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30일까지 오월미술관에서

전시평론

'그림이 된 생각들'


계란 껍질 속 불투명한 흰 막 한 장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우울을 넘어 불안으로부터 습격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작가를 만날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었다. 일상의 자유로움보다는 작가로서의 삶에서 매번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갈증이 ‘실존’으로 보였다.

지금은 살아있지만 매 분, 초마다 조금씩 사라져가는 삶의 길이. 이승과 저승의 모호한 경계, 삶과 죽음에 대한 자의의 절대적 선택. 작가의 그림에는 분명한 절대의 실존이 존재하고 있었다.

몸을 가진 것들은 경계를 넘을 때마다 신음소리를 낸다. 작가의 작업은 그 신음소리에 대한 기록이며 자신의 몸에 대한 경고 같은 물음으로 보였다.

그때와 똑같이. 언제나. 항상

지금까지 세 번의 개인전을 묵도했다. 세 번의 개인전에서 공통적인 주제는 ‘죽음’과 ‘애도’였다. 작가는 깊고 낮은 목소리로 끈질기게 말하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근접의 죽음을 겪었다고 말했다.

검은 바다. 흰 숨골. 163.0 x130cm. acrylic on canvas.혼합재료. 2020.
김광례- 검은 바다. 흰 숨골. 163.0 x130cm. acrylic on canvas.혼합재료. 2020.

피붙이의 죽음에서부터 예견된 부모님의 죽음까지. 죽음은 한 가지 모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이 사실은 현재도 변함이 없지만, 그들은 ‘망각의 강’을 건넜고 작가는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삶을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죽음과의 소통, 죽음과의 화해였다. 살아있는 자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의식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죽음으로 확장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 모든 죽음은 위로받아야 할 존재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부독재의 국가폭력 앞에서 꽃잎처럼 스러져 간 광주항쟁의 주검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학살의 현장을 찾아 진혼과 위무의 형식을 취한 작품도 같은 맥락이었다.

죽어간 영혼들과 그들을 상징하는 두개골을 반야용선에 태워 망각의 강 너머로 띄워 보낸 전시는 차라리 진혼의 붉은 위무였을 지도 모른다.

김광례 작가.
김광례 작가. ⓒ김광례

또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검은 바다 흰 숨골’은 제주의 43항쟁에 관한 물음표로 상징된다.

제주를 상징하는 검푸른 바다 위, 날아오는 총탄과 자국민이 행하는 학살을 피해 크레바스 같은 숨골로 몸을 숨겼던 순간을 작가의 시선으로 숨골을 표현하며 주검의 영혼들에게 말을 걸고 손을 잡았다.

날마다 생각한다. 먹고 자고 걸으면서 생각한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고 너와 나의 다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옳고 그름과 정직함과 염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결론은 없다. 하지만 실존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그 생각에 대한 결과물의 일환이다. 살아있음으로 하는 생각이니, 살아있으니 당연한 결과물을 생산한다. 그동안의 전시에서 도출된 삶과 죽음의 주제에서 훨씬 더 확장되어 변주된다.

생각- 내 근간의 발효와 변주

은유와 사유의 깊이로 다가선다. 이번 전시는 네 가지의 주제를 지닌다. 그 첫 번째는 지난 전시에서 보여주었던 애도와 위무에 대한 연결 선상이다. 대표적인 작업은 ‘꽃배’이다. 꽃상여가 작품의 위쪽에 배치되어 있다.

김광례- 꽃배.
김광례- 꽃배.

평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흩날리는 꽃잎들은 꽃상여의 주인인 누군가의 삶의 단면이자 편린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은 꽃의 정확한 형상화 이전에 어떤 기호로써 살아온 생애에 대한 기억의 확인과 방향성을 바람의 방향으로 알려준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 꽃잎들이 바로 그것이다.

애잔하고 아스라해 보이지만 그리 슬퍼 보이지 않는다. 바람결에 제 몸을 맡긴 망자의 꽃상여는 편안하면서 밝은 음악처럼 한 시절을 지나 망각의 강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낱낱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의 주제는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실존’에 관한 생각의 물음이다. ‘나를 살게 하는 힘’이란 작품이 실존을 대표한다. 내가 있음으로 세상은 존재한다. 단순히 생각에 머물지 않고 행동하고 느끼며 표현하고 생산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형상화해낸 뼈는 세상을 받치고 있는 근간의 모든 것이다. 꽃 같은 뼈. 다시 말하면 뼈 꽃. 검고 붉은, 어쩌면 선연한 색의 뼈는 한 송이 꽃처럼 우뚝. 보이지 않은, 무게도 없는 공기를 받치고, 안고 있다. 공기는 우리를 살게 하는 원소라고 할 수 있다.

김광례- 나를 살게 하는 힘. 53.0 x 73.0cm. conte.혼합재료. 2020.
김광례- 나를 살게 하는 힘. 53.0 x 73.0cm. conte.혼합재료. 2020.

언뜻 바라보면 직립보행을 가능하게 하는 골반뼈와 등뼈, 갈빗대가 공기와 근간, 삶을 지탱하는 힘 등을 중의적 함축으로 담고 있다. 세상과 나와 너를 받치고 있게 한 힘.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 불타오르다‘ 역시 삶의 결연한 한 때, 찰라를 바라보며 생각하게 한 결과물이다.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칠 때, 내가 나를 끝내 죽이고만 싶을 때, 세상이란 인위의 끝에 홀로 서 있다고 느낄 때 올곧게 나를 받치고 있던 뼈만이 남아서 세상과 대적하며 흡수하고 농축되는 시간의 단면을 기록처럼 형상화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죽음‘ 앞에서 전율하며 절망한다. 살과 지방 근육을 털어내고 오롯이 등의 굴곡과 선만을 강조한 주검의 중심에는 검은 구멍이 뚫린 채 검붉은 선혈이 낭자하다.

