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생각하며 돌아보게 되는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은 18년간 시설에서 생활하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언니 장혜영과 함께 시설을 나오게 된 중증 발달장애인 장혜정에게 카메라를 가까이한다.

하지만 영화는 시설 혹은 지역사회를 둘러싼 의제나 안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에 내내 몰두한다.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묶어 말하는 '발달 장애'. 장애인의 범주에서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가시화되지 않아 정의마저 생소할 수 있는 발달 장애를 지닌 이가 탈시설 하는 이야기를 다룸에도 이 다큐멘터리는 바깥으로 질문을 향하기보다는 삶을 구성하는 내부의 문제에 집중한다.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 누리집 갈무리

여기엔 비장애인이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 내던져진 장애인을 훈육하여 성장시키는 이야기가 들어서지 않는다.

자립과 의존이라는 해묵은 이분법에 입각한 구도를 대립각으로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관계를 통해 변모하는 삶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데에 충실할 뿐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공생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물론 대상을 지켜보며 담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대상을 충실히 따라가며 관찰하는 속성을 얼마간 지닌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혜정을 관찰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혜영을 필두로 한 일원들이 어떻게 따로 또 같이 혜정과 함께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힌다. 이러한 삶의 양식에서 의존이 필요한 건 비단 혜정만이 아니다. 혜정의 존재 없이 과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도 생각해봤으나 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은 혜영에게도 동생 혜정의 존재는 절실하다. 

<어른이 되면>은 여러 푸티지를 결합한 결과물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본격 착수하기 이전부터 동생 혜정과 함께 하는 브이로그를 제작하여 ‘생각 많은 둘째 언니’에 올려온 혜영과 메인 촬영 감독을 맡은 윤정민, 정민을 따라 합류한 이은경까지 세 명이 합세하여 촬영한 이 푸티지들의 배합은 일관된 형식으로 구성된 원칙을 띄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누리집 갈무리

이는 혜정을 바라보는 혜정의 시선이 영화를 구성하는 중심임에도 카메라가 특정 시점만을 고수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과 상통한다. 혜영이 바라보는 혜정을 비롯하여 함께 하는 동료들의 기록은 주변에 존재하는 삶의 양태 역시 살피게끔 한다.

그렇지만 혜정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마주하는 사람은 역시 혜영이다. 혜정의 탈시설 생활을 구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기획은 혜영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었기에. 혜영의 계획은 순탄치 않으며 시행착오가 잇따른다. 

극 중 혜영의 말처럼 그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는 혜영 자신으로서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혜정이 언니로서의 시간이다. 두 개의 시간은 혜정에게도 필요하다.

<어른이 되면>의 중반까지는 주로 두 세계가 곧잘 충돌하는 과정을 그리는데, 대외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과 혜정과 혜영 사이의 내적 관계에서의 겪는 난항이 주요한 부분들로 자리한다.

장애인 활동보조 등급 심사를 위해 찾아간 곳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사무적인 질문들, 이를테면 신변 처리, 전기밥솥에 밥을 할 수 있는 가능 유무 등만으로는 발달 장애의 특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며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신체적) 장애보다 서비스 할당 시간을 낮게 받을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되면' 누리집 갈무리

이로 인해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것조차 녹록지 않은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사회로 나와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생경한 경험에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고 난관에 봉착하는 건 혜정뿐이 아니다.

혜정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면서도 상황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타일러야 할지 감을 잡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혜영 역시 마찬가지다.

가까이 지내야 할 두 자매는 긴 세월 떨어져 지냄으로 인해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어색한 모습이 혜정이 줄곧 겉돌면서 그들은 미묘하게 서로에 엇갈리거나 다소간 불편해 보인다.

이는 영화의 도입부, 시설 밖에서 혜정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짐을 푸는 혜영과 일행들을 스케치하는 단락에서부터 선명히 드러난다. 집안 정리를 돕는 일행들이 방 밖에 나와 있는 와중에 혜정은 혜영을 앞에 두고선 방 안 벽에 기대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훔친다.

