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문제 해결을 위한 일명 ‘문희상 안’의 문제점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기업이 배상 판결을 임의 이행하지 않아 강제집행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른 추가소송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2019. 12. 18.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 및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문희상 안’이라고 함)이 발의되었다.

문희상 안의 문제점은, 제안이유의 ‘대규모 유사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 ‘정치적 해법’, ‘한‧일 국가 간 대립 국면’ 이라는 문구만 보더라도 강제동원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단지 ‘신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로 인식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작 안을 발의할 당시 피해자들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하거나 논의한 바도 없다.

문희상 안이 간과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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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강제동원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인권문제이다. 불법식민지배 상황에서 국외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겪은 인권침해에 대한 가해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입법이 이루어진다면 반길 일이다.

그러나 문희상 안은 강제동원문제를 인권문제가 아닌 ‘돈문제’임을 전제로 조문을 구성하고 있다. ‘기금마련 방법’, ‘위자료 지급방법’에 대해서만 매우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심사를 거쳐야 하고 이 후 실제 위자료를 지급받기 까지 많은 기다림과 양보를 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또한, 위자료를 지급받은 피해자들은 재판청구권을 포기해야 하고, 이미 진행 중인 소송이 있다면 ‘소취하’를 해야한다(제19조). 위 규정을 위반할 경우 재단은 지급한 위자료 전액 또는 일부를 반환시킬 수 있다(제22조).

그야말로 ‘소송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을 누구한테든 받아서 줄테니 받고 끝내라.’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 규정들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위자료를 받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과연 가해기업과 ‘화해’를 했다고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강제동원문제는 역사문제이다.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가해자의 사실인정, 사죄, 배상 등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문희상 안은 사실인정, 사죄, 배상 등의 절차를 모두 ‘배상문제’로만 치환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해 설립된 재단을 통해 추도⋅위령사업, 국외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사료관 및 박물관 건립, 문화⋅학술⋅조사⋅연구 사업을 수행한다고 하면서도(안 제8조) 정작 위 사업에 대한 세부규정은 단 한 개도 없다.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 판결 이후 추가소송을 문의하는 수많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사죄’였다.

소송이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사실, 이긴다고 해도 실제로 판결로 선고된 배상금을 지급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여도 ‘괜찮다. 이것은 역사의 문제다. 사과를 받고 싶다.’라고 말한다.

사과받지 못한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긴 세월을 참고 기다리다 사법절차를 통하여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이르렀고, 적법한 재판절차를 거쳐 일본 가해기업들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문희상 안은 역사의 흐름과 사법부 판단을 무시한 채 입법부가 ‘현재의 문제 상황’을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오만함을 담고 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지 않았다면, 한일관계가 악화되지 않았다면 문희상 안은 발의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법식민지배와 그에 따른 강제동원문제는 반복될 수 있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타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희상 안이 통과된다면, 인권문제를, 역사문제를 돈으로 해결한 선례로 남아 오래도록 비판받을 것이다.

사법부의 판결을 통해 가해자의 손해배상 책임과 배상액수가 확정되었음에도 입법을 통하여 원치 않은 화해를 당할 수 있다는 배신감과 무력감이 만연해질 것이다. 문희상 안이 통과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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