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희의 작품을 보면 여러 개의 작은 색면들이 분할되고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색면들은 시각적으로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거대한 색면 추상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그의 작업은 온전히 엄격한 규칙과 관계로 맺어진 데이터에 기반한 예술이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음악번안시스템을 통해 ‘음’을 ‘색’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작업은 음악을 듣고 즉흥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본인만의 규칙을 통해 마치 언어를 번역하듯 음악을 색과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것에 가깝다.

■음악을 그림으로 기록하다

이다희 작품- 2021 oil on canvas 60×120cm×40ea. ⓒ광주신세계 갤러리 제공
이다희 작품- 2021 oil on canvas 60×120cm×40ea. ⓒ광주신세계 갤러리 제공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들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대학시절부터 음과 색을 매칭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대학 4학년 때 졸업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 ‘음악번안시스템’을 고안하여 발표했다.

그때를 시작으로 본인이 만든 법칙을 지금까지 꾸준히 사용 중이다.

이후 이러한 규칙을 어떻게 분류하고 정리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면서, 영국 글래스고 예술학교에 입학하여 음악번안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단계가 많다 보니, 하나씩 추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을 알게 되고, 그 음악 형식에 맞춰서 자신만의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는 음악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음악은 듣는 순간 사라지는데 그것을 오롯이 감각하는 시간으로 공간을 가득 채워 단 한 곡을 앞에 두고 긴 시간 자세히 듣고 싶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형식이 있으며, 이 형식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 음악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일정한 형식에 맞춰 음악을 시각화하다 보면 작곡가의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음’이 ‘이미지’로 번안되는 과정

이다희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이다희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은 바흐(J.S. Bach)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The Well Tempered Clavier Book, WTC)’을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작품 연작이다.

바흐 음악의 형식미와 아름다운 구성요소를 기록하기 위한 작업으로, 과감한 화성 진행과 자유롭지만 긴밀한 리듬 구성, 우아한 선율을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의 음악번안시스템은 10단계가 넘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다. 그 중 ‘음’이 ‘이미지’로 번안되는 기본적인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자면, 각각의 음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색으로 변환되고, 화음의 경우 색이 겹쳐져서 투명하거나 불투명하게 표현된다.

화음들의 탑노트는 가장 위에, 베이스가 되는 음을 가장 아래의 색면으로 배치된다. 그의 화면 안에서 보여지는 색의 배열과 리듬감은 아름다운 음을 발견하는 그 순간의 심상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작업은 악보를 이미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연주하는 소리를 옮기는 작업이다. 그러다보니 그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에 따라서도 소리의 발음이 달라지는 것에 주목한다.

바흐의 음악을 연주한 글렌 굴드(Glenn Gould), 로잘린 투렉(Rosalyn Tureck) 등 여러 연주자의 음악을 동시 분석하는 것을 통해 모든 연주가가 동의하는 태도와 불변하는 요소를 파악하고, 변형되는 부분을 통해 작곡가가 허용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분석해낸다.

*QR코드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J.S.Bach-Prelude in eb minor BWV853

그는 자신의 추상회화가 그 무엇도 묘사하지 않으며,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어떤 개념을 옮기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음악을 이미지로 시각화해서 ‘추상회화’라는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음이 색으로 번안되는 과정과 기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전시를 할 때 관람자들을 위해 자신의 음악번안시스템을 공유하고 작품의 과정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향후 4-5년 후에는 WTC 프로젝트를 완결하여 다양한 분야와 협업해 보여줄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주자와 음악이론가, 음악분석가, 전시공연 기획자 등 다양한 전문가를 찾는 것이 최근의 고민이다.

그가 시각예술가인지 음악이론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접점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문법으로 음악을 새롭게 해석하는 그의 작업이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8호(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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