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를 빛낸 사람들', 이완용 방응모 김성수 박정희 등 92명 '포박'..."역사심판"
'권력해부도', '통일염원도', '이라크전쟁반대', '지옥도' 등 비엔날레에 7점 출품
31일 오후 독립운동가 후손 등 40명 초청 특별관람 및 작가의 작품설명회 예정

"'일제를 빛낸 사람들'을 그리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었다` 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망언이었다."

광주에서 민족민중미술의 한길을 걸어온 이상호 화백(61)이 오는 4월 1일 개막하는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 역사의식이 명징한 회화 작품 <일제를 빛낸 사람들> <권력해부도> <이라크전쟁반대> <광주정신> <통일염원도> <지옥도> 등 7점을 출품했다.

이상호 화백이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일제를 빛낸 사람들' 작품. 대표적인 친일파 92명을 선정하여 조선시대 인물화 기법을 차용하여 각각 포승줄과 수갑을 채운 그림이다. '미완의 친일파 청산'을 예술로 청산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 전시 이후에 서울 청파동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영구 기증돼 전시된다. 417cm X 245cm. 한지에 채색. ⓒ이상호 제공
이상호 화백이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일제를 빛낸 사람들' 작품. 대표적인 친일파 92명을 선정하여 조선시대 인물화 기법을 차용하여 각각 포승줄과 수갑을 채운 그림이다. '미완의 친일파 청산'을 예술로 청산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 전시 이후에 서울 청파동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영구 기증돼 전시된다. 417cm X 245cm. 한지에 채색. ⓒ이상호 제공

〈권력해부도〉(1989)와 〈지옥도〉(2000)는 경제적, 군사적 영역에서 한국이 취한 친미 정책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드러내고, 군사적 침략의 정치를 규탄한다.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이라크 전쟁반대)〉(2003)과 <통일염원도〉(2014)는 고려 불화의 요소를 끌어왔으며 두 차례 속세를 등지고 불교에 귀의했던 이 화백의 삶이 녹아 있다.  아미타불이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지상과 극락의 화해를 지시한다.

〈통일염원도〉(2014)는 남한과 북한이 하나의 땅에서 탯줄로 연결돼, 남한이 어머니가 되고 북한이 아들이 되는 통일을 상상한다.

이상호- '권력해부도'. ⓒ예제하
이상호- '권력해부도'. 1989. ⓒ예제하

화폭 속 인물들은 남한의 한라산, 북한의 백두산, 중간에 있는 무등산 사이에 둘러싸여 한국의 민주화 투쟁과 관련된 제주 4.3 사건, 1960년 4.19 혁명, 통일 운동, 1980년 광주 5.18 민중항쟁의 역사적 인물과 함께 있다.

이중 압권은 이완용 이광수 최남선 방응모 김성수 김활란 박정희 백낙승 전봉덕 김기창 노덕술 등 대표적인 친일파 92명을 조선시대 초상화 기법으로 대형화폭에 담아 각각 포승줄과 수갑을 채워 '역사심판'을 형상화한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다. 

그림크기는 417cm X 245cm(한지에 채색)로 대형 회화작품이며, 작업기간은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여에 걸쳐 완성됐다.

이상호- '통일염원도'. ⓒ예제하
이상호- '통일염원도'. 2014. ⓒ예제하
이상호- '이라크 전쟁반대'. ⓒ예제하
이상호- '이라크 전쟁반대'. 2003. ⓒ예제하

이상호 화백은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친일 청산도'에 맞는 주제성을 높이기 위해 친일파 각 인물들에게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 기법을 대입했다.

또 친일 인물들의 내면을 극대화하기 위해 덧칠 작업을 반복한 결과 이들의 반역사적 상징성을 화폭에 담을수 있었다.   

동시에 '친일인명사전(2009)'을 놓고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회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표적인 친일파 92명을 엄선했다. 이들 중에는 구체적인 현재진행형 권력과 부로 이어지는 인물들도 배치했다.

