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영화인, "문화전당 일원화에 따른 시네마테크 사업 중단 현실화" 우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이하 ‘문화원’)의 일원화에 따른 채용공모가 9월 30일자로 발표되자 그동안 우려했던 아시아문화원 사업들의 연속성에 대한 빨간불이 켜졌다.

무엇보다 영화인들은 이번 문화전당일원화에 따른 ACC시네마테크 사업자체가 폐기 중단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문화전당 채용공고에 따르면 아시아문화원(이하 ‘문화원’)의 5개 원에서 수행해오던 콘텐츠 기획은 학예연구사 직군으로, 시설관리와 기술업무는 전문경력관 가/나/다 직군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콘텐츠 기획 직군이 학예연구사로 채용되는 가운데, ACC시네마테크만 기획업무를 삭제하고 운영지원 업무로 바꿔 전문경력관 직군으로 채용공고를 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채용공고문에 나와 있는 업무는 기존 ‘시네마테크 사업’ 외에 ‘XR스튜디오 촬영 편집과 메타버스 송출 서비스’ 라는 분야까지 추가하여 가장 낮은 ‘다’군에 배치했다.

광주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아시아문화원 검열. 작품 훼손 진실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단(단장 박재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이 지난 8월 19일 옛 전남도청 1층에서 지난 5월 발생한 '윤상원 열사 전시 검열 및 작품 훼손 사건'에 대한 조사활동 보고서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광주인
광주시민사회단체로 꾸려진 '아시아문화원 검열. 작품 훼손 진실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단(단장 박재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이 지난 8월 19일 옛 전남도청 1층에서 지난 5월 발생한 '윤상원 열사 전시 검열 및 작품 훼손 사건'에 대한 조사활동 보고서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광주인

이는 문화전당의 영화사업을 바로 폐기할 수 없어 억지로 짜맞춘 구색맞추기 자리라는 것을 반증하며 실질적인 시네마테크 사업의 폐기선언에 가깝다는 것이 예술계의 중론이다. 개관 이래 7년 넘게 수집해온 800여 점의 아시아의 영화 자료들과 활용사업이 사장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특히 올해 12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일원화 작업으로 인해 내년 상반기로 연기된 <한국비디오 기획전>의 전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한국비디오 기획전>은 광주 영화인 조대영이 수십 년 동안 수집한 비디오컬렉션 3만 점을 통해 아날로그 시대의 영상문화와 지역 영화 활동을 되돌아보자는 취지로 작년부터 지역영화인들과 구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전당과 문화원에 대한 지역사회의 차가운 비판에도 그간 ACC시네마테크는 광주예술계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지역문화예술계와 소통의 단절이 장기간 고착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일각에서 ACC시네마테크가 실험영화 위주라 시민들의 이용률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실상 문화예술의 특성을 오해하는 것이며, 오히려 유네스코 미디어아트창의도시 광주로써 하반기 광주AMT센터 개관을 기점으로 세계 다른 어떤 도시보다 미디어아트 분야가 특화될 수 있는 원천콘텐츠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미디어아트와 차세대 콘텐츠의 전진기지인 미국 MIT 미디어랩과 오스트리아 아르스일렉트로니카의 설립근간과 운영의 핵심은 고전 실험영화에 대한 수집과 충분한 연구임을 유념해야 한다.

ACC시네마테크 업무 중단은 난해한 사업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아트, 영화, 미술, 융복합콘텐츠와 같은 동시대 문화콘텐츠산업의 원천자원과 AI, 메타버스 등 광주시가 역점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래산업의 기초토대가 무너짐을 관계당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ACC시네마테크는 국내외 영화계 이슈를 선도하면서도 지역과 밀착하는 사업기획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한국영화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냄으로써 한국영화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영화100주년 특별전 《한국나쁜영화 100년》을 비롯하여, 노동운동영상을 만들어 온 ‘노동자뉴스제작단’ 30주년을 기념하는 《내가 뉴스다!》, 그리고 한국 최초영화동아리 ‘얄라셩’ 의 《여럿 그리고 하나 : 얄랴셩에서 서울영화집단까지》 등을 기획하며 한국영화들의 숨겨진 자료들을 끄집어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한 《5.18 영화주간》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5.18의 상흔을 지우기 위한 관제행사 ‘국풍81’을 비판한 작품 <국풍>(얄랴셩 제작, 1981)을 상영하고, 필름압수로 테이프로만 존재했던 <황무지>(김태영 감독, 1988)를 디지털화하여 31년 만에 공개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ACC시네마테크는 탄탄한 연구와 국내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문화전당의 설립목적에 맞는 기획전을 보여주며 아시아와 광주예술계의 핵심동력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카이두 클럽’을 비롯하여 ACC시네마테크가 수집·발굴한 작품들과 제작지원 작품들도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장기간 축적해온 아카이빙-연구-기획-제작-유통이라는 콘텐츠 순환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네마테크 사업 철회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사)광주영화영상인연대 김지연 이사장은 “내년 광주영화전담기구 설립과 함께 ACC시네마테크는 아시아 실험영화와 5.18과 관련된 한국독립영화사, 광주극장은 동시대 예술영화, 광주독립영화관은 독립영화라는 ‘광주영화 삼각벨트’ 의 한 축이 무너지는 중대한 사안” 이라며, “광주가 문화중심도시라는 도시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다큐멘터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거미의 땅>을 연출하고 광주 영화학교에서도 강연한 바 있는 김동령 감독은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ACC시네마테크와 광주극장의 역할이 참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내부의 이해관계, 산업논리, 정치논리로 인해 광주 스스로의 명예를 강등시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미디어아트 분야를 중심으로 독립기획자로 활동하는 최하얀은 “ACC시네마테크는 동시대 영상 예술의 원형과 계보를 공부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며 “청년예술가들과 기획자들에게 예술적 영감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광주의 소중한 문화예술 자원을 잃는 것”이라며 자괴감을 드러냈다.

사단법인 광주영화영상인연대는 이번 문화전당 일원화에 따른 ACC시네마테크 사업의 불투명은 조속히 재고되어야 하며, 그동안 축적되어온 성과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게 문체부와 광주시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과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책 없이 문화전당 일원화가 강행될 경우 ACC시네마테크 사업과 같이 지난 수년간 축적된 성과마저 이어받지 못하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를 장기간 표류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