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애에 대한 갈망이 담긴 소박한 영화

 

   
 
관객은 가끔 수백억 대작보다 물질적 풍요가 대신할 수 없는 감동이 물씬 풍기는 인간애에 대한 갈망이 담긴 소박한 영화를 그리워한다.

대종상 심사 여덟 번째 작품은 오상훈 감독, 이현수 각본의 ‘파송송 계란탁’으로 로드 무비의 영화였다.
심사위원들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든 작품이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로드무비는 찍기도 힘들뿐 아니라 작가 또한 쓰기 도 어렵다.

그러나 잘 만든 로드 무비는 제작비 수 십, 수 백 억원이 투자된 할리우드의 어떤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다.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거나 뛰어난 완성도로 주목을 받는 영화가 있고 관객 천만 명을 너끈히 동원할 수 있는 흥행코드를 지닌 대작도 있지만 우리는 가끔은 시대의 요청이 없이도 소박한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는 진정성을 지닌 이런 작품들을 만나고 싶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게 시작한다. 짝퉁일지라도 음반 업계의 부흥을 위해 매진하는 스물여섯 살의 평범한 청년 대규(임창정 분)는 오늘도 여자 꼬시기로 소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의 앞에 느닷없이 아홉 살의 아들 인권(이인성 분)이 나타난다.

아닌 밤 중 홍두깨도 유분수지 잘 나가는 청춘 앞에 아들이 웬 말이란 말인가? 대규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인권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찔리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이대로 총각 생활을 마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규는 아들 인권을 돌려보내기 위해 무작정 모르는 척하기, 경찰서 미아 신고, 길거리에 버리고 도망가기 등 별짓을 다한다. 하지만 아이다운 순진한 얼굴에 아이답지 않은(?) 인성과의 심리전과 육탄전을 펼치는 인권에게 인성은 정말이지 보통 적수가 아니다.

그러던 인권이 뜻밖의 한 가지만 약속해 주면 떠나겠다며 야심 찬 거래를 제안한다.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떼어 내려고 웬통 잔머리만 굴리고 있는 대규에게 간에 딱 맞는 제안이었다. 아홉 살짜리 인권의 제안은 바로 국토 종단을 하자는 것이다.

아홉 살짜리가 버텨봤자 고작 3일이란 판단에 대규는 즐겁게 길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 중 오히려 먼저 지쳐버리는 대규는 인권을 버리고 혼자 돌아오려는 신 고려장여행(?)을 구상한다.
 
그러나 그것도 정 때문에 혹은 영악한 인권 앞에 수월치 않고 대규는 여행 중에 인권의 엄마 미연을 수소문해 보지만 그것 또한 여의치 않다. 한편 인권은 아빠 대규와 국토 종단을 끝내면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대규는 인권의 소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여행을 계속한다. 그리고 여행 도중 만나게 된 민박집 며느리의 갑작스런 출산으로 엉겁결에 들르게 된 병원에서 대규는 인권이 숨겨왔던 비밀을 알게 된다.

이 때, 국토 종단을 통해 이루려는 소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 대규는 지금까지 대충대충 살아왔던 그의 가슴에 울컥 밀려드는 뭉클한 느낌이 찾아온다.  이제 대규에게도 국토 종단을 끝내야만 하는 이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대규는 26년간 지켜온 총각 인생을 포기하고 만다.

107분의 영화가 끝난 후, 휴게실에서 모인 심사위원들이 놀라며 숙연해 진 이유는 연기에도 물이 오른 임창정의 코믹연기와 우는 연기가 일품인 이 작품은 한마디로 스토리의 전개가 진부한 영화였지만 임창정표 코믹 +잔잔한 감동이 주는 코끝이 찡한 여운을 주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끈기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진정성을 지닌 깔끔한 작품으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리라.

아역배우 인권역의 이인성은 첫 작품임을 감안할 때 어색함이 있었지만 앙증맞고 안쓰러운 마음이 생기는 귀여운 배역 때문에 무난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쉬움 또한 많이 남은 작품이었다. 가수 전인권의 노래는 상당히 좋았지만 영상과 별로 조화를 이루는 노래도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자주 나오는 게 심히 거슬렸다.

또한 이 영화는 캐릭터나 연기력 등 거의 대부분의 화면의 포커스를 임창정에 의한 임창정을 위한 임창정에게 맞춘 모노드라마 형식이었기 때문에 임창정을 위시한 주변 인물들의 비중이 낮아 영화가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할 수 있었다. 

필자가 임창정을 기억하는 건 비트(1997년 작)부터였다. 비트엔 정우성, 고소영 같이 멋있는 배우들이 나왔지만 그들은 만화영화의 주인공 같았고 오직 임창정만이 실사 배우로 기억되었다.

비트에서 임창정은 살려고 허풍도 치고 때론 비굴도 하지만 자기 욕망에 솔직한 진짜 인간이었다. “13:1로 쪼개서...” 라며 큰소리치다가 뒈지게(?) 두들겨 맞던 놈!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라면가게 차리고 환하게 미소 짓던...가게를 지켜야 된다며 조폭에게 돈을 주고 흘리던 눈물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았었다. 

임창정! 그에겐 현실의 소시민의 생활 냄새가 풀풀 난다. “행복한 장의사”에서 자전거를 타고 논두렁을 달리는 모습 “위대한 유산”에서 쪼그리고 앉아 손빨래하는 그의 엉덩이 흔들림이 “시실리 2키로”에서의 엉성한 조폭 오야지의 자연스런 모습에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무수한 커플들이 나오지만 내 마음을 울린 건 오직 임창정 뿐이었다.

   
 
최근 개봉하여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1번가의 기적”에서의 배우 임창정은 경지에 오른 느낌이었다. 밤낮 없는 빚 독촉에 시달리고 풀 죽어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넌 소시지, 난 단무지, 우리 한 떨기의 김밥이 되자.’며 포근히 안던 그의 팍팍한 삶의 냄새를 난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신기루 같은 비장미를 날리며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배우가 아니라 가장 현실감 넘치는 삶의 의지로 나를 꼭 안으며 수줍은 듯 웃어줄 것 같은 배우 임창정.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 대규와 아들 인권의 의리와 우정, 그리고 죄의식이 새삼스러웠던 것은 갈수록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낯설어진 몰염치와 배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서글픈 깨달음 때문이었을까?

이 작품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울 때 또는 가족에게 상처를 입어 실컷 울고 싶을 때 보면 좋을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오랜만에 보는 깔끔한 로드 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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