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어머니로부터 얻은 삶의 지혜
‘산경’ ‘모경’ 두 권으로 펴내

전남 담양군 대덕면 소재지에서 만덕산과 연산이 이루는 골짜기를 넘어가면 꾀꼬리봉 자락에 문학집필공간 ‘글 낳은 집’이 있다.

전국의 문인들이 이곳에 머물며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창작의 산실인데, 이 집의 주인장이 김규성 시인이다.

김규성 시인의 '산경', '모경' 표지그림. ⓒ문학들
김규성 시인의 '산경', '모경' 표지그림. ⓒ문학들

 

전남 영광이 고향인 김 시인은 “어린 시절 산과 바다를 끼고 자랐으며, 어머니의 칭찬을 채찍 삼아 자랐다.”고 한다. 성격형성기의 배경이자 모태인 그 기억은 나이 들어 시인을 다시 산자락에 둥지를 틀게 했다.

경의 한자어인 ‘經’은 비단실과 베틀의 세로줄 모양을 조합한 글자이니 바른 길이 곧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경전’ 하면 어쩐지 쉽게 가닿기 어려운 거리감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경’의 글자를 빌려 오긴 했으나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에서 우러나온 산과 어머니에 대한 ‘헌사’ 정도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한다.

흔히 ‘헌사’라고 하면 과장된 수사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시선은 곧고 사유는 냉철하며 표현은 단박하다.

어머니는 나를 보실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어여쁜 꽃이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나는 나이 들어서도 한 송이 꽃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한테만 그토록 삼삼히 눈에 밟히는 꽃이었다. 그러기에 내가 꽃이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한사코 오래오래 사셔야만 했다. 그 천하의 유일한 꽃 감정사가 살아 계실 때 더 어여쁜 꽃을 피우지 못한 죄가 새록새록 아프다. - ‘모경’ 중에서

내 품속에 둥지를 틀고 드나드는 새가 몇 마리인지 나는 모른다. 물론 어제 딱따구리가 새끼를 몇 마리나 낳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모르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스스럼없이 앉고, 날고, 노래하는 자유와 평화의 원천인 것만 알 뿐이다.

- ‘산경’ 중에서

그러니까 저자가 살아오면서 삶의 척도가 돼 준 말들을 한 자 한 자 적어 모아 놓은 것이 바로 이 책들이다. 그중 어머니에게서 발원한 것이 ‘모경’이 되었고, 산에서 발원한 것이 ‘산경’이 되었다.

어머니의 소망은 내가 잘 되고 잘 살기를 바라는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일념뿐이셨다. 비록 몸은 가셨지만 어머니는 그 간곡한 말씀으로 내 속에 살아 계신다. 이제 내 품에 그 말씀을 온전히 품을 차례다. 늦게나마 그분의 말씀과 그분에 관한 기억을 모아 한 권의 경을 엮는다. - ‘모경’ 서문 중에서

아직까지 나는 산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어떤 사람도, 책도 만나지 못했다. 우주가 한 편의 시라면 산의 언어는 그 행간을 이루는 침묵과 닮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만 조심스럽게 되새길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자고새면 가까이서 산의 숨결을 지켜보기에 떠듬떠듬/더듬더듬이라도 그 혀끝에 다가가려고 어설픈 옹알이를 하는 중이다. 그래도 익숙한 인간의 언어보다 턱없이 미숙할 뿐인 산의 언어를 통해 깨치는 말맛이 갈수록 오묘하고 옹골지다. - ‘산경’ 서문 중에서

김규성 시인은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 『신이 놓친 악보』, 『시간에는 나사가 있다』를, 산문집 『산들내 민들레』, 『뫔』 등을 펴냈다.

『산들내 민들레』가 이 땅의 초목에 깃든 삶의 비밀을 풀어헤친 책이라면, 『뫔』은 동서양의 고전에 기대어 몸과 마음의 비밀을 풀어헤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펴낸 『산경』에는 산에서 얻은 단상 108편이, 『모경』에는 어머니로부터 터득한 삶의 지혜 90편이 수록돼 있다.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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