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선제공격, 그 다음은
[이기명 칼럼] 선제공격, 그 다음은
  •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 승인 2022.01.16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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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을 당해 봤는가

마치 휘파람 소리 같았다. 포탄 날아가는 소리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서울 함락 직전이다.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가 돈을 나눠주신다. 헤어지면 못 만날 수 있으니까 가지고 있으라는 것이다. 눈물이 난다. 다음날, 집 앞으로 탱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은 함락됐다.

수백만의 사망 실종, 재산손실. 나라가 거덜이 났다. 휴전협상이 진행되자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다. 고등학생인 우리는 휴전반대를 외치며 혈서를 썼다. 휴가 나온 얼굴이 새까맣게 탄 쫄병이 우리를 노려본다.

‘개새끼들아 니들이 싸워라.’

전쟁이 뭔지나 아는가

ⓒ국민의힘 누리집 갈무리
ⓒ국민의힘 누리집 갈무리

전쟁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 없는 전쟁이 어디 있는가. 6·25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늘 말씀하셨다. 다시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게 된다면 그때는 자살 할 거다.

6·25 때 행방불명된 장남, 동생, 그밖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어머니는 한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나셨다.

쪽도리 쓰고 시집간 시골의 순이는 한 달 후 한 장의 전사통지서로 어린 미망인이 됐다. 전쟁은 없어야 한다.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철딱서니 없는 후보가 있다. 부동시(짝눈)라는 병명으로 군대도 못 갔으니 당연히 전쟁을 모른다. 전쟁을 영화 속 낭만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

70여 년 전 말죽거리 시골길에서 미군전투기에 기총소사로 간난쟁이를 안은 채 피투성이로 쓰러진 젊은 엄마를 보며 개천물에 코 박고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미군전투기가 사라진 후 달구지를 끌다가 죽은 시골농민들과 그것을 보면서도 흙탕물에 젖은 보리쌀 한 말을 지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중학교 2년생은 이제 80살이 넘은 늙은이가 되어 전쟁을 회상한다. 이제 야당 후보에게 묻는다. 전쟁을 알겠는가. 선제공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

기억은 지나가 버린 현실이나 머릿속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런 기억이 현실로서 살아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 선제공격으로 누가 살아남느냐. 누가 죽느냐. 모두 죽어야 하느냐.

지금도 말죽거리를 폭격하던 무스탕 전투기의 기총소사가 생생하다. 서울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9·28 수복 당시 총살당한 시신들과 방공호 속에 아무렇게나 쌓인 시체들이 떠올라 소름이 끼친다.

서로가 아무런 원한도 없으면서 서로 죽여야 하는 비극이 전쟁이다. 이 전쟁을 다시 하자는 말인가. 선제공격을 발설한 후보는 구차한 변명 말고 즉시 사과를 해야 한다. 다시는 선제공격 따위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한국 정치를 보자. 이처럼 추악한 싸움이 어디 있는가. 오직 싸움뿐이다. 모략 음모다. 왜 이 지경이 됐는가. 정치인들 잘못이다.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기자에게 물었다. 언론이 왜 이러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다. 왜 공정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다. 어쩔 것이냐는 질문에도 대답이 없다.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그 심정을 안다. 더 물어볼 수도 없다.

언론만이 정치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부탁한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구국의 결단을 내려라. 국민이 불쌍하지 않으냐.

제발 정치가 제 길을 걷도록 하자. 이제 글쓰기도 지쳤다. 너무 힘들다. 나이 80을 훌쩍 넘었다. 그냥 죽을 날이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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