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세계를 응시하는 자의 슬픔
문학들 출판사 시인선으로 출간

정채경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문학들)를 펴냈다. 「사랑 복용 시 주의사항1」을 필두로 총 52편의 시가 4부로 구성돼 있다. 시집 전편에 걸쳐 눈에 띄는 것은 비극적 세계를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이다. 과장하지 않고 담담히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에서 오히려 진한 슬픔이 묻어 나온다.

시인이 밥을 먹는 동안 텔레비전은 “살생의 추억”으로 시끄럽다. 저 너머 세계에서는 자살 테러가 일어나고 가까운 곳에서는 조류독감으로 포클레인이 오리 떼를 파묻는 광경이 펼쳐진다.

시집의 제목이 된 ‘별일 없다’는 말은 그때 전화를 한 친정엄마의 “별일 없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세상은 별일로 가득한데, 별일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대답에는 어쩔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깔려 있다. 내

가 사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 그런 절망감과 무력감을 시인은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 보인다.

TV 속 예멘의 8살 소녀가 40대 남자와 결혼을 했다
가난한 집 9명의 식구를 책임지기 위해 지참금을 받고
호랑이 굴속으로 던져졌다 어린 소녀는
다음 날 심한 장기 손상과 출혈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 별일 없냐?

- 응, 별일 없이 잘 지내!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말이지만, 돌려 말하기다. 시인은 “살갗의 땀구멍마다 소름이 돋아 오싹한 양팔을 문지”를 만큼 아프지만, 비극적 사건을 바라보고 공감하는 것 이상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슬퍼한다.

배추흰나비는 자신이 오늘 거미줄에 걸려 생을 마감할 것을 알지 못하고(「속수무책」), 사랑하는 당신은 “사랑은 직진이라더니, 결국/제 자리로 돌아와/탈진으로 몸을 떠는” 사랑의 부작용을 앓게 된다(「사랑 복용 시 주의사항1, 2」).

정채경 시인에게 이러한 비극적 세계를 견디는 힘은 사랑이다.

정채경 시인에게 있어 사랑은 황폐한 세계를 견디는 힘이다. 돈의 가치가 삶을 지배하고, 모든 것이 상품화한 오늘의 삶에 도덕이나 윤리가 뒷전으로 밀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치와 탐욕과 분수에서 자유”(「신전」)로운 삶 속에서 도덕적 규범은 잊힌 지 오래다. 내 것을 지키려는 폭력성 앞에 타자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들어설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즉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삶에 조그마한 틈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틈으로 타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때론 결을 내주면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신덕룡 (시인, 문학평론가)

정채경 시인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2006년 『열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라이브 뮤지 위에 장례예식장이 있다』를 펴냈다.
/정채경 지음|신국판 변형(125*200)|1도|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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