ⓒ'어른이 되면' 누리집 갈무리

영화의 전반부는 혜영이 겪는 내외적 마찰과 불안이 중심축이 되며 서로가 붙지 않는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혼자서 따로 행동하는 혜정을 기록하는 카메라와 시설 바깥의 중증 발달장애 생활 관련 문의차 전화를 하는 혜영의 목소리, 그리고 혜영의 보이스오버가 겹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혜영이 카메라를 직접 들고 그의 시점에서 혜정을 촬영할 때도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짙게 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사무실을 방문한 장면에서 시선도 대답도 돌려주지 않는 혜정과 그를 지켜만 보는 혜영을 보고 있자면, 혜정과 혜영이 마치 불화하는 관계처럼도 보인다.

카메라를 잡은 혜영의 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영화 속 내레이션의 화자로 등장하는 혜영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는 상황 전체를 조망하는 전지적 시점의 음성이 아니다.

현재의 쉽지 않은 상황과 전망하기 어려운 앞날 사이에서 서성이는 자의 심정이 담긴 독백이다. 처음 혜영은 본인이 가진 재량 안에서 혜정을 이해하고 다가가려 하는 듯하다.

ⓒ'어른이 되면' 누리집 갈무리

그러나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하나의 주체로 대할 때의 태도는 막연한 인내심이나 동정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부딪쳐 체험하여 깨닫게 되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일 것이다.

혜영의 내적 불안이 깃든 카메라의 시선과 내레이션의 음성은 노을이 드리운 바닷가의 다리에서 움직이는 혜정을 포착하면서 만난다. 여기서도 두 사람 사이의 불안한 기운이 한 번 더 극명히 드러난다.

함께 태어나고 자랐던 사회에서 첫걸음을 막 딛은 혜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의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때마다 겁이 났던 혜영은 말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내다 이제야 막 다시 같이 살기 시작한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나는 조바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보기로 했다.” 그렇기에 혜영은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혜정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장애인은 이럴 거야'라는 추측이나 '장애인은 이렇게 대하라'라는 매뉴얼로는 체득할 수 없는 기술. 비장애인은 끝없이 몸을 부딪치고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익혀야 하고,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알아듣게 설명하는 반복적인 노동을 거쳐야 한다.”(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외, <어쩌면 이상한 몸>, 2018).

비장애인의 이야기가 하나로 통합하여 완결 지을 수 있는 서사가 아닌 것처럼 장애인의 삶 역시도 각각의 층위가 있다. 더군다나 18년이나 서로에 떨어져 보낸 세월은 무시할 수 없다.

ⓒ'어른이 되면' 누리집 갈무리

혜영이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던지는 질문들이 중반부까지 영화를 채우는 주된 요소였다면, 후반부로 향할수록 혜영이 잠시 물러서면서 혜정과 혜영은 각자의 시간을 찾는다.

온전히 합치될 수 없는 두 사람의 세계가 묶이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지점은 이를 섣불리 양립하려 드는 태도가 아니다. 여럿이 어울려 선다는 뜻을 가진 연립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홀로서기도 낙인화된 의존도 아닌, 함께 서기로서의 연립생활로 나아가야 한다.”(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2019). 혜영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혜정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다음 이어지는 장면에서 혜영은 대학 시절 함께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이후 영화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온 이들 간의 연립이 빛을 발하는 대목들로 차츰 채워지기 시작한다.

환경재단이 주최한 2017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시상식에서 수상한 혜영과 동석한 혜정은 대뜸 무대로 유유히 무대로 뛰쳐나가 불독맨션의 공연의 장단에 맞춰 춤춘다. ‘저 파란 하늘 구름 위로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햇살처럼 환한 미소가 좋은 그대 있어. 지금 난 행복합니다.’라는 가사에 걸맞게 혜정이 흥을 돋우며 자리를 비추는 순간이다.

ⓒ'어른이 되면' 누리집 갈무리

영화의 종반부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이들을 혜영이 초대한 자리에서 혜정과 혜영은 함께 노래한다. 카메라는 그들을 오랫동안 담는데, 그전까지 혜영을 위시한 특정인의 시점을 견지했던 카메라의 존재는 이 대목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 지냄에도 평행세계에 지내는 마냥 좀체 섞이지 않는 것만 같았던 두 인물이 비로소 한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을 바라보게 되는 셈이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새 없이 일상을 분주히 담는 것에 주력한 영화는 이제 반년의 시간이 지나 집 안에서 조촐하게 2018년 새해를 맞이하는 마지막에 이른다.

혜영의 음성이 지적하듯 그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삶에 충실했던 혜영은 혜정과 한 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 작지만 귀중한 성과를 거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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