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딸 박승희 열사 분신 이후 30년 동안 민주화운동 투신
7년간 폐암 투병 중 12일 저녁 8시 40분께 향년 75세로 운명
분향소 광주 만평장례식장에 마련...가족장으로 장례 엄수키로
"생전에 민주화운동의 큰 버팀목이 돼주신 우리들의 아버지"

1991년 민주화를 외치다 분신 산화한 박승희 열사의 아버지 박심배(향년 75세) 선생이 13일 저녁 8시 40분께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고 박심배 선생은 박승희 열사가 산화한 후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 공동의장, 호남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부회장을 맡아 딸이 생전에 못다 이룬 민주화 염원을 최일선에서 30년 동안 펼쳐왔다. 

고 박심배 선생(박승희 열사 부친).
고 박심배 선생 영정(박승희 열사 부친).

특히 고인은 박승희 열사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돼 받은 보상금 전액을 기부하여 2014년에 재단법인 박승희장학재단을 설립했으며, 해마다 박승희 열사 모교인 정명여고 재학생 및 전남대학교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왔다. 

이처럼 민주화운동 최일선에서 묵묵하게 활동해온 고인은 지난 2014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에 집중해왔다. 고인은 투병 중에도 호남유가협과 박승희장학재단의 활동을 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은 최근 2~3개월 전부터 식사조차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악화돼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운명했다.

고 박심배 선생이 생전에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묘역(옛 5.18묘지)에서 개최된 딸 박승희 열사 추모제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는 모습.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 제공
고 박심배 선생이 생전에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민족민주열사묘역(옛 5.18묘지)에서 개최된 딸 박승희 열사 추모제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는 모습.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 제공

오창규 박승희 정신계승사업회장은 “고 박심배 아버지는 박승희 열사를 기억하는 모든이게게 내리사랑을 보여주셨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박승희의 후배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우리들의 아버지’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또 오 회장은 “딸을 먼저 보낸 아픔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박승희 열사의 정신계승을 위한 활동을 펼쳐나겠다”고 밝혔다.

고 박승희 열사는 목포정명여고 재학 당시에는 전교조 교사 해직반대 투쟁을 전남대학교에 입학해서는 교지 용봉편집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박 열사는 전남대 식품영양학과 2학년 재학 중이던 1991년 4월 29일 명지대 강경대 학생 사망 규탄대회가 열린 전남대 5·18광장에서 "노태우 정권 타도하고 미국놈들 몰아내자. 2만 학우 단결하라"를 외치며 분신한 뒤 병원 치료 중 사망했다.

올해 박 열사의 분신투쟁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고 박심배 선생이 생전에 부인 이영순 님과 함께 딸 전남대학교에서 박승희 열사 명예졸업장을 받고 있다.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 제공
2007년 2월 고 박심배 선생이 생전에 부인 이영순 님과 함께 전남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딸 박승희 열사의 명예졸업장을 받고 있다.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 제공

박승희 열사 부친 고 박심배 선생 분향소는 광주 만평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5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전남 무안 선영. 장례 절차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진행한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이양순 님과 아들 선경, 딸 정휘, 자부 김지연, 사위 고갑배.

고인의 운구는 15일 오전 장례식장 발인에 이어 박승희 열사 모교인 전남대학교 정문과 박승희 정원 그리고 후문을 거쳐 전남 목포 자택을 돌아본 후 화장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장례식장 호상은 박승희 정신계승사업회와 전남대학교 민주동우회가 맡았다. 

/(062)611- 0031. 광주 만평장례식장.
/부의 계좌: 국민은행 777101-01-155626 (오창규 박승희 정신계승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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