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전시 '법 앞에서'...판결문에 가려진 그들의 삶
5.18전시 '법 앞에서'...판결문에 가려진 그들의 삶
  • 조현옥 편집위원
  • 승인 2021.05.15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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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낙인 속 그들의 ‘등재되지 못한 삶’은 어디에 있는가?
‘계엄법’ 폭력으로 고통 받았던 개인의 삶...비등재 재판기록
지난 7일부터 6월30일까지 5·18기념문화센터 B1 전시실

5‧18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전시 <법 앞에서>가 5·18기념문화센터 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5‧18기념재단,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남대5‧18연구소는 5·18기록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아홉 가지 기록물 중 ‘군사법기관 재판자료 및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자료’를 중심으로 평범했던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민주화운동 형사사건 판결문(기록명칭: 광주사건 판결문) 4권(제41~44호)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판결문(기록명칭: 김대중 사건 판결문) 1권(제40호)은 그들이 자백했던 ‘범죄 사실’, ‘폭력과 낙인’만 확인해 줄 뿐 그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등재되지 못한 자들의 삶의 그 기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5‧18항쟁 전후 계엄 당국은 주요 민주 인사, 대학생, 일반 시민, 시민군 등 사람들을 체포‧구금했다. 광주지역에서 이들은 경찰서, 보안사 등에 구금되었다가 상무대 영창으로 이송되어 반인권적 검찰 조사를 받았다.

'기절할 정도로 가혹한 구타, 잠 안 재우기, 물고문, 대질 신문 등이 반복' 그 끝은 범죄 사실의 ‘자백’이었다.

폭력과 자백을 거친 사람들은 1980년 12월 말까지 진행된 1~2심 재판과정에서 대부분 출소하였고, 1981년 4월 3일 나머지 사람들이 잔형집행면제로 출소했다. 이들은 몸은 풀려났지만 그들의 삶은 그러하지 못했다.

학생은 더는 학생이 아니었고, 회사원은 더는 회사원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빨갱이·폭도·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가진 다른 ‘나’였다.

전시기획자 서다솜, 이지영, 연구원 유경남은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 5·18자유공원(옛 상무대 영창 복원), 옛 광주교도소를 답사하고, 재판을 경험했던 박영순·박재택·이해모·이우정·김광호·이순로 등을 만났다.

그들의 재판기록과 증언집을 통해 그들의 삶을 단절시키고 고통받게 만들었던 법, ‘법이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법인가?’ 질문한다.

‘판결문’에 가려진 가야금 특기생이었던 여고생, 영암에서 제일 예쁜 여인과 살고 있다는 아저씨, 형의 삶이 궁금한 동생 등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정리했다.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개인들의 재판기록, 1980년 당시 계엄 당국이 시민들을 ‘폭도’와 ‘빨갱이’로 왜곡하기 위해 제작했던 영상물 대한뉴스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제작되었던 <오! 광주>,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등이 준비됐다.

오는 26일부터 5·18기념재단 누리집(http://www.518.org)에서 온라인 전시도 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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