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몇 편쯤은 머리 속에

■싸움은 해도 멋지게

천도교 수운회관은 며칠에 한 번 꼭 들리는 곳이다. 종로구 경운동 457에 자리한 수운회관. 가는 곳은 1·2층에 자리한 다보성 갤러리다. 휴식공간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느 누구나 자유스럽게 드나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보성 갤러리는 1983년 개관한 이래 귀중한 다수의 고미술품과 사료를 수집해 국립박물관을 비롯한 공. 사립 각 대학 박물관 등에 공급했다. 자칫 외국으로 흘러 나갈 귀한 국보급 미술품도 소장하고 있다. 귀한 존재다.

내가 할 얘기는 다보성 갤러리가 입주한 천도교 회관 입구 옆 벽에 있는 대한민국 독립선언서 원문이다.

己未獨立宣言書(기미독립선언서)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이하 생략)

장엄한 독립선언서를 읽으며 새롭게 가슴이 뜨거워진다. 또한 분노도 되 살아 난다. 독립선언서 집필의 중심이던 한국의 천재 작가는 친일파가 됐다. 그가 누군지 잘 알 것이다. 다시는 그 같은 인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

■이런 세상도 있다

다보성 겔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은 숨을 멈춘다. 전시관에 진열된 우리의 고미술품과 청자, 백자, 불상, 서화 등. 그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선조의 숨결은 내 호흡을 통하여 가슴을 적신다.

살얼음이 무색한 정치판만 지켜보면서 바싹 매 말랐던 가슴은 눈앞에 보이는 선조들의 예술품들로 아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감탄을 토해낸다. 조상의 얼과 예술혼이 조화를 이루어 전시관 가득히 채워진 감동은 한편의 시가 된다.

다보성 갤러리가 발견 보관한 문화유산 중에는 세계 활자문화를 다시 써야할 엄청난 것이 있다.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이상 앞선 것으로 믿어지는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다. 활자 101점을 보관하다가 이번에 공개했다.

■좋은 시 찾아서 읽기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독서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사랑방 넓은 서가는 소설 필사본이 가득했다. 삼국지(三國志), 서유기(西遊記), 수호지(水滸誌),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홍루몽(紅樓) 등. 증조할머님이 엄청난 소설 애독자셨다고 한다.

그걸 내가 많이도 읽었다. 특히 삼국지는 읽고 또 읽어도 재미가 있었다. 삼국지 열 번 읽은 놈과는 말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걱정 말라. 난 나쁜 놈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선생님(후에 동국대 대학원장)은 시를 많이 외우도록 했다. 시는 외워서 늘 읊어야 된다고 하셨다. 원래 좋아도 했지만 참 많이 외웠다. 좋아하는 시를 몇 편인가 낭송하면 화가 났던 가슴도 서서히 가라앉는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시를 소개할까 하지만 실은 정치인에게 주는 새 해 선물이다. 좀 길다. 그러나 좋은 시를 소개하니 참고 읽어 주시기 바란다. 배워서 남 주지 않는다. ^^

■그리워지는 그 시절

송강 정철의 ‘청산별곡’, ‘사미인곡’ 등도 달달 외웠다. ‘정과정곡’, ‘정읍사’등도 간간이 중간에 까먹기는 하지만 외우는 시조가 많다. 시인 친구들은 거의 타계했다. 그들은 힘은 없어도 한 편의 시로 독재와 싸웠다. 독재정권의 고문후유증으로 타계한 박정만 시인이 그립다. 애송하는 시들을 소개한다.

다정가 - 이조년 시인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庚(삼경)일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子規(자귀)야 알랴마는

多情(다정)도 炳(병)인양 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길을 가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시다.

박용철의 시를 참 좋아했다. 그 중에 ‘떠나가는 배’는 나의 애송시다.

떠나가는 배 - 박용철 시인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 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소월의 시 ‘진달래 꽃’은 모르는 국민이 없을만큼 알려진 국민의 시다. 그의 시 ‘가는 길’도 아름답다. 외워 두고 때때로 읊어보자.

가는길 - 김소월 시인

그립다

말을할까

허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살아 다시 보고 싶은 친구 시인들

머리와 손에 쥔 펜 한 자루. 시인이 가진 전부다. 시인들은 나라를 사랑했다. 맨몸으로. 독재에도 항거했다. 일제 강점기에 시로서 일제에 저항했던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나는 최고의 애국시로 생각한다.

그의 시는 대구 달성공원에 ‘상화시비(尙火詩碑)’로도 기억되고 있다. 대구에서 잠시 군대생활을 할 때 음악다방 ‘녹향’과 달성공원을 많이도 찾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시인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통곡한 우리들의 시인을 기억하자. 광주의 시인 박봉우와 부산의 시인 이현우. 나는 그들의 처절한 시를 기억하는 것으로 늘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들에게 지역감정은 없었다. 아아 보고 싶다.

휴전선 - 박봉우 시인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끊어진 한강교에서 - 이현우 시인

그 날,

나는 기억에도 없는 괴기한 환상에 잠기며

무너진 한강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 위에는 낙일(落日)이 오고 있는데

그래도 무엇인가 기다려지는 심정을 위해

회한과 절망이 교차되는 도시,

그 어느 주점에 들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의 비극의 편력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취기에 이즈러진 눈을 들고 바라보면

불행은 검은 하늘에 차고,

나의 청춘의 고독을 싣고

강물은 흘러간다.

폐허의 도시 서울

아, 항구가 있는 부산

내가 갈 곳은 사실은

아무 데도 없었다.

죽어간 사람들의 음성으로 강은 흘러가고

강물은 흘러가고,

먼 강 저쪽을 바라보며

나는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을 우는 것이다.

옛날.

오, 그것은 나의 생애 위에 점 찍힌

치욕의 일월(日月)

아니면 허무의 지표, 그 위에

검은 망각의 꽃은 피리라.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나의 고뇌를 싣고

영원한 불멸의 그늘 그 피안으로

조용히 흘러가는 강.

우리는 4·19를 잊지 못한다. 독재에 저항한 젊은 대학생들이 독재의 총탄에 허망하게 쓰러졌다. 가슴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젊은 오빠들을 눈물로 바라 본 초등학생. 당시 수송초등학교 4학년이던 강명희는 어린 가슴으로 이렇게 시를 썼다.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 강명희 시인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박정만 시인은 소설가 한수산이 전두환 시절 중앙일보 연재소설이 불온하다며 보안사에 걸렸을 때 한수산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갔다. 화장실에서 삶을 마감했다. 죄 없는 착한 시인이 이렇게 죽어도 되느냐. 기가 막힌다.

법이 없어도 살 착한 시인의 마지막 시다. 제목도 종시(終詩)다.

 

종시(終詩) - 박정만 시인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어떤가. 가슴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가.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대한민국 정치인처럼 가슴이 사나운 인간이 어디 있을까. 입만 벌리면 결사투쟁이다. 그러니 사나워지지 않고는 살아 갈 도리가 없을 것이다. 왜 그토록 결사를 좋아하는가. 이제 제발 지겨운 결사투쟁이란 말만은 접어두자.

결사를 외쳐대는 정치인들은 거친 가슴을 달래자. 시위현장에서 아름다운 애국시 한 편을 낭송해 보자. 오늘 소개한 시를 읽어도 좋다. 웃으면서 싸워라.

늙은이 망령 떨지 말라고 꾸지람을 하겠지만 진정으로 드리는 설날의 고언이다. 25일이 설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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