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쏠 줄 아냐

‘너 총 쏠 줄 아냐.’
멍하니 처다본다.
‘군대 갔다 왔느냔 말이다.’

여성들이 밥맛 없는 남자들을 꼽을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게 군대 얘기로 정신 나간 남자다. 뻥도 있지만, 자부심도 크다. 그런 대화 속에 쬔 병아리처럼 기가 죽은 놈도 있다. 부정으로 군대 안 간 놈이다.

‘야. 너 어디서 근무했냐.’

할 말이 없다. 왜? 군대에 갔어야 근무를 하지. 국민의 의무인 군대 갔다 온 게 자랑일 수 없다. 한데 군대 안 간 걸 자랑으로 떠드는 놈도 있었다. 왜 군대 가서 박박 기느냐고 했다. 미국에 유학 가던지 신검 불합격자가 되면 군대 안 간다. 지금도 군대 안 갔으면서 출세한 인간들 아주 많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있었다. 미국 유학 가서 하바드 나오고 보무도 당당하게 귀국해 대학교수 되고 국회의원 된 인간들이 부러웠지만, 속으로는 멍멍이었다.

잔인하고 치열한 전쟁영화는 잘 만든 명화라 한다. 핏속에서 피어난 장미더냐. 너희들이 전쟁을 아느냐. 15~16세 소년의 눈으로 본 전쟁을 말해 주마.

엄동설한 피난길에 아기 낳은 산모는 아기가 죽자 언 땅에 묻지도 못하고 포대기에 싼 채 풀숲에 버린다. 잘 걷지도 못하는 늙은 부모는 자식들에게 자기들 놔두고 피난 가라고 한다. 새끼줄로 애들을 굴비 엮듯 묶고 끝자락을 붙들고 개 몰 듯 끌고 가는 엄마. 얼어 죽은 시체가 도처에 널려 있다.

군인들은 우리 아버지를 끌어다 참호를 파게 한다. 군인들이 성폭행(?) 할 까봐 여고 졸업한 누이는 얼굴에 시커먼 검뎅이를 바르고 머리는 산발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차에 실려 가는 군인들. 네 놈이 전쟁을 아느냐.

■이별의 가족사

큰형님은 행방불명. 막내 외삼촌은 일제에 끌려갔다 해방 후 돌아왔는데 6·25 때 또 사라졌다. 사촌누이는 양평으로 시집갔는데 자기가 보는 앞에서 남편이 총살당했다.

누가 빨갱이라고 음해한 것이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민족 중에 가족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기적과 같다. 그렇게 전쟁을 가정을 파괴했다.

전쟁이 영화인 줄 아느냐. 내가 ‘종전’ 관련 칼럼을 썼더니 난리를 친단다. 웃기는 놈들이다. 전쟁 터지면 지원해 갈 거냐. 군대도 안 간 놈들이 뭘 안다고 떠들어.

국회서도 군대 안 간 인간들이 입에 거품을 문다. 민주화운동 하다가 감옥 갔다 왔다고 왜 군대 안 데려가느냐. 민주화운동이 군대 기피 운동이냐. 입이나 닥쳐라.

세상에 태어나자 바로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내 조카는 이제 80이 된 노인이다.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는 한 맺힌 눈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내 어머니도 행방불명된 큰형님을 부르며 돌아가셨다. 눈을 못 감으셨을 것이다.

■전쟁이 장난인 줄 아느냐

내가 빨갱이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줄 아느냐. 대통령이 빨갱이라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줄 아느냐. 이 철딱서니 없는 인간들아. 지금 당장이라도 내게 오라. 용인 법화산에서 벌어진 인민군·중공군과 유엔군·한국군의 전투를 목격한 16세 소년이 증언해 주마.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할 말은 있었을 것이다. 왜 내가 여기서 죽어야 하느냐. 대답을 못 했을 것이다. 우리가 죽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묻자. 우리가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왜군과 싸웠느냐. 병자호란 때 침략한 청나라 군대와 싸웠느냐. 할 말이 없다.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인민군 병사를 적군이라는 이름으로 사살한 참전군인의 말을 들으며 참 더러운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종전을 선언하자는 것이다.

전쟁은 작렬하는 포탄에 쓰러지는 시체를 보며 손뼉 치는 영화가 아니다. 전쟁에서 총 맞아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왜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와 힘든 싸움을 온 국민이 벌이고고 있느냐.

생명이 존귀하기 때문이다. 죽으면 끝이다. 왜 싸워야 하느냐. 죽이지 말고 죽지 말고 살기 위해 하자는 것이 ‘종전선언’이다. 왜 반대냐. 총도 쏠 줄 모르는 얼빠진 자식들아.

■대통령의 ‘종전선언’ 지지한다

잠시 눈을 감자. 시간의 속도와 공간은 무한대다. 그 공간 속에 그리운 얼굴들을 그려보자.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 그리고 친구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들이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영원히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면 어떨 것인가. 그냥 미쳐 버릴 것이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악마의 손은 순식간에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목숨을 뺏어 간다.

방법은 하나다. 그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전쟁하지 않는 것이다. 남과 북이 종전을 선언한다면 누구와 전쟁을 할 것인가.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남을 침략한 역사가 없다.

남과 북의 동포들이 한마음으로 종전을 선언한다. 아 아 기적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동안 전쟁으로 숨진 그리운 얼굴들이 모두 환한 미소로 살아난다.

다시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리라. ‘종전’이란 이름으로 총성이 울리지 않는다. 다시는 이 땅에서 총성이 울리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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