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미술관] 0.5mm 세필과 금니(金泥)로 작업하는 작가 이현정 작품전
[오월미술관] 0.5mm 세필과 금니(金泥)로 작업하는 작가 이현정 작품전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1.04.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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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미술관서 지난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전시

결국, 아름다운 생(生)!

2007년에 작가를 처음 만났다.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따금 먼 발치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고, 때로는 바라보았다.

그리고 2020년, 전주에서 작가를 다시 만났다. 수초의 사이사이를 헤치며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작가였다. 물고기의 화려한 지느러미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를 거쳐 간 세상의 한 단면이 얼굴에 보였다. 밝았다.

침윤했던 표정은 밝아졌고, 좁은 어깨에 세상을 향한 도전이 힘으로 들어가 있었다. 무엇보다 당당해졌다. 코를 세우고 턱을 밀어 올려 하늘을 바라보며 단단하게 걸었다. 잘했어. 이제 세상으로 걸어 가보는 거야. 작가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먼 길을 돌아왔다.

12번째의 개인전이다. 지난겨울에 전시를 계획했다. 타지에서 레지던시를 하면서 하루 17시간 그림을 그렸다. 작업실의 매서운 추위도 난로 하나로 버텼다. 먹고 자는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하고 붓을 쥔 손을 놀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맞은 전시. 더 정확히 말하면 생(生)!

관람객의 관심도, 요란한 소문도 원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하게 가고 있는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과 함께, 단지 검증하고 싶었다.

작가는 “추위가 극한이었는데, 그 추위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신기하다. 작업하다 시계를 보면 대낮. 또, 밖을 보면 어느새 어둠이 드리워져 있던 날들이었다. 배고픔도 추위도 느낄 수 없는데 신기하게도 뿌듯함, 무언가를 이룩하고 있다는 느낌이 지금도 선명하다”. 고 말한다.

1호에서부터 70호까지 애잔하고 화려하다. 금니(金泥)가 만들어 낸 식물의 다양한 이파리들이 물결처럼 술렁인다. 이파리일까 바라보면 물속의 수초 같고, 수초인 듯 바라보면 생의 한 가운데를 휘두르는 강력한 폭풍의 눈 같기도 하다.

작가는 “세상이 두려웠다. 그림을 사랑하는데, 그림만이 나를 살게 하는데 풍덩 몸을 담그기에는 세상이 너무 멀어 보였다”. 고 했다. 하지만 붓을 놓을 수는 없었다. 붓과 생(生) 같은 것이었다.

0.5mm의 세필로 캔버스의 구멍을 뚫어질 정도로 응시하며 선을 그려간다. 숨을 멈추며 그리고 또 그린다. 직선의 선이 선과 선을 만나면서 면과 곡선을 이루며 작업은 완성되어 간다. 아크릴로 면을 채운 단면은 선으로 이어지고 다시 서로 뻗어간다.

작가는 “엎드려 선을 그리고, 긋다 보면 어느새 밤이 오고, 또 새벽을 맞는다. 하나의 선이 나아가는 것처럼, 그림이 완성을 가까이하는 것처럼 나의 생도 점점 어딘가의 정점에 다다를 것을 이제는 알겠고, 또 그럴 것을 믿는다”. 고 말한다.

다시 만난 나의 그림들

자연물 중에서도 물고기를 탐닉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화려한 물고기들이다. 동남아의 민물에서 서식하는 ‘베타(betta)’가 그중 하나다. 민물고기인데도 꼬리의 화려함이 넋을 놓게 한다.

작가는 “베타는 서식 환경이 넓든, 좁든 혼자서 생활하는 것을 즐긴다. 홀로 유영하며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다. 아마도 DNA 자체가 그렇게 조성된 것 같다”. 고 설명했다.

베타(betta)를 그리기 위해 직접 물고기를 어항에서 사육한다.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탐구한다. 흔들어 대는 꼬리와 먹이도 연구한다. 작가는 베타를 직접 사육하면서 베타와 자신의 알게 모르게 닮은꼴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작가는 “가장 공통적인 것은 ‘혼자’라는 것이었다. 자기만의 영역을 가지고 성(成)을 구축해가는 것. 화려한 꼬리를 흔들기 위해 매시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가만히 물에 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미세하게나마 꾸리를 흔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맑은 물이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찾아낸 공통점이라면서 “나 역시 작업을 위해 끊임없이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한다.”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금니(金泥)는 화려하다. 단 한 가지의 색깔과 빛을 가졌는데도 우리는 금니를 귀하게 여기고 챙긴다. 하나의 금색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것들이 얽히고 섞여서 수만 년을 부대낀 흔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작업도 그렇다. 금니가 바닥에 깔려 있는 선의 세상 속에서 꽃과 물고기와 작가가 더불어 사는 이유가 될 것이다. 다시 만난 생(生)의 그림들이다.

# 전주에서 온 퍼포먼스 이산 작가와 콜라보레이션도 있었다. 전시 오픈 형식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19의 방역지침으로 일정이 변경되었고, 더 이상의 일정변경이 용이하지 않아 진행했다. 10여 명의 관람객 모두 방역지침을 지키고 1m 이상의 거리유지를 한 채 이 산작가의 퍼포먼스를 관람했다.

(062)233~2006. 오월미술관.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29-1,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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