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가 반인도적 전쟁범죄 면죄부 될 수 없다"
청와대 청원운동 시작으로 입법청원운동 전개 예정

기자회견문 [전문]

‘소멸시효’ 제도가 반인도적 전쟁범죄에 면죄부가 되도록 허용할 수 없습니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전원합의체에서 일제 전범기업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피고 일본 기업들은 만 3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 법원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거듭된 대화 요구에도 여전히 귀를 닫고 있는가 하면,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떠 수출규제 조치라는 이름을 빙자해, 대 놓고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나선 기가 막힌 상황이다.

가해자들이 이렇게 판결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사이 피해자들은 속수무책 사망하거나, 요양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방귀 뀐 사람이 도리어 성질낸다’는 속담처럼,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과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11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에 대한 법원의 명령을 거부 중인 일본 전범기업들의 행태를 비판한 후 '전쟁범죄 소멸시효 배제법' 입법청원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예제하

민법 제766조 ①항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돼 있다. 자칫 오는 10월 30일 이후에는 일제 전범기업을 상대로 소 제기조차 어려워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강제동원 피해자로 확정된 피해자는 총 21만8639명으로, 이 중 군인·군속 피해자를 제외하고 일본 기업들에 동원된 노무동원 피해자만 14만8961명이다.

그러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나 유족들 중, 현재 우리 국내 법원을 통해 일제 전범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원고는 대략 1천여 명 남짓에 불과한 실정이다. 즉, 노무동원 확정 피해자 중 소송에 나선 경우는 불과 0.7% 정도에 그치고 있다.

혹자는 ‘권리 위에 잠잔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이 문제에 놓인 엄혹한 장벽을 전혀 모를 때의 얘기다. 다수의 피해자들은 한일 양국의 외면 속에 오랜 시간 권리행사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사망한 데다, 소송을 제기하고 싶어도 이미 가해자 측에 의해 증거물이 지워지거나 철저히 은폐돼 불가항력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만약,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들이 명백히 드러난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관련 피해 자료를 성실히 제공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피해자들이 가만히 손 놓고 있었을까?

특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후 사죄와 법적 배상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었더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 권리행사를 포기했을까? 상황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물론, 국제인권법 조류는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의 경우에 있어 효과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는 한 소멸시효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2005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피해자 권리장전에 의하면, 시효규정은 국제법상 범죄를 구성하는 국제인권법의 총체적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에 대하여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법 조류에도 불구하고 소멸시효에 관한 현행법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기회는 영원히 봉쇄될지 모른다.

광복 76년에 이른 지금의 현실을 보라.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들은 배상은커녕 반성의 기미조차 없다. 그나마 강제동원 문제가 한일 양국 간 민감한 현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소송이라는 지렛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소멸시효 문제로 소송이라는 지렛대가 사라지게 될 경우 강제동원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지고 말 것이다.

ⓒ예제하
ⓒ예제하

따라서, 최소한 일본 정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이 정한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강조하지만 소멸시효 제도가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에게 면죄부가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들은 법원 판결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있는데, 피해 국가의 소멸시효 제도가 악용되어 ‘그저 버티면 된다’는 식의 몰염치한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꼴이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이에, 우리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시작으로 역사정의 실현을 바라는 국민들과 함께 입법청원운동에 나선다. 아울러 각 정당과 정치권 역시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대한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특별법 제정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1년 8월 11일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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