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때문에 언론은 중병 걸려

경자년(庚子年) 새해 첫 번째 쓰는 글이다.

날이 밝으니 여든다섯. 오래 살았다. 이쯤 살았으면 사는 욕심이야 없어야 하는데 역시 죽는 건 그렇고 더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그러나 언제 죽음이 온다 해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새해를 맞으면 언제나 소망이 있다. 올해는 쥐띠 해다. 내가 쥐띠니 나의 해다. 소망을 한번 말해 보자. 숨도 안 쉬고 말할 수 있다. 통일이다. 아름다운 이 땅의 산과 들 맘대로 다니고 싶다. 통일을 갈망하는 국민이 얼마나 많으냐. 나의 소원은 통일이다. 또 있다. 존경받는 언론이다.

■학살은 항상 곁에 있었다

인류 역사 이래 학살은 있었다. 부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원시적 학살은 그렇다 치고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서도 학살은 계속된다.

6·25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서 미군이 한국인 양민 300여 명을 사살했다. 이유는 피난민 속에 인민군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 의혹으로 노근리의 양민은 철교 아래 동굴에서 죽었다. 이것이 미군이 자행한 노근리 한국인 학살이다.

ⓒ팩트TV 갈무리
ⓒ팩트TV 갈무리

2017년 8월 미얀마군은 리카인주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무차별 학살했다. 수천 명의 로힝야족이 사망하고 70만 명 이상이 방글라데시로 피신을 했다. 이것이 학살이다.

3·1 독립만세 후 일본군은 화성 제암리 교회에 한국인 신자들을 가두고 불을 질렀다.(제암리학살사건·提巖里虐殺事件) 교회 안에 있던 교인들은 모두 사망했다. 이것이 학살이다. 일본에는 귀 무덤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을 침략한 후 머리는 너무 부피가 커서 귀만 베어 갔다고 한다. 잔인한 학살이다.

동족끼리의 학살은 어떤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우리 동족들의 죽음은 학살이 아닌가. 골육상쟁이란 참으로 끔찍한 말이다. 우리는 그 끔찍한 골육상쟁의 중심에서 주인공 노릇을 한 민족이다.

아무 원한도 없던 동족끼리 서로 총칼을 겨누고 죽였다. 누가 38선을 그어 달라고 했던가. 전쟁의 비극은 더 이상 입에 담기도 지겹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살벌한 말들이 미친개처럼 날뛰는가.

분노와 슬픔이 더욱 한스러운 것은 동족끼리 자행한 학살이기 때문이다. 제주 4·3 만행은 차마 말을 못 한다. 학살을 면하라고 어린 자식들을 조각배에 태워 명줄이 길면 살 것이라며 바다로 밀어 보낸 부모의 마음. 9·28 수복 후 양평의 어느 마을은 씨가 말랐다. 남자들은 모두 학살됐기 때문이다.

■왜 검찰개혁에 박수를 치는가

ⓒ광주인
ⓒ광주인

요즘 우리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학살’이다. 제1의 학살, 제2의 학살. 학살의 잔치다. 이 잔치가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는가. 알 것이다. 그들이 학살하고 있으니까. 바로 언론이 만든 학살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가. 학살은 바로 언론이 만들어 냈다.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바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확하게 말하면 문재인 정권이 검찰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이 학살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국민이 검찰개혁을 검찰학살이라 생각할까.

어느 검찰 출입기자는 검찰이 기삿거리를 제공해 주지 않으면 한 줄도 못 쓸 것이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어느 기관 조사에 의하면 검찰 관련 기사 취재의 67%가 검찰 제공이라고 했다.

양심선언 하지 않아도 좋다. 왜냐면 검찰개혁에 대해 박수치는 소리가 귀를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검찰학살이라고 한다. 기사 제공을 해 준 신세를 갚는 것은 아니겠지.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은 무엇을 아는가. 눈 감고 귀 막고 사는 꼴이다. 이런 판에 얼씨구나 춤추고 있는 것이 조 중 동 황당 보도다. 가짜뉴스가 활개를 친다. 보도하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관의 제왕인가. 아닐 것이다.

