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의 음악칼럼] 음악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Ⅱ
[정수영의 음악칼럼] 음악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Ⅱ
  • 정수영 광주아트가이드 편집위원(문학박사)
  • 승인 2021.01.24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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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도전은 뒤에 오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희망과 버팀목이 되는 상황으로 연결된다. 탈무드에서는“항아리를 보지 말고 그 안에 든 것을 보라”고 하는 격언이 있다.

겉(외모)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습성과 사회에 일침을 놓는 격언이다. 겉을 중요시 생각하고 여기다 보면 그 안에 든 진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겉도 예쁘면서 아름답고 속도 그에 못지않게 매혹적이며 진실이 가득 차 있다고 하면 그것보다 금상첨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금상첨화인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빈번하다.

존케이지의 '4분 33초' 악보. ⓒ광주아트가이드
존케이지의 '4분 33초' 악보. ⓒ광주아트가이드

음악에서도 작품을 발표하는 작곡가들에게 있어서 청중에게 금상첨화라는 관점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항상 익숙해져 있는 청각과 시각의 관점을 우선으로 하는“항아리의 겉면”을 일차적으로 판단 받기 때문에 그 안에 든 것을 간파해주길 바라는 작곡가의 속을 아는 이는 정말 극소수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에서의 음의 도전은 동시대를 활약하는 작곡가들에게 거센 자극을 주었다.

과거의 전통적인 음악적 기법에서 탈피하여 현실적 감각을 초월하며 환상의 세계를 현실처럼 마치 눈앞에서 꿈을 꾸듯 그려내고 움직이는 사물의 대상을 몸으로 느끼듯 음으로 나타내려 했던 그의 인상주의 음악은 보란 듯이 겉과 속을 알차게 표현한 금상첨화의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표현 가능성의 확대 시대가 오다.

20세기가 되면서 음악은 명확하게 표현하고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졌다. 고전파 시대처럼 규칙을 정해서 음과 음색을 표현하려는 시도도 줄어들고 낭만파 시대처럼 화려함을 추구하는 경향도 줄어들었다.

다양해지는 시대에서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작곡가보다는 새롭게 뭔가를 추구하려고 하는 작곡가들이 많아진 셈이다.

대표적으로 완전하게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독자적인 세계를 확립하려고 했던 벨라 바르톡(바르토크라고도 함)과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은 듣는 모든 이의 귀를 불편하게 한 새로운 음악 세계를 창조한다.

음악에서 하나의 음을 기준으로 하여 화성이나 멜로디를 명확히 구분하는 조성(調性)을 완전히 부정하여 모든 음에 자유를 부여하고 조(調)를 구분 짓지 않는 무조성(無調性)의 음악을 표현한 이들은 항상 익숙해져 있던 청각과 시각의 청중들에게는 거의 고문과도 같은 배열의 음을 만들었다.

‘음이 너무 어려워서 참고 끝까지 듣지 못하는 음악’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새로운 음향 세계의 작품을 만든 것이다.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음의 울림이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서 음악을 끝까지 듣기에는 너무나도 어색한 멜로디의 연속이라 도저히 참고 들을만한 울림의 구성력이 아니라고 하는 표현이 어울리듯 하다.

이 듣기에도 어려운 음악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등장하는 전위음악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전위음악의 대표자인 존 케이지도 스승 쇤베르크를 뛰어넘어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완전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며 종래의 음악의 개념과 작품의 개념을 파괴하는 음악을 발표한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작품〈4분 33초〉는 피아노 앞에 연주자가 앉아서 피아노를 치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4분 33초가 지난 후에 퇴장하는 작품으로, 연주자가 연주하지 않아도 실내에서 들리는 그 어떤 소리마저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아이디어로 탄생한 작품이다.

이렇듯 다양성에서 비롯된 20세기의 음악은 당시에는 어렵고 힘든 음악으로 평가를 받지만, 그 괴이하고 특이한 항아리의 겉면이 깨지자 신비로워서 감탄을 쏟아내는 독특한 보물이 되어 후세에 이어지고 있다.

청중들의 귀와 시선에 익숙함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해하기 쉽고 듣기 좋은 음악이 되고, 그 가치관에서 벗어나면 이해하기 어렵고 듣기 거북한 음악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처음이라고 하는 시도는 힘들고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적응해서 알게 되면 쉽게 느껴지는 것이 이치다.

고전파, 낭만파 음악이 이제는 청중들에게 듣기 쉽고 편하면서 아름답고 행복하게 들리는 것은 많은 시간에 걸쳐 듣고 배우며 알려고 노력했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나날이 새로운 음악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이 시대에 우리들의 귀와 시선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으로 인식을 하려면 많이 듣고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과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 것 이외에는 없을 것 같다.

괴이한 항아리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알기 위해서는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4호(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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