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무늬를 찾아 기록한 대한민국 목공예명장

지난 여름 폭우로 작업실 일부가 유실되었다. 부드러운 길은 사라지고 비포장 좁은 길이 생겼다. 하천 건너는 비닐하우스마저 멀쩡한데 길다란 유선을 안고 있던 명장의 작업실은 피해가 컸다.

예전에 있었던 송아지 크기의 삽살이는 이제 없다. 보이지 않았다. 감나무도 그루가 줄었다.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였다. 집 안, 문 색깔, 손잡이, 먹감나무이층장, 벽에 걸려있는 민화. 시간이 비껴간 것은 딸의 그림이 이곳저곳에 놓여 있는 것.

내가 무늬를 만났을 때  

김규석 대한민국 목공예명장.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김규석 대한민국 목공예명장.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무늬. 입술을 움직여 무늬란 말을 하는 동안 귀에 작은 종소리가 울린다. 세상에 무늬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은 모두 무늬의 단편들이다. 생각의 무늬. 기억의 무늬. 시간의 무늬. 명장의 무늬가 떡살 무늬인 것만이 다를 뿐.

2008년. 명장을 처음 만났다. 1천여 개 우리의 떡살 무늬를 담은 <소중한 우리 떡살> 책을 기억한다. 이 책은 쪽 염색으로 갈무리 되어 <김규석 목공예>와 <마음으로 새긴 우리무늬>로 다시 태어났다.

<김규석목공예>는 목조각의 기법과 전통무늬가 가진 의미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문양각, 능화판, 시전지판, 떡살과 다식판, 부조 상감, 조각 등이 게재되었다.

<마음으로 새긴 우리무늬>에는 우리 전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명장이 새로 만든 200여 점의 무늬와 지금은 잊힌 제작법마저 사라진 능화판과 시전지판, 새롭게 해석한 400여 점의 떡살 무늬가 게재되었다.

당시 경기도 파주에서 활동하던 풍속 조각가인 이주철 선생에게 사사 받았다. 섬세한 인물조각을 주로 배웠다. 군 제대 후 새로운 목조각을 찾아 광주로 왔다. 광주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7호였던 故 이연채 선생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명장은 “떡살을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 선생이었다. 9년을 함께 보냈는데, 배운 것이 떡살 무늬만이 아니었다. 떡의 소중함과 떡살 무늬가 담고 있는 의미도 알게 되었다”라며 “떡살 무늬가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알리기 위해 헌책방을 뒤졌고, 옛 문헌을 찾았다. 하지만 불행히 떡살 무늬에 대한 올바른 정립 서적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은 일본에서 1972년 발간된 책이었고, 적어도 이 책보다는 더 잘 만들어내야 한다는 욕심이 이 책들을 만들게 한 힘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떡살 하나를 만드는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게 1천여 개의 떡살이 만들어졌다.

내가 나를 이기게 하는 무늬

명장은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무늬는 달라도 하는 일은 잘 벼려진 조각칼로 나무를 파내는 일이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작업을 하다가 맞닥트리는 슬럼프. 우울과 정서적 불안감은 오히려 그 일에 더욱 강하고 단호하게 매진하는 일이라고 했다. 힘들 때 오히려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는 것이다.

명장은 “우울과 불안감은 내 안에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나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슬럼프는 생각을 더 깊게 털어내면서 작업에 매진하면 스스로 사라진다.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는 몸을 더 움직인다”고 말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지만, 떡살은 우리 음식문화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유로움이다. 먹는 것 하나에도 보는 즐거움을 담아 감칠맛을 더한 우리 조상들의 미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떡 중에서도 최고의 떡은 소도 들어 있지 않고 맛도 모양도 화려하지 않은 절편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떡살에 있다. 무늬에는 주로 벽사기복의 의미를 담았는데 이는 장식성이나 기능성보다 더 강조되었다.

김규석 목공예명장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김규석 목공예명장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특히 백일, 회갑, 혼례와 같은 경사로운 날에는 소망과 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무늬를 동시에 사용했다.

회갑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덩굴무늬 당초문, 국수무늬를, 제사에는 윤회(輪回)나 정토(淨土), 편안한 죽음을 의미하는 박쥐에서부터 물고기 눈 등을,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혼례식에는 다산과 안녕을 기원하는 다섯 마리로 이루어진 박쥐나 봉황문, 물고기 등으로 절편에 무늬를 찍어 용도를 결정하는 탁월함도 있다.

절편에서 보여주는 ‘무늬’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다. 그것은 조상의 삶이 담겨 있어 하나의 언어이며 문자의 표현이다.

잠시 쉰다. 떡살 무늬에 두었던 마음은 고정해 두었다. ‘심심해서’ 다시 나를 시험하고 있는 인체 목조각 작업에 열중한다. 2005년 1300여 점, 2017년 300여 점의 마음으로 새긴 우리 무늬는 여전히 명장의 전부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33호(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