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부터 30일까지

'보루(堡壘) -예술이 된 노무현' 전시가 5월1일~5월30일 까지 오월미술관(관장 범현이)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오월의 중심에 우뚝 자리매김하고 있는 고인의 생각과 사람 사는 세상의 구현을 위해 국민을 바라보던 눈빛을 되새김하고 기리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지켜내지 못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고 위무하며 살아생전과 그 후, 그로 인해 영감을 받았던 분명함이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로 재생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도로 그분에 대한 생각과 그리움, 정신, 발자취 등을 동시대 예술 언어로 표현한 작품을 전시로 이끄는데 모두의 의견이 모였다.

11명의 작가 선정은 논의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그분의 정의와 철학에 근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현재성을 가진 작업에 주안점을 두었다.

장르와 재료 구분 없이 평면회화, 조각, 조소, 목조각, 서각, 사진 등 다양한 영감과 예술성에서 조형성을 찾고 싶었다.

김광례 작가의 <우리 모두의 얼굴, 노무현>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흉상(胸像)이다. 근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작가는 이 흉상 작업에 매진했다. 흙으로 얼굴을 빚은 것은 나중 일이고 많은 시간을 들여 그분의 얼굴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이 먼저였다.

마침내 완성한 흉상은 고인의 깊고 서늘한 눈빛과 삶의 고뇌와 일국(一國)의 대통령만이 가질 수 있는 국민을 향한 자애로운 미소까지 머금은 작품이 되었다.

김민홍 작가의 <돌담길 산책>, <평화마을>은 그분의 평안과 안식을 갈구하는 국민의 소망을 담았다. 지키지 못해서 위무는 더 크고 깊었다. 시골의 소박한 돌담길은 그분이 늘 잊지 않았던 평화와도 같은 안식을 뜻한다.

박성완 작가의 <노란 한복>은 깊으면서 애잔한 눈빛이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한다. 노란빛이 내뿜는 우울한 막막함과 멀리 자신의 왼편을 응시하는 서늘한 표정이 언어 이상의 무엇을 생각하게 한다.

<잠> 역시 애잔하기 그지없다. 힘없이 소파 아래를 향하고 있는 다리에 실린 대통령의 무게와 헝클어진 넥타이로 표상되는 쪽잠의 시간을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박성완-잠 45.5x33.3cm_oil on canvas_2021.
박성완-잠. 45.5x33.3cm_oil on canvas_2021.

배달래 작가의 <삶이 꽃이 되는 순간Ⅰ, Ⅴ> 두 점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물음이며 답이다. 봄에 피고 여름의 절정을 붉게 환호하며 결국 산화해가는 맨드라미라는 매개를 통해 그분이 원했고, 지향했던 철학과 정신을 담아 표출하고 있다.

배일섭 작가의 <탐음(貪飮)>은 말초적이며 허황한 세상의 쓸쓸함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이 무엇인가를 역산하게 한다. 물론 혼자 있어도 쓸쓸하지도 외롭지 않은 술자리 같은 세상 속에 있지만 좋은 사람들과 같이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작가는 작품으로 주장한다.

서영실 작가는 <섬이 된 바위> 두 점 연작에서 신념을 조형했다. 한 점의 그림 안에는 해, 다른 한 점에는 달이 둥실 떠 있는, 비슷하면서 확연하게 다른 두 작품이 모여 연작으로 한 점을 이룬다.

예로부터 궁중회화를 대표하는 일월(日月)은 절대적 왕권, 태평성대를 의미하며 고귀한 것, 특별한 것, 유일한 것이라는 상징을 함축한다. 소나무와 굳건하게 우뚝 솟은 바위, 해와 달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금세 알게 하기에 충분하다.

윤우영 작가는 <아프리오리(apriori)-치유와 상생>이란 작품을 통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내상을 입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조형언어를 보여준다. 단순한 선과 색감으로 더 자유로운 생각과 편안함을 유도하고 있다.

이기성 작가의 <불이문(不二門)> 조각 작품은 눈물겹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 봉화마을에 다녀왔다. 봉화마을 뒷산의 실제 돌을 가져와 제작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는 모든 것, 그 이상을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작품명도 진리는 둘이 아니란 뜻을 가진 불이문(不二門)이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작품에서 거듭 꽃을 피웠다.

최대주 작가의 <자연인>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고인이 꿈꾸던 세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인으로 살고자 했고, 자연인의 삶을 꿈꾸던 지향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최대주- 자연인.
최대주- 자연인.

최선동 작가의 <강물처럼>은 가장 피부에 와닿는 작업이다. 고인의 말씀을 디지털 카빙으로 옮겨적고 이미지를 각인한 작품으로 일반인 누구나 이해가 쉬워서 소장하고 싶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최은태 작가의 <사람 사는 세상>과 <바보, 대동세상을 꿈꾸다>는 동(銅)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견고한 작품이다. 약품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부식시키는 과정은 대통령 재임 기간 겪었던 파란만장한 시간을 뜻하며, 그분이 꿈꾸던 세상을 단어로 형상화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하시는 대통령’이란 노래를 배우고 불렀다. ‘국민교육헌장’도 외웠다. 심지어 다니던 초등학교 대표로 선정되어 ‘국민교육헌장’ 외우기 광주전남대회에 나가 큰 상도 받았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의 나라로 알았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으니 마땅했다. 내가 살고 있던 세상 전부였으니까.

허상이 깨진 것은 그리 머지않았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만난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백기완 선생의 ‘자주고름 입에 물고’라는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허물어져 갔던 당연한 수순(手順)을 밟았다.

그리고 자국민을 향한 국가폭력과 살육의 현장인 오월항쟁을 겪으며 한국식민주주의와 유신독재와 군부독재, 대한민국의 두 얼굴을 첨예하게 알게 되었다.

광주에서 5월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오월 영령의 전언(傳言)을 받는 달이다. 1980년 5월 이후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까지 우리는 그 전언을 듣고 있다.

5월 17일에 시작된 10일간의 오월항쟁 중, 5월 23일은 광주시민이 궐기대회를 시작한, 하나 된 광주가 되던 대동세상의 문을 열던 날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일과 기묘하게 겹쳐있다.

'보루(堡壘)_ 예술이 된 노무현' 전시는 5월 한 달 동안 진행된다. 작가는 시대를 작업으로 증언한다. 동시대 작가들이 해석하고 조형한 그분의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깊은 통찰로 들여다볼 일이다.

10도가 오르내리는 온도 차의 5월. 붉은 넌출 장미가 서서히 하얀 벽을 물들여가는 5월. 그 어디에도 칸나도 봉숭아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던 5월.

그 오월이 다시 왔다. 그리고 그분을 기억하는 그날도 다시 왔다.

(062)233~2006. 오월미술관.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29-1,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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