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동맹이 그립다

학교 때 가장 싫은 것이 시험이었다. 공부 잘하는 녀석들이야 무슨 걱정이랴만, 공부 못하는 나는 참 싫었다. 백지동맹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시험 보기 싫다고 백지동맹 하면 말도 아니다.

시험은 비단 학생들에게만 골치가 아니다. 취직시험 보는 취준생들도 얼마나 싫겠는가. 시험제도를 누가 만들었는지 원망스러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오래 살면 손주 녀석 환갑잔치 차려 준다더니 나도 오래 사니까 희한한 구경을 했다. 국민면접이라는 시험이다. 대통령 되겠다는 후보들이 국민에게 면접시험을 보는 것이다.

혹시나 변칙 커닝이라도 있을까 걱정됐는지 완벽한 공정시험이었다. 얼굴 가리고 음성 변조하고 점수는 성명 미상의 국민이 매긴다. 이 정도면 믿어도 될 것이다.

■누가 우등생이냐

더불어민주당 국민면접 장면. ⓒ더불어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국민면접 장면. ⓒ더불어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시험에서 가장 관심거리는 성적이다. 성적에 따라 취직이 되기도 하고 우등상을 타기도 한다. 미역국도 먹는다. 이번 국민면접 성적은 어떤가. 시험이 끝나고 종합성적이 발표됐다.

1등 이낙연, 2등 이광재, 3등 최문순

참 기분이 좋다. 기분 좋은 이유를 들어보라. 이낙연의 1등이 제일 기분 좋다. 2등 이광재는 생면부지인 날 찾아와 노무현 후보의 후원회장을 해 달라던 노무현 비서 출신이다. 난 이광재의 후원회장을 했다.

3등을 한 최문순은 그가 MBC 기자일 때 함께 언론민주화운동을 한 동지다. 국민면접 성적발표 후 축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역시 선생님 눈은 다르다는 민망스러운 찬사다. 그러나 부끄럽지는 않다. 솔직히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재명이 어떤 성적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다들 아니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유독 이재명에게만 어려운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거 없다. 그럼 왜인가.

가장 큰 문제는 신뢰다. 지지율과는 상관없이 이재명은 국민으로부터 점차 불신을 받고 있다. 이재명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그의 행동과 말에서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낙연을 공개 지지하지 않았을 때도 내 생각은 변함없었고 그의 참모들에게도 늘 충고했다.

그의 상표이자 정치생명과도 같은 ‘기본소득’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면접관 시험에서는 기본소득이 사라지고 ‘성장’이 등장 했다. 물론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성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왔다 갔다 하는 이재명의 ‘기본소득’ 발언은 신뢰에 치명적인 장애가 될 것이다.

여배우 김부선의 문제도 그렇다. ‘여배우 얘기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 반문했지만 이재명이 살아 있는 날까지 따라다닐 것이다. 무조건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면 된다. 변명이 필요 없다. 형수 욕설 문제도 그렇다. 사족이 필요 없다. 나도 욕설을 들었지만, 귀가 아니라 아예 눈을 감았다. 변명이 필요 없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정치지도자와 거짓말

세상에 거짓말 하나도 안 하는 사람은 없디. 그러나 상식을 벗어난 거짓말은 지도자들에게 금기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이낙연 전 대표가 상식을 벗어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내가 확인했다면 그들과의 인연은 벌써 끝이 났을 것이다.

정치가는 정직해야 한다.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하면서 세월이 가면 국민이 잊어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절대로 잊지 않는다.

이낙연 전 대표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 그렇다. 국민의 삶을 지켜주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라는 거대한 배를 모는 선장이다.

이제 이낙연이 선장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부터 이낙연 후보다. 국민은 이낙연을 믿는다. 이낙연 후보는 거짓말을 안 한다.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앞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토론과 보도가 쏟아질 것이다. 국민들은 정신 차리고 지켜봐야 한다. 선장이 배를 잘못 몰면 배는 침몰이다. 국민은 죽는다. 후보들은 매일 면접을 본다는 긴장감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