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종전을 반대하는가
[이기명 칼럼] 종전을 반대하는가
  •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 승인 2021.11.15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번도 없는 인간들

갑자기 이웃집에서 통곡 소리가 들렸다. 아아. 또 온 모양이구나. 무엇이 왔단 말인가. 전사 통지서다. 6·25 전쟁을 겪은 많은 국민의 경험이다. 입대한(끌려간) 이웃 청년이 ‘전사 통지서’란 종이 한 장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용인 시골에 아저씨 한 분은 해병대로 치열했다는 도솔산전투에 참전했다. 그 얼마 후 아저씨는 실명을 한 채 지팡이를 짚고 귀향했다. 휴전(종전이 아니다)했지만, 어느 집이든 상처를 입지 않은 가정이 있으랴. 아니 있다.

전쟁이 치열하던 때 친구 한 명이 미국으로 떠났다. 들리는 소식에 그는 하버드대학에 입학했고 그 후 박사가 되어 귀국했다. 무슨 비상한 재주가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 알아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그에게 전쟁은 남의 일이었고 휴전이나 종전도 상관이 없었다.

■무너지고 망가진 가정

지난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지난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나의 큰형님과 막내 외삼촌은 행방불명 됐다. 양평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사촌 매형은 죄명도 모른 채 총살당했다. 한마을에 남자들 씨가 말랐다는 소문이 났다. 이승만이 남겨놓고 도망친 서울시민은 빨갱이가 됐다. 눈짓 한 번에 즉결처분이다. 산아도 산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은 그런 것이었다. 전쟁에서는 죽음에 이유가 없다. 방아쇠 당기면 죽어야 한다. 서울 시내 방공호에는 썩어가는 시체가 쌓여있었다. 아무 죄도 없이 전쟁이란 이름으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였다.

내 나이가 50이 되었을 때 전쟁 당시 미국으로 떠나 하버드를 졸업하고 대학교수가 된 친구가 귀국했다. 환영인지 뭔지 식사 자리에서 난 그 친구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인가. 물어보지 못했다.

전쟁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느냐.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 법화산은 우리 집안의 선산이다. 1·4후퇴 당시 산 위에는 중공군, 산 아래에는 국군과 유엔군이 서로 교전을 벌였고 그사이에 마을이 있었다. 교전이 끝나고 중공군은 후퇴했다. 마을 사람들이 시체를 치우기 위해 동원됐다.

산 위에 무수한 중공군 전사자들. 그들도 사랑받는 자식이었을 텐데. 웅덩이를 파고 그냥 묻어버린다. 영원한 행방불명자가. 지금도 법화산에 묻혀서 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시신은 부모를 그리워할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니 우리 집안에 행방이 묘연한 일가친척만 50여 명이 넘는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도대체 6·25전쟁으로 박살이 난 남북의 가정은 얼마나 된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왜 분단이 되었는가. 미국이 분단을 찬성했다고 한다. 원통하기 짝이 없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고 지나간 일은 아무리 탄식을 해도 소용이 없지만, 한은 맺힌다.

아직도 종전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다시 전쟁을 원하는가. 죄 없는 우리 자식들이 서로 총을 겨누고 쏘아 죽여야 속이 시원한가. 개 같은 정상배들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

‘어깨 총’도 할 줄 모르고 장탄도 할 줄 모르는 놈들이 좋은 집안 덕에 군대도 안 갔다. 6·25 때 총 맞아 죽으면서 ‘빽’이라고 비명을 질렀단다. 빽이 없어서 죽는다는 한 서린 비명이다. 군대도 안 간 자들이 지도자가 됐다.

종전을 반대한다는 윤석열에게 묻는다. 전쟁이 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 법전이나 뒤지면서 기피자들 잡아들일 것이냐. 종전을 반대한다는 정상배들의 병력증명을 보고 싶다. 제대로 병역을 마친 인간들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1군사령부 사병계로 근무할 때 전 후방 교대가 있었다. 아무도 일선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노무현 병장이 자원했다. 선임하사가 미친X라고 말렸지만, 그는 한사코 소신을 접지 않았다. 모두 안 가면 누가 가느냐는 것이다.

노무현 병장과 함께 근무한 친구(KBS 아나운서)로부터 그 얘기를 들으며 또 한 번 가슴을 쳤다. 지도자의 모습이다. 3당 합당 때 ‘이의 있습니다’ 외치던 노무현 의원의 모습이 그립다.

■나를 던지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다.

이낙연을 지지하던 내가 지금 이재명을 지지한다. 글도 쓴다. 내게 ‘배신자’, ‘변절자’란 비난이 쏟아진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선생님, 제가 요령껏 적당히만 살았다면 전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전 죽는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전 그렇게 살 것입니다. 전 소신껏 살겠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내게 한 말이다. 나는 그를 믿는다. 왜냐면 그가 한 행동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가 당한 많은 모략을 알고 있다.

윤석열을 비판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한마디만 한다. 정직해야 한다. 자신의 주변을 깨끗이 정리해라. 모르는 것 같아도 국민은 다 안다.

내 눈은 거짓말을 알아내는 비상한 재능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운 것이다. 세상에 완전무결이란 없다. 인간도 누구나 결함을 가지고 있다. 결함이 덜 한 인간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검찰총장을 하면서도 자신의 주위를 엉망으로 관리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난 그렇게 살았고 죽을 때도 그렇게 죽을 것이다.

죽을 때 후회 남기지 않고 눈을 감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