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이기명 칼럼]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 승인 2020.11.08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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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이름, 잊지 못할 이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마루. 아니 절벽이라고 하자. 절벽 위에 혼자서 산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다. 태어나서 자란 동네. 손바닥처럼 그릴 수가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잠시 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평생 파란만장이다. 어느 인생도 그렇다. 산마루에서 사라진 사람도 다를 게 없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임기를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낙향했다. 사진은 당시 봉하마을에서 몰려든 인파에 인사를 전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 ⓒ팩트TV 제공
임기를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낙향했다. 사진은 당시 봉하마을에서 몰려든 인파에 인사를 전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 ⓒ팩트TV 제공

절벽 아래서 올려보기도, 위에서 내려다보기도 했다. 절벽에서 마지막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구의 탓도 아닌 가난을 운명처럼 등에 지고 태어났다.

매일 아침 먹어야 했던 고구마가 싫어 외면하는 그를 보면서 고구마 먹기가 미안했다. 이 설움 저 설룸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다. 차라리 머리가 나빠 공부나 못했으면 하고 바랐다던 사람. 면서기가 소망이었던 소년이었다.

왜 고등고시에 합격했을까. 고시가 없었으면 타고난 명을 다 누리고 살지 않았을까. 어려서부터 독재를 거부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승만을 찬양하라는 글짓기 강요에 백지동맹도 했다. 짝꿍의 새 필통이 그렇게도 부러웠던 소년. 동네에 못된 힘센 놈과 며칠을 싸워 끝내 항복을 받아 낸 소년. 그런 소년이었다.

상고 졸업하고 지금과는 달리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던 고시에 합격했고 판사가 됐다. 왜 그는 1년 만에 판사를 그만뒀을까. 변호사 개업 후 규정대로 수임료 반환을 거부했다가 의뢰인의 아내에게서 들은 한 마디.

‘변호사들은 그렇게 돈을 버나요?’

평생 가슴에서 빠지지 않는 비수였다. 독서회를 했다는 이유로 기관에 잡혀가 고문을 당해 온몸에 꺼멓게 멍든 부산의 대학생들을 보며 돈 버는 변호사를 포기했다. 그런 남자였다.

 

■인권 변호사

노태우·김종필·김영삼 3당 합당은 대통령 나눠먹기 전략이었다. 김영삼은 의원들을 모아놓고 3당합당 찬성이라는 의식을 치렀다. 이의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누가 손을 들었다. “이의 있습니다.” 노무현이었다. 아닌 것은 죽어도 아니었다.

이인제와 겨룬 대통령 후보 토론회. 이인제는 18번을 들고나왔다. 색깔 시비다. 노무현 장인의 사상이었다.

“장인의 사상이 다르다면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그래야 된다면 전 대통령을 포기하겠습니다.”

장내는 조용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 당원들. 그들은 울고 있었다. 이인제는 손들었다. 옳은 것은 죽어도 옳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그랬을 것이다. 고구마나 먹고 학교 다니던 상고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먹물들은 땅을 쳤다. 죽이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겠지만 죽기는 바랐을 것이다.

참으로 못살게 굴었다. 검찰에 출두하는 전직 대통령을 보면서 검찰청사 이층에서 회심의 웃음을 흘렸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느냐.

의원 시절 조·중·동 기레기들과 저녁 자리를 마련했다. 내가 주선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합니까. 당신이 무슨 대통령 출마야.”

그때 내가 왜 그놈의 혀를 뽑아버리지 못했을까. 그러나 찢기는 고사하고 아첨을 떨던 내 추한 몰골. 쓰레기는 나였다.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땅을 쳤다. 죽어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먹물들이었다. 검사들과의 간담회. 처음부터 실이 꼬였다. ‘막가자는 거지요?’ 막가자는 것이었다. 막가고 있다. 개검이라고 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맞다. 아무나 못 한다. 봉화산 절벽 위에 서기 일주일 전, 난 봉하 사저에서 전직 대통령을 만났다.

“선생님. 아무래도 저 사람들이 내가 있는 한 우리 식구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만두지 않는다니. 어쩐단 말인가. 하나둘씩 잡혀 들어갔다. 강금원은 뇌종양 중증에도 수술을 위한 보석이 불허. 언론에는 억대 시계가 논두렁에 돌아다녔다. 니가 이래도 버틸 것이냐.

“제 놈들이 설마 그 짓이야 하겠습니까”
“선생님은 작가 아닙니까.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의 동물이지요.”

그로부터 7일 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부엉이바위가 원망스럽다

2009년 5월 23일. 이날을 기억하는가. 기억한다. 봉화산 부엉이바위를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 100만 조문객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난 사람. 희희낙락 박수 친 인간들이 있다 해도 그들 가슴 한편에는 손수건을 적신 양심의 눈물이 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구멍 뚫린 양심에서 흘러나오는 개소리들을 국민은 여전히 듣고 있다.

봉화산 산마루 위 구름은 여전히 한가히 떠돌고 기레기와 개판, 개검은 잘 먹고 잘산다. 다시 묻는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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