채색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역사적 심판'이라는 주제를 간명하게 전달하고 역사청산이라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친일인물에 덧칠을 반복하고 바탕색에는 황토색을 깔았다. 

인물들의 복장은 일제시대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일제관료 옷에 남색과 일제 군복 그리고 일부에는 화려한 비단한복 색깔을 입혔다. 92명의 인물 옆에는 '친일행적' 중 가장 악랄했던 '죄업'을 작가가 일일히 붓끝으로 기록했다.   

이상호 화백이 지난해 '일제를 빛낸 사람들' 작품을 작업하고 있는 모습. ⓒ예제하
이상호 화백이 지난해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자신의 화실에서 '일제를 빛낸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예제하

이처럼 1년여 만에 완성돼 광주비엔날레에 걸린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그림으로 보는 또 하나의 '친일인명사전'이자 반민특위 해산으로 미완으로 남겨졌던 '친일파 청산'을 예술로 완성한 '역사적 결실'로 평가된다.   

미술사적으로도 김은호, 김기창 등 친일파 화가들을 등장시켜 '친일미술의 역사청산'이라는 한국현대미술사적 의미도 크다.

또 민중미술사와 광주전남민족미술사적으로도 광주비엔날레라는 세계적인 미술행사에 한국근현대사의 어두운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이상호'라는 걸출한 민중화가로부터 탄생했다는 것도 큰 궤적으로 평가된다.

이상호 화백은 작품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로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을 들으면서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분노심이 끓어올랐고 역사적으로 청산하지 못한 일을 그림으로라도 청산하고 싶었다"고 민족민중화가로서 역사적 책무감을 들었다.

이 화백은 "암울했던 일제식민지시대가 끝나고 해방이 된 지 76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주와 민주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며 "친일 권력은 미군정을 거쳐 고스란히 독재 권력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독재와 부정 권력들의 횡포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제하
ⓒ예제하

이어 "민족을 판 자들과 완장을 찬 자들이 청산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또 다른 양상을 띄었다. 독립지사들은 오히려 친일파들에게 짓밟혔다"며 "적반하장의 시대, 해방된 조국은 친일에서 독재의 긴 터널로 이어졌다"고 비틀어진 한국현대사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상호 화백은 1960년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목포고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미술대에 입학한 후 민주화운동을 접하면서 민족미술의 길을 걷고 있다.  

1987년 조선대 미대 4학년 재학 당시 반미와 통일을 담은 걸개그림이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에 적용돼  '미술인 1호 보안법 위반자'로 검거돼 안기부 남영분실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투옥됐다. 고문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서 6년간 치료를 받았으며 현재도 트라우마 극복치료를 받고 있다.      

이상호 화백은 "1년이 넘는 작업 기간 동안 수많은 친일파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는 동안 깊은 가슴 속에서 튀어나오는 메스꺼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비열한 인물들을 92명이나 그리면서 정신적으로 힘든 날들이 이어졌던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상호 화백. ⓒ이상호
이상호 화백. ⓒ이상호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끝나면 서울 청파동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영구적으로 기증돼 전시된다.

한편 이상호 화백과 작업에 같이 참여했던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 전 광주대 교수)는 오는 31일 제13회 광주비엔날레 개막 하루를 앞두고 독립운동가 후손 40명을 초청하여 특별관람 및 작품설명회를 자체적으로 갖는다. 

이날 오후2시부터 한시간 동안 열리는 특별관람과 작품설명회는 김철 독립운동가 막내아들 김달호 선생(84)과 전국 각지의 독립운동가 후손 10명, 김원웅 광복회장,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등이 참석하여 기자간담회와 이상호 화백과 대화 등으로 꾸며진다.

한편 이상호 화백의 비엔날레 출품작은 미국 <뉴욕타임스> 3월26일자 제13회 광주비엔날레 관련 기사의 머리 사진과 해설에 소개돼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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