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따스한 서정의 강물...전숙 시인의 5번째 시집
문학들 출판사 시인선으로 펴내

전숙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저녁, 그 따뜻한 혀』(문학들)를 펴냈다. 해가 지고 저녁이 오는 풍경 속에는 생의 바람이 있고 굽은 허리를 펴는 일상이 있다. ‘저녁의 혀’는 그 순간에 태어난다.

“관절 펴는 소리/낮아지는 숨소리/하루를 소화시키는 되새김질 소리/바람을 재우는 저녁의 소리는 혀처럼 부드럽다”(「저녁, 그 따뜻한 혀」)

“생은 끊임없이 달려드는/슬픔이라는 육식동물에 맞서는 일”(「슬픔이라는 육식 공룡」)이지만, 시인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도 “폭풍에 휩쓸린 길고양이를 핥”아 주는 ‘저녁의 혀’처럼 세상의 아픈 것들을 다독이고 죽은 것들을 애도하며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삶의 자리를 옮겨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기원을 추동하는 근저에는 깊고 따스한 모성의 힘이 자리한다.

“내 눈의 티끌을 핥아주던 어머니/말랑말랑한 은총으로 우주를 키우지/혀는 나의 영원한 지존/아플 때마다 찾는 약손”(「몸의 혀」)

「눈물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싸리꽃엄마」 「식지 않는 밥」 등 어머니를 다룬 시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인은 강물 같은 모성의 넉넉함으로 “삶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윤리적 내면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나름의 시적 성취까지 거둔다.”(김병호 시인).

가난과 소외의 현실을 통해 그 슬픔 속에 담겨 있는 사랑의 위력을 발견해 내는 시인의 시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집요한 연민으로 이어지는데, 특히 4부에 수록된 5·18민주화운동과 4·3항쟁에 관한 시편들에서 두드러진다.

“오월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은하수 한가운데 주먹밥처럼 엉긴 궁수자리석호성운에 어깨를 겯고 있는 일등성끼리 서로의 빛을 비추고 있다.”(「주먹밥의 밀도-꽃과 꽃 사이의 오월1」)

“물은 누구를 만나도 순하게 스며들었다/원수를 만나도/들이밀 가시가 없어/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물의 길-4.3 동백 네 송이」)

“전숙 시인의 이번 시집은 주제어인 ‘혀’에 대한 언어적 포폄이 눈물겨울 만큼 인간적이다. 시집 전반에 상징된 혀의 원초성은 어머니가 인간 존재의 샘자리인 것처럼 삶의 신산함을 위무하고 연민하는 생명정신의 샘자리인 것을 인지할 수 있다.” - 김종 시인

전숙 시인은 2007년 『시와사람』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나이든 호미』 『눈물에게』 『아버지의 손』 『꽃잎의 흉터』를 펴냈으며, 백호임제문학상, 나주예술문화 대상 등을 수상했다.
/ 전숙 지음|신국판 변형(125*200)|1도|168쪽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