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오월미술제 광주민미협 회장 박 태 규
직시(直視)하라!

5·18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았다.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책임자 처벌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채 불혹의 나이를 맞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1980년 5월. 광주시민은 자국민을 총칼로 도륙한 국가폭력의 항쟁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박태규 광주민미협 회장.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박태규 광주민족미술인협회장.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그 당시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고문과 상처의 후유증, 생활고, 트라우마 등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부지기수임에도 발포의 책임자 규명과 처벌은 미온적이기만 하다. 이 와중에 맞는 40주년이라니.

‘1980년 5월 광주’가 보여주었던 휴머니즘, 폭력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대동세상을 이루었던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 4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우리는 숭고한 이것들을 지키며 살아온 것일까.

다행인 것은 이 역사적 사실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안에서는 끊임없이 부정하고 세계는 인정한 5·18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김해 볼 시간이 오고 있다.

40주년 기념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민미협 박태규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40주년 기념전시라는 중책을 위해 민미협 회장이 된 것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월전’을 개최한다고 들었다. 31년 동안 지속되어 온 ‘오월전’에 대해 말해 달라?

오월항쟁은 미술인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게 했다. 오월의 살육을 묵도한 광주전남의 미술인들은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이하 광미공)를 결성했다.

그림이 감상용이 아닌 현실의 고민과 투쟁을 같이하자는 의미였다. 1988년 결성된 광미공은 그 후 거리와, 현장에서 밥이 되고 구호가 되고 깃발의 역할을 해냈다.

‘오월전’은 그중에서도 미술인들이 사회적 발언을 했던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매년 5월이면 거리에서 전시가 진행되었고 올해는 31번째가 된다.

오월전을 개최했던 단체의 이름과 주체들은 달라졌지만 ‘광주정신’과 ‘미술인의 사회적 역할’만큼은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의 전시를 살펴보면 1990년 ’10일간의 함성 10년간의 역사’전을 비롯해, 1991년 ‘오월에 본 미국’전, 1992년 ‘더 넓은 민중의 바다로’전, 1995년 ‘5·18특별법제정을 위한 35인 가해자 얼굴’전, 1997년 ‘만인의 얼굴’전, 2005년 ‘광주, 9개의 창’전, 2006년 ‘광주, 한반도 ing’전, 2010년 ‘오월-그 부름에 답하며’전, 2018년 ‘촛불이여, 오월을 노래하라’전, 2019년 ‘빨간메아리’전 등이다.

'오월전사' 400x800cm.
'오월전사' 400x800cm.

전시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지금의 5·18역사기록관이 있는 자리가 예전엔 카톨릭센터가 있었다. 대부분의 오월전은 그 앞길인 아스팔트 위에 가판을 만들고 그림을 걸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전시를 보고 열광했다. 지금도 신기한 것은 안기부나 경찰서 측을 제외하고 열흘 동안의 밤낮 전시에도 작품을 훼손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전시기획이 있는가. 큰 규모의 기획일 텐데 예산은 충분한가?

전시 명제가 직시(直視)다. 31년간의 시간과 미래를 바로 보자는 의미에서 전시주제를 직시로 잡았다. 다시 말하면 40주년을 맞는 오월항쟁에 대한 우리 미술인들의 뼈아픈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 전시는 항쟁의 중심지였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시작해서 시내의 여타 공간으로 이어진다. 광주전역이 항쟁지역이였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오월항쟁의 역사적 희생 위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오월항쟁의 주역인 시민군의 거점이자 국가폭력과 계엄군의 총구에 대항하고자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자치공간이었으며 최후의 시민군 대변인인 윤상원 열사가 산화한 장소다.

그동안 대부분의 행사와 전시가 전남도청사와 도청 앞 광장 분수대, 망월묘역 등에서 진행되었던 역시 오월항쟁의 역사적 장소가 주는 ‘장소성’과 ‘역사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오월항쟁의 선연한 피와 함성이 있는 곳에 미술인들의 구호와 함성, 예술적인 미학적 해석을 함께 하고 싶었다.

예산은 마련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전시 역시 전시장이란 장소만 제공을 받은 상태이다.

물론 이것도 전시기획서란 공모를 통해서 제공받았다. 층분 하지는 않더라도 전시를 위한 예산이 있어야 계획을 세울 텐데 현재로서는 의욕과 열정, 예술인으로서의 사회적 의무만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다른 장소의 전시내용은 무엇인가. 이곳도 예산은 마련 중인가?

코로나 때문에 전시 일정을 확정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5월 예정인 전시는 분명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장소로만 이야기한다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외에 광주시립미술관금남로분관과 무등갤러리, 미로센터가 있다.

그 외에도 뜻을 같이하는 갤러리, 미술관 등이 있다. 메이홀, 이강하미술관, 양림미술관, 예술공간 집, 은암미술관, 여성재단미술관, 생각상자 갤러리, 호랑가시아트폴리곤 등이다.

예산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뜻을 같이한 대부분의 갤러리와 미술관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단지, ‘함께’하는 동지라고 말하고 싶다.

예산이 0인 상태에서 뜻을 모았고 현재도 장담할 수 없는 충분치 않은 예산이지만 같이 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함께하는 이들 역시 ‘오월정신’을 주제로 전시를 계획 중이다. 게다가 민미협을 통해 전국적인 전시로도 확장될 예정이다. 광주 뿐 아니라 전국, 해외기관에서도 참여가 늘어날 전망이다.

주최측은 서울, 부산, 강원, 충북, 경남, 울산, 제주 지역 미술기관들의 참여가 예정되어 있다.

31년 전에도 예산은 없었다. 그리고 현재도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오월정신이고 우리 미술인들의 사회적 발언이고 현실에 대한 직시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는가?

특별히 이번 40주년 전시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대중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전시는 본 전시와 특별전, 연계전시, 시민참여, 학술포럼으로 마련될 예정이다.

본 전시는 메인 주제인 ‘직시’로 무등갤러리, 미로센터, 광주시립미술관금남로분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마련되며 5·18이 남긴 의미를 ‘항쟁’, ‘주먹밥’, ‘파문’을 주제로 3개 섹션에 걸쳐 전시된다.

오월전 전시.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오월전 전시.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 6관에서 진행되는 특별전은 ‘민주평화’전으로 아시아인권평화전과 1995년에 전시된 바 있는 ‘518 가해자 얼굴’전을 감상할 수 있다.

최근에는 5·18역사기록관에서 진행되었던 ‘파랑만장’에서도 전시 되어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계전인 ‘오월정신’전은 광주뿐 아니라 전국에서 참여하는 미술기관들의 기획전시를 감상하는 자리다.

시민참여와 학술포럼도 개최된다. ‘오월 그날 후 그날 WHO’를 주제로 열리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해 ‘꼭두인형과 거리행진’을 선보이며, 오월어머니와 작가, 시민들의 참여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학술세미나는 오월미술에 관한 담론과 오월길 답사, 작가토크로 진행된다. ‘오월과 미술’을 주제로 열리는 담론에서는 조인호 광주미술연구소장과 후루카와 미카, 양초롱 해동문화예술촌 총괄기획자가 패널로 참석해 40주년을 맞는 오월미술과 아시아, 인권, 저항예술에 관한 담론을 나눈다.

작가토크에서는 오월과 작가의 삶, 들불열사 윤상원, 광주통합병원, 505보안부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월항쟁이 피상적이지 않았는지, 40년이 되는 시간 동안 항쟁의 정신을 올곧게 지켜내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물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민미협의 이번 40주년 기념전시는 이런 물음에 대한 ‘직시’가 될 것이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25호(2020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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