기자들 머리 위에 ‘기레기’라는 덮개를 씌웠을 때 기자들 반응은 어땠는가. 처음에는 모욕을 느끼던 기자들도 이제는 화도 안 낸다. 당연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기사라고 써 놓고 읽어보라. 그게 기사냐. 한심할 것이다. 편파 왜곡 불공정 거짓말.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기레기’들의 기사를 국민들이 읽는다는 사실이다. 뉴스와 단절된 국민들이 이런 보도를 읽고 있으니 이건 도리 없이 독약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독극물을 먹이는 것과 같다.

이 못된 짓을 하는 ‘기레기’들은 말한다. 누구는 ‘기레기’가 되고 싶은 줄 아느냐고 한다. 양심선언 한 번 해 보라. 용기가 없다. 원래 기레기와 용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어디 가서 기자라고 소개하지 말라던 기자 친구는 이제 저세상 사람이다.

언론민주화 투쟁하다가 해직되고 고생하다가 세상 떠난 얼굴들이 그립다. 눈물이 난다. 이렇게 마음 놓고 욕이라고 할 수 있는 내 팔자가 얼마나 좋은가. 너무나 미안하다. ‘기레기’도 양심은 있다. 그러나 양심을 삼켜버리는 이기주의를 어쩔 것인가.

■개혁과 반개혁

무능한 줄만 알았는데 ‘선수’였다. (조선일보 1월 24일자 박정훈 칼럼)
‘2차 대학살 검찰인사’…훗날 반드시 책임 물어야 한다. (중앙일보 1월 24일자 사설)
집권세력 발 궤변과 선동…실종된 수오지심(수오지심(羞惡之心) (동아일보 1월 24일자 이기홍 칼럼)

한겨레신문 성한용 기자의 칼럼을 허락도 없이 빌려왔다. 이해를 바란다. 칼럼 속에는 위에 나열한 사설과 칼럼의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기홍은 실종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말했다. 고대로 돌려준다.

이른바 공안이라고 이름 붙은 검찰이 자행한 법 집행을 국민은 알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박근혜 시절 공안검찰은 집권세력의 손발이었고 입속에 혀였다.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이 고통을 당했는가.

국정농단이 가능할 수 있게 한 배후의 힘은 누구인가. 최악의 적폐로 상징되는 김기춘을 기억할 것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죄 없는 공안사범이 만들어져 목숨을 잃고 인생이 파괴됐는가. 그들 공안의 위력은 살인적이란 말이 모자란다. 기레기들이 즐겨 쓰는 학살이었다.

ⓒ광주인
ⓒ광주인

문재인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검찰이 제자리에 서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는 검찰개혁이라는 범국민운동으로 전개됐고 국민들은 지금 검찰개혁세력과 반개혁세력간의 전쟁을 지켜보고 있다.

‘기레기’들은 속이 탄다. 속 타는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 이들 사설과 칼럼이라고 믿는다. 기레기들의 생각으로는 검찰개혁은 두 말이 필요 없는 검찰학살인 것이다. 자신들의 날개에 영양제를 공급하던 검찰의 몰락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극이고 학살인 것이다. 그러나 정신 차려라.

■검찰개혁은 ‘기레기’도 사는 길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나 검찰 내부에는 분명히 개혁세력과 반개혁 세력이 존재한다. 나라가 온통 들끓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일에는 흐름이 있다. 지금 검찰개혁 문제도 하나의 흐름이다.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똑똑한 검사들 아니냐. 똑똑한 기자들 아니냐. 반드시 풀어야 할 흐름이다.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 것이다. 모든 문제에는 핵심 원인이 있다. 결자해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길을 두고 산으로 가지 말라.

국민의 명령이다. 가짜 충심은 사양한다. 병든 기레기 날개도 접어라. 거역하면 국민이 촛불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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