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파편들

오랜 시간을 지켜보았다. 아트페어에서 처음 작가를 본 것이 벌써 수년 전이다. 그동안 작업의 변화가 있었고, 마침내 위안부 문제에 천착 중이다.

봄바람이 부드러운 날, 작가를 찾았고 순천에서 왔다는 작가를 만났다. 여전히 밝고 생동감 있는 걸음걸이였다. 위안부 작업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간간이 눈물이 그렁해지며 분노했다.

성유진- Scars for Unforgiven(용서받지 못한 상처)   162x112cm  석고붕대 위 혼합재료  2020. ⓒ광주아트가이드
성유진- Scars for Unforgiven(용서받지 못한 상처) 162x112cm 석고붕대 위 혼합재료 2020. ⓒ광주아트가이드

우리 모두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절망할 때가 있다. 작가의 작업이 바로 그랬다. 표현할 수 없는 심연의 고통과 그 무엇.

작가는 형상과 조형이란 두레박으로 무엇을 어떻게 건져 올려야 하는지, 깊은 고민 중이었다. 작업실의 냉기와는 달리 봄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멀리 에돌아 만난 위안부

그동안 했던 작업은 다양했다. 작가가 몸으로 보여준 것처럼 밝고 시원하며 적당히 가벼운 시사적 문제들이었다.

아버지의 연로와 병환 앞에서 밝은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작업했던 ‘십장생도’도 역시 밝으면서 자식으로서 소망을 담았다. 한국화와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으니, 관람객들의 반응 또한 읽어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다.

현재 순천에서 진행하고 있는 웹툰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웹툰은 올 하반기에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라니 기대가 크다.

몸은 순천에 있지만 브레인은 광주의 작업실에 놓여있다. 작업실 문을 열면 정면으로 보이는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 그렁한 얼굴, 주름살,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망연한 표정.

가해자로부터 씌워진 가시면류관. 나와 상관없는 일이 분명한데도 머리 위에 씌운 가시면류관은 생이 끝날 때까지 끝내 벗어낼 수 없었다.

작가는 알아갈수록 위안부 할머니들의 탈취 당한 삶의 시간에 깊이 분노했다. 그리고 이 분노와 깊은 공감은 작업으로 조형되었다.

처음 시작은 단순했다. 위안부 작업 의뢰를 받은 전시였다. 작가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위안부 문제로 생각했고, 흔쾌히 전시 작품을 수락했다.”며 “ 그런데 작업의 완성도를 위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간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아픔은 비교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상처를 입은 사람 또한 모두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회의 가장 큰 비극적인 일을 몸으로 관통한 할머니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상처 입고 또, 상처 입히게 되는 이 세상 속에서 무엇으로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이 비극적 화두가 작가의 가슴에 마침내 얹혔다.

사라진 시간·복구할 수 없는 꿈

또 있다.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라진 소녀시절과 풋풋했을 여성성에 집중했다. 현재 할머니의 모습 안에 어린 소녀의 절망을 중첩한 것이다.

분명 꿈이 있었으나, 그 꿈을 꾸며 찾기도 전에 사라져버렸고, 끝내 되돌릴 수 없는 소녀의 절망적 상태를 작업 안에 끌어들인 것이다. 어린 소녀와 할머니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까, 하는 간절함이 할머니 몸 안에 쭈그려 앉아 절망으로 울고 있는 소녀를 기록한 것이다.

열 폭 병풍도 완성해가는 중이다. 우리의 전통적 병풍은 ‘병풍(屛風)의 ‘병(屛)’자는 ‘시(尸)’와 두 손을 나타내는 ‘병(幷)’이 결합된 문자이며 ‘시’자는 시신을 뜻하는데 고대에는 우상의 뜻으로도 해석되었다.

대체적으로 ‘은폐하다’, ‘앞을 가리다’, ‘울타리 치다’, ‘겁내게 하다’, ‘물리치다’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집 안에 모란이 가득한 병풍을 치는 것은 악재를 물리치고 평안과 풍요를 기리는 한 수단인 것이다.

성유진 작가.
성유진 작가.

작가의 병풍은 위안부가 고통받았던 세계사적 기록이다. 세계지도 위에 일제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위안부의 기록과 증언, 발굴된 사진들을 기초로 위안부에 가한 모든 위악적 만행을 표기했다.

사람의 일생을 그렸던 고갱의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의 작품과 또 다르게 근접한다.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가 가져보지도 못한 채 잃어버린 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친구들과 보냈던 고향의 생기, 위안부로 송두리째 강탈당한 시간, 보호받지 못한 식민지 국민의 절망적 시간, 일본 전함과 히로시마 원폭 투하,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이 수탈당한 후 치유할 수 없는 절망을 해원하는 춤까지 장황 안에 담으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6호(2021년 3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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