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會者定離)와 이합집산(離合集散)만큼 정치 풍속도를 단정적으로 대변하는 사자성어가 또 있을까. 그러나 어디 그게 정치뿐이랴. 도시만 해도 음지와 양지의 자리바꿈이 역사나 민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것을 보면 그 상전벽해의 변화무쌍에 숨이 막힌다.

 시청 청사를 보면 여객선인지, 무역선인지, 군함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배의 형상인 것만은 맞다. 그 역동적인 이물은 서쪽을 향해 포효하듯 급 물살을 가르고 있다. 그런데 동쪽의 고물은 절벽처럼 내리 수직으로 깎아져 있다. 마치 단칼에 꼬리가 끊어진 형상 같다. 

 설마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두암동과 산수동 부근은 갈수록 낡고 한산하기만 한데, 상무지구와 송정 그리고 하남은 희미하게 꼭지점만 달랑 찍혀 있던 것이 어느새 세 변이 사이 좋게 맞닿아 하루가 다르게 삼각편대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신가지구, 신창지구, 수완지구 등 광활한 아파트촌도 도시의 중심이동을 부추기며 영토확장에 따른 지도를 날마다 새로 그리느라고 눈코 뜰 새 없다.

 그 변화의 중심에 상무지구가 있다. 외따로 허허벌판의 군사지역이던 금단의 땅이 별안간에 광주의 최고 요지로 급부상했다. 불과 십여 년 만에 동과 서의 낙후와 발전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두암지구와 상무지구의 땅 값이 무려 수십 배나 역전되고 만 것이다. 상무지구는 그렇다 치고 산수동과 신가동을 비교해도 그 현격한 차이에 격세지감을 떨칠 수 없다.

 도시 곳곳에 공동화 현상이 일고 있음은 비단 광주만의 실정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만 봐도 꼭 군데군데 쥐 뜯어먹은 머리처럼 흉하기 이를 데 없다. 겉이 그럴 때 그 속은 오죽할까. 균형미는 도시미학의 관건이며, 생활환경을 효율적으로 관리 보수하는 ‘사회공학’이기도 한데 말이다.

 지금 정부에서는 서울에 집중돼 있는 산하 기관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기에 바쁘다. 행정의 효율성보다도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환경미학 차원에서다. 자칫 수도권만 남고, 지방은 애물단지로 변한 농공단지처럼 폐허화될지도 모르는 국토 동력의 일방적 쏠림 현상을 우려한 포석이다.

 그런데 광주는 청개구리가 역 귀성이라도 하듯 덩치 큰 기관들이 다투어 상무지구로 집결하고 있다. 먼발치에서는 과다한 도시집중의 분산화를 위한 혁신도시를 건설하려고 노심초사하면서, 코앞에서는 거꾸로 일방적 도심편중을 꾀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물론 그럴수록 상무지구의 위상은 높아지고 더불어 땅값도 오를 것이다. 대체 그 땅의 주인들이 누구인지 한번 은밀히 살펴볼 일이다.

 미리 부지를 확보해둔 터라 그렇다고들 변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애초의 졸속 결정은 어떻게 변명하려는가. 제법 쏠쏠한 투자였던 그 땅을 처분하여 동으로, 북으로, 남으로 일부러 싼 지역을 골라서 간다면 그만큼 도시의 균형을 잡는데 효과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와 재화의 무분별한 수도권 편중 탓에 지방마다 갈수록 북고남저의 설움을 톡톡히 겪는 터에 또 서고동저의 설움마저 덧붙이려는가. 상권은 함부로 이동시키는 게 아니다. 역사와 문화와 전통의 파괴는 물론 누대에 걸친 텃새를 하루아침에 철새로 내모는 횡포이기 때문이다.
 
 전남대학교 하나를 두고 그 주변 상가가 절체절명의 목줄을 매고 있는 것이랄지, 도청이 옮겨가자 썰렁하니 휘청거리던 상권이 그 자리에 새로 문화의 전당이 들어선다고 하자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현상을 보자. 하나의 공공기관이 도시 근린 생활권에 미치는 비중은 실로 막중하다.

 국가와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들이 낙후된 지역에 자발적으로 골고루 분산 위치하여 도시의 균형을 이루어야할 기초 상식에조차 소홀한 것은 그 의식이 얼마나 시민들과 동떨어져 있는 가를 단적으로 웅변해 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나름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선도하는 기관들이 ‘광주의 맨하탄’에 옹기종기 모여 얼마나 효과적인 대민 업무를 펼치는 가를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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