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송희 칼럼

어느 날 갑자기 나무들이 사라졌다. 대신 공사장 철벽 안쪽으로 새 아파트가 30층 높이로 솟아올랐다. 나무들이 사라져서인지 갑자기 아파트 키가 커진 것만 같다. 아침 등굣길에 스쿨버스가 멈추는 자리도 왠지 허전해보인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도 쓸쓸해보인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버스정류장도 왠지 현실감이 없다.

내가 사는 우리 동네, 서구 염화로 이야기이다. 지난 주 토요일 염주사거리에서 화정남초 입구까지 은행나무 62그루가 스러졌고, 일요일에는 월드컵4강로에 있던 메타세콰이어 56그루가 밑둥만 짧게 남긴 채 베어졌다. 이 나무들은 1987년 염주주공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심어진 것들로 34년을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왔다.

광주광역시 서구 옛 염주주공아파트(염화로)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옛 가로수들이 베어져 있다. ⓒ박송희 
뿌리째 제거된 옛 염주주공아파트 염화로. ⓒ박송희
뿌리째 제거된 옛 염주주공아파트 염화로. ⓒ박송희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엄마들이 계속 말을 한다.

“이게 우리 동네라고?” 깜짝 놀라며 “내가 여기서 중학교부터 살았는데, 그래도 늦가을 노랗게 은행나무가 얼마나 예뻤는데!” , “대체 왜 이래야하는건데?”, “그래도 하루 아침에 너무하는거 아니야?”, “이렇게 맘대로 다 없애도 되는건가?”,“대체 누가 이렇게 하는거야?”

염주주공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으로 아파트 세대수가 늘어나고 교통량의 증가에 따라 도로폭을 넓힐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무를 제거했다고 한다.

그럼 막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이런 필요라면 막 나무를 없애도 되는 것인가?

광주에는 다행히 가로수들이 함부로 베어지지 않도록 ‘가로수 관리 조례’ 「광주광역시 도시림·생활림·가로수 조성 및 관리조례」를 제정·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례가 있어도 심은지 30년이나 넘었고, 키가 5~8m이나 되고, 흉고직경이 80cm~20cm가 되는 이 나무들을 하루 아침에 없애버릴 수 있다. *흉고직경;1,3미터 높이에서 잰 나무줄기의 지름

조례에 따르면, 가로수 교체 시 「도시림 등의 조성․관리 심의위원회」상정 후 실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염주주공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지구 내 가로수는 바꿔심기가 아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에 따른 것이므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례에 의해 업무을 위임받은 서구청은 행정적인 절차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조례가 있어도 쉽게 가로수를 없애버릴 수 있는 현실이라면 앞으로 조례의 내용을 바꿔야 할까? 우리들의 일상을 함께 하는 가로수를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 아파트를 짓고 인구가 늘어나고 교통량이 증가하고 도로를 넓히는 과정에서 나무를 제거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걸까?

ⓒ박송희
ⓒ박송희

요즘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더더욱 나무 한 그루를 소중히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발 생태 감수성을 되찾자.

우리는 나무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간다. 초봄 파릇파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겨우내 움추려있던 몸의 생동감을 찾고, 여름이면 나무 그늘 아래서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나를 숨기고 숨을 쉰다. 가을이면 샛노랗게 세상에! 이렇게도 노란빛이 있나 감탄하며 색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물론 은행나무 열매가 내뿜는 구린내는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그마저도 아이들과 깡총거리며 피해다니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낙엽이 지는 겨울이면 쓸쓸함과 동시에 ‘이렇게 한 해가 가고 또 봄이 오구나’ 하며 삶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2021년 11월 27일과 28일, 아파트 재건축으로 생을 마감한 메타세콰이어와 은행나무 118그루에게 미안한 마음과 슬픈 마음을 전한다. 동시에 그 나무들과 함께 살아 온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물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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