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유서

죽은 사람이 남긴 말을 유서(遺書)라고 한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고 죽은 다음에는 말을 못하니 미리 할 말을 해 두자는 것이다. 과연 유서에는 할 말을 다 할 수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유서에도 뺄 말은 다 빼게 되어 있다. 왜냐면 죽은 다음에도 창피한 것은 역시 창피하기 때문이다.

그럼 유서는 왜 쓰는가.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사형이라는 말 한마디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죄 없는 사형수들은 얼마나 할 말이 많을 것이냐. 할 말이 아무리 많으면 무슨 소용이랴. 누구한테 말을 남긴다는 말이냐. 죽은 자는 입이 없다. 유서를 남기는 이유다.

누구나 인간은 내놓고 하지 못 할 말이 있다. 내놓고 하지 못 할 말이 진실이다. 박정희의 가슴에는 무슨 유언이 있을까. 전두환은? 박근혜와 이명박은 무슨 유언을 가슴에 품고 있을까.

■공개 못하는 유언

ⓒ더불어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누리집 갈무리

유언을 쓴 경험이 있다. 6·25 때 시골로 피난 갔는데 장티푸스(염병)가 유행했다. 그때 감기가 들었다. 염병에 걸린 줄 알았다. 어린 나이에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머니한테 잘못한 일들이다.

공부 안 하고 말 안 듣고 말썽 피우고. 난 공책에 유서를 썼다. 눈물 흘리며 썼다. “어머니 잘못 했습니다.”

잠이 깨 보니 어머니가 내 유서를 보고 계셨다. 날 물끄러미 보고 계셨다. 난 또 울었다. ‘죽지 않을 테니 아무 걱정 마라.’ 어머니가 날 안아주시며 우셨다. 내 최초 유서다.

가슴속에 유서가 수도 없이 많다. 수 없이 유서를 쓴다. 지금도 쓴다.

■유서를 써라.

죄지은 놈들이 다 털어놓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돌아다니며 죄를 나팔 불고 다닐 수도 없다. 방법은 유서다. 공개하지 못할 마음속의 유서다. 흔히 일말의 양심이라고 하는데 인간에게는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죽이려 해도 안 된다. 자신의 양심이라 해도 죽지 않는다. 죽을 때 까지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죽어보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육신은 죽어도 양심은 살아 있지 않을까. 영원불멸의 양심이다.

오랜 수사관 생활을 했던 친구가 한 말이다.

‘죄가 없다고 그렇게 버티던 놈이 자백을 한다. 눈을 보면 안다. 자백한 다음에 눈빛이 맑아진다. 마음속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다.’

국회 단상에 올라 사자후가 아닌 ‘생쥐후’를 토한 의원들은 마치 자신이 세상에 옳은 소리를 다 모아 쏟아놓은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양심의 눈은 그 말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 말 중에 몇 마디나 가슴에 남는 유서로서 영원히 존재할 것인가.

정치는 정의와 불의 사이에 존재한다. 올바른 정치인은 정의를 말하고 사악한 정치인은 불의를 말한다. 물론 위선이다. 사악한 자들의 위선이 잠시 정의인 듯 보이지만 금방 들통이 난다.

지금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여론이란 이름으로 염색한 가발을 썼지만 염색은 탈색이 되고 가발은 양심의 바람으로 벗겨지게 되어 있다.

■민주당은 유서를 써라.

유서는 죽은 다음에 공개되는 것이다. 가짜 유서도 있는가. 몰론 있다. 그러나 가슴속 유서는 가짜가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 민주당이 사과했다. 무슨 사과인가. 무엇을 잘못 했는가. 언론에 잘못 했는가. 검찰에 잘못했는가. 아니면 국민의힘에 잘못했는가.

유서를 써라. 무엇을 잘못 했는지 써라. 송영길을 비롯해서 민주당 지도부는 양심의 살점을 떼어서 피로서 유서를 써라. 가슴이 후련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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