〈고장난 시계(The Syncopated Clock)〉는 일정하게 똑딱거려야 하는 시계가 엉뚱한 곳에서 똑딱거리는 모양을 하고 있어 고장난 시계가 아닌가 하는 느낌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싱코페이티드(Syncopated), 당김음을 두다’의 리듬으로 시계가 경쾌하게 움직이는 모양을 재미있게 표현한 음악이다.

이 작품은 유튜브에서 제주CBS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 중 ‘앤더슨의 고장난 시계’를 통해 들으면 르로이 앤더슨의 기발한 음악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칼럼은 르로이 앤더슨 음악의 맛보기이다. 위기 속에서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재치를 발휘했던 그의 나머지 음악을 다음호로 연결한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8호(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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