누워 있는듯 주검은 서 있다. 서서 주검은 온몸을 통해 실존을 공유한다. 사라지면서 결국은 살아남는다. 존재하는 영혼이 되었다.

김광례- 아름다운 청년. 30x70cm. 석고.2020.
김광례- 아름다운 청년. 30x70cm. 석고.2020.
김광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97.0X163.0cm Arylic On Canvas 2020.
김광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97.0X163.0cm Arylic On Canvas 2020.

석고와 평면으로 형상화한 ’아름다운 청년‘과 ’하얀 바람‘은 윤상원 열사의 현신이다. 오월항쟁의 대명사가 된 윤상원 열사는 고립된 도청 내, 시민군의 마지막 대변인이다.

10일간의 참혹했던 광주항쟁의 열사를 하얀 석고의 흉상과 주검의 모습이었던 윤상원 열사가 부활시켰다. 이 두 작품 역시 실존에 관한 물음표를 던지며 또, 완결한다.

죽어서 영원히 살아있는 윤상원 열사의 현재의 모습일 것이다. 세상의 중심과 광주항쟁의 완결은 결국 윤상원 열사에서 시작되고 마침표로 귀결되어 광주항쟁을 대동세상의 혁명으로 인식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 세 번째의 주제이다.

생각은 생각으로 멈추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물들에 대한 중의적 표현의 형상화에도 옷을 입힌다. 거리를 걷다가 눈에 보이는 풍경, 하루의 일상,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통과 희락까지도 덧입히며 껴안는다.

’세상 가장 깊은‘에서는 일상의 고단함을 넘어 좌판의 생선과 인간의 삶이 결코 분리되지 않았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기에 충실하다. 고단하고 녹록하지 않은 삶이란 잠 속에 세상 가장 깊게 잡입하고 있는 풍경은 눈물겹지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잔인함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 ’인연의 끈‘이란 작품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알게 해 준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네가 이끌고, 혹은 내가 이끌고 알 수 없는 ’그 때‘를 향하여 시간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전율과 절망은 실존함으로서 겪는 아름다운 일상의 천형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아름다운 생각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풀밭 위의 황금 깃털

김광례- 즐거운 상상 4. 40.0x 31.0. acrylic on canvas. 2020.
김광례- 즐거운 상상 4. 40.0x 31.0. acrylic on canvas. 2020.

네 번째의 주제는 기억에 관한 진실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초록 일렁이는 풀밭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등을 붙이고 누워서 지상과 하늘과 내가 하나 되는 시간. 작가는 풀밭 위의 아름다운 시간을 ’즐거운 상상‘의 동물로 형상화했다.

민화적 요소와 달콤한 상상을 중첩 시켜서 작가만의 친근한 동물을 탄생시켰다. 지난 전시에서 도마뱀을 형상화했던 것을 기억해낸다면 동물의 형상화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웃고 있다. 아니, 인간인 우리가 웃는다고 단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 발을 굳건하게 땅에 딛고 있는 이 동물들은 어쩌면 미래에 대한 작가의 결연함의 상징일 수도 있다.

노란색이 단연 돋보이는 ’유년의 기억‘은 노란색이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유년의 기억 속의 집. 작고 허술한 낡은 유년의 집은 기억 속에서 애정의 극한이다.

노란색이 함축적으로 발현하고 있는 기억은 어떤 이에게는 슬픔과 고통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당시의 결핍을 넘어 희망과 꿈의 접점으로 여겨질 수 있다. 작가에게 있어 ’유년의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풀밭 위의 황금 깃털이다.

김광례- 붉은 흉터.1.44.0x44.0. acrylic on canvas.혼합재료.2020.

먼 길을 에돌아 왔다. 죽음과 애도, 위로와 위무, 실존과 삶이 ’붉은 흉터‘의 한 송이 동백꽃과 꽃신으로 은유, 상징되었다. 우리는 삶의 시간이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 살아가야 한다.

붉은 동백꽃 한 송이 가슴에 안고 꽃신을 신고, 꽃신을 꽃 상여처럼 타고 항해를 해야만 한다. 풀밭 위의 황금 깃털을 향해서.
 

           김광례 작가 프로필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 졸업
 

개인전

2019 개인전 ’당신의 부활‘/ 갤러리’뜨락‘
2019 개인전 ’당신의 부활‘/ 자미갤러리
2017 개인전 Lost & Found展 / 봄갤러리
2013 개인전 ‘그대 이제 잘 가라’/DS갤러리

단체전

2020 5.18 40주년 특별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오월미술관
2020 제39회 청동회 정기초대전 /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

2019 특별초대 5.18 아카이브전 ‘KYRIE’ / 518문화재단
2019 다므기展 울타리 – 그 안에 어울림을 담다 /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2019 제38회 청동회 정기초대전 /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
2019 “몸”展 / 나주 나빌레라 문화센터

2018 제주예술축전 / 서귀포 예술의 전당
2018 제37회 청동회 정기초대전 /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
2018 청동회 특별전 / 남촌미술관
2018 광주미술 100인의 희망전 /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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