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톡톡] 보이지 않는 역사적 진실
[영화 톡톡] 보이지 않는 역사적 진실
  • 고영상 시민기자
  • 승인 2021.05.28 2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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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포착 못한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 - 강상우 감독의 '김군'

붉은 화살표가 스크린을 가로지른다. 화살표는 페퍼포그 차량에 탑승한 남성의 사진에서 시작해 5.18 현장의 사진과 그 위에 오버랩 되는 북한군의 이미지를 경유하여 한 남성의 사진에 도착한다.

군사평론가 지만원 씨의 주장에 의하면 이 남성은 김창식이란 사람으로 사진 속 남성과 동일인물, 즉 5.18때 폭동을 선동한 북한군이라고 한다. 그렇게 사진 속 남성은 지만원 씨가 선보이는 기하학적 분석을 거쳐 김창식이라는 인물이자 제1광수라 명명된다.

한 사람의 이름(영화에서 말하는 ‘김군’)이 소거되고 그 자리를 제1광수라는 숫자가 차지하는 이 과정은 평범한 사진을 정치적 텍스트로 변모시키는 일종의 신화화 과정이다. 이 신화화 과정을, 스크린을 가로지르던 붉은 화살표가 관통하고 있다.

<김군>은 이 붉은 화살표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제거하는 환원과정의 영화다. 또는 이미지의 순수한 상태를 보기 위해 그 위에 쌓아올려진 신화를 걷어내려는 탈신화화의 영화다.

영화가 되돌리고자하는 원래의 자리란, 사진 속 남성이 더 이상 숫자로서 명명되지 않고 순수하게 그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자리를 말한다. 그래서 영화는 사진에 차후 덧붙여진 이야기를 덜어내고 그 밑에 있을 진실을 보고자 한다.

그 자리에 닿기 위해 사용되는 전략(또는 영화가 취하는 태도)은 ‘질문하기’이다. 질문은 곧 이 영화의 동력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1989년 광주청문회의 일부를 가져와 5.18 당시 광주의 복면을 쓴 사람들의 정체에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이 최초의 질문에 답을 얻었을 때에야 <김군>은 비로소 그 운동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그 전략대로 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사진 속 남성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고 말이다.

이 질문의 연속을 통해 영화가 차츰 가까워지는 것은 첫째로는 김군의 행방에 대한 정보이고 둘째로는 5.18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이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은 80년 5월의 사진을 보고 저마다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때 영화는 인터뷰이의 음성은 남겨놓은 채 프레임 안에 과거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공존은 마치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5.18의 이미지에 당사자의 기억을 불러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미지 위에 기억을 불러들이는 것. 이것은 표면상으론 과거의 이미지에 현재의 음성이 중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를테면 인터뷰는 현시점에서 이뤄지지만 당사자들의 시계는 80년 5월에 멈춰있다.

오기철 씨의 말대로 당사자들에게 5.18 당시를 기억해 버리는 것은 다시 그 시간으로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거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은 단지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다.

이 사진엔 지난 40년이라는 세월동안 후시적으로 의미와 해석이 덧붙어 신화가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진을 보면서도 추후에 덧붙여진 의미를 읽어낸다.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정확하게 나눠보기엔 과거의 사진은 현재의 시점이 개입되어 있고, 현재의 인터뷰이 음성에는 과거의 시점이 얽매여 있다.

그리고 이 기이한 시간관계의 사진과 음성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프레임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 즉 사진이 포착하지 못한 순간들에 관한 이미지다.

5.18의 사진은 당시 포착한 시간은 보여줄 수 있지만 그 앞뒤에 놓인 시간에 관해선 보여주지 못한다. 반대로 당사자의 증언은 그 앞뒤에 놓인 시간까지도 들려줄 수 있지만 시각적으로 보여주진 못한다.

그러나 사진과 음성이 한 프레임 안에 담겼을 때, 둘은 서로를 보완하고 더 나아가 사진 바깥에 놓인 시간을 프레임 안에서 환기한다. 그저 사진으로만 제시되었을 때엔 감각하지 못했던 당시의 실재했던 시간들이자 신화에 가려져 있던 5.18의 순수한 이미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80년 5월을 떠올리며 김태찬 씨는 그땐 자신이 오염되지 않았다며 그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무엇이 지금의 그를 오염시켰는가. 이 질문에 영화는 직접 답하진 않지만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정치가 그 오염의 주범이라 말하는 듯하다.

영화 <김군>의 성취는 단지 사진 속 김군의 행방을 찾아내 북한군 개입설에 정확한 반박을 가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진정한 성취는 기존의 5.18에 관한 이미지가 포착하지 못한 이미지를 구원해낸 것이며, 그것은 곧 역사적 진실의 규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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