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길을 갈 것인가, 불의의 길을 갈 것인가?'

장준혁이 죽었다. 눈물이 났다. 갓 중학생이 된 아들을 힐끔 쳐다보자 고개를 모로 돌린다. 역시 울고 있다. 마지막 2회분만 보았을 뿐인데도 감정이입이 되었나 보다.

MBC 주말극 ‘하얀거탑’이 11일 밤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일본작가 야마자끼 도요꼬의 원작소설을 토대로 권력다툼과 이를 쫓는 인간군상들의 숨막히는 갈등은 하얀거탑이라는 병원 내 이야기라고만 볼 수 없었다
 병원을 주무대로 하지만 법정공방이 치열했고 심리묘사를 위해 클로즈업 되는 얼굴은 자주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했다.

 주인공 장준혁은 거대병원의 외과 과장을 눈앞에 두었지만 10년을 모신 상관의 모략으로 갈등했고, 야망을 위해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부원장에게 내보였다. 의료사고 후에 항소가 이어질 때도 그에게 매달렸다, 아니 매달려야 했다. 그는 나쁜 의사이고 못된 피고인이다. 그런데도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극중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대대로 의사집안의 도련님인 최도영과 상관의 딸 이윤진과는 달리 그는 밑바닥부터 올라온 인물이다. 아들의 출세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묻혀 지내는 가난한 홀어머니와 부잣집 딸 사이에서 갈등했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신을 방어하려 했다.

때로 일에 대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하기까지 했다. 매사에 철두철미 했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의사였으며, 후배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줄 알았다 그렇기에 상관으로부터 튀는 존재, 불편한 관계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 자신조차 누구의 편인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장준혁의 편이기도 했고, 최도영의 편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시민운동 하는 딸이 남편의 앞길에 방해가 되자 딸의 방에서 책(체게바라 평전 같은)을 집어던지는 어머니를 만류하는 이윤진의 모습은 진정으로 와 닿을 수가 없었다.
 
겉보기에는 당당하지만 내면에 비열함을 가진 장준혁이라는 인물이 나 자신으로 투영되어지는 과정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또한 담관암에 걸린 장준혁이 자신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하며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는 성공만을 향해가는 장준혁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야망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또 다른 장준혁을 만들 것이다.

 극이 끝난 뒤에도 시청자 게시판은 뜨거웠다 “나쁜 놈, 장준혁! 끝까지 저러고 가네. 보란 듯이 일어나야지, 여러 사람 맘만 흔들어 놓고...가지마.”  “기대하고 증오하고 설레게 했던 드라마였습니다. 마지막엔 마냥 펑펑 울어버렸네요”  “내 머릿속에 돌을 던진 드라마” 등등의 글과 함께 연기자들에 대한 찬사의 댓글이 끊이지 않았다.

 
 드라마 ‘하얀거탑’은 최종회 시청률이 20% 이상을 넘기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욕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갈 것인가, 안락한 불의의 길을 갈 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때?  죽은 장준혁이 금방이라도 물어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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