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을 파내고 새겨 넣은
우리 땅, 우리 물에서 심연을 긷는 작가

오래된 여고(女高)를 마주한 작가의 작업실. 둥그런 계단을 오르면서 맡아지는 익숙한 테레빈 냄새가 정겹다.

20여 년을 견뎠던 담양 작업실을 정리하고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8년을 훌쩍 넘었다. 천형(天刑)이다.

그림 앞에만 서게 하는 어쩔 수 없는 무엇. 그림을 놓고는 살아갈 수 없는 갈증. 그려도 그려도 채워지지 않은 결핍. 사람들 속에서도, 혼자 있어도 몸을 휘감는 절대고독.

송필용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송필용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작은 난로 하나가 작업실의 공기를 데워줄 뿐, 어디에도 온기는 없다. 작가의 목에는 벌써 두툼한 목도리가 둘려있다.

더 매서운 냉기가 작업실을 채워도 작가는 여전히 봄과 여름이 그랬던 것처럼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져도 작업실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어서는 땅·나를 살게 한 땅

보석을 만났다. 30년 전, 작업했던 그림들이 30년 만에 햇빛에 제 몸을 말리고 있었다. 대학시절 오월항쟁과 맞닥트렸고 작가는 작업 안에 참혹한 살상과 분노를 끌어들였다.

작가는 “기억에 의하면 10점 정도 그렸었던 것 같다. 대부분이 200F 이상이었으며 30년 만에 꺼내보니 3점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곰팡이 속에서 썩어버렸다. 회생 불가한 작품을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고 설명했다.

그림 속 정안수는 붉은 피 색이었다. 어머니의 정안수이면서 광주시민 모두의 정안수였다. 아스팔트 위 살상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국가폭력의 이유를 모른 채 사람들은 뛰고, 자상과 총상을 입고 있었다. 회색의 아스팔트 위는 점점이 붉은 피가 꽃잎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선명하게 붉다. 남도를 대표하고 우리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땅의 색깔이다. 불온한 생각들을 들키기나 한 것처럼 명치끝이 아려지는 핏빛처럼 붉은 색을 우리의 땅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땅의 역사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작업 안으로 끌어들였다. 1980년 오월항쟁은 내 삶은 관통했다.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도망치듯 광주를 떠나 담양으로 갔다. 국가폭력과 엄혹한 시절에도 사람살이는 멈출 수 없었고 새 생명은 땅에서 솟아올랐다. 난 국가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의 질곡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는 민중의 힘을 땅에서 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땅은 밥이고 생명이다. 혹자는 ‘대지는 어머니’라고 했다. 작가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삶의 인식을 땅에서 찾았고 푸르고 너른 흐름과 역사를 알고자 담양에서 여여(如如)했다.

걷고 또 걸으며 정자를 찾아 올곧은 선비 정신을 찾고 느꼈다. 작가는 “이 시절 생각의 시작과 끝은 땅이었다. 태어나 마지막 묻힐 곳이 땅인 것처럼 생각의 시작과 끝이 땅이 던져주는 물음표에 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걸었던 것 같다. 이때의 결과물이 바로 ‘땅의 역사(1989)’이다. 이 땅 위에서 살았고 이 땅 위를 스쳐간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서사적인 구조로 풀어냈던 작품이다."

나를 일깨워 너를 알게 하는

'학살-금남로에서'-송필용. 234×140cm_ acrylic on canvas_ 1986.
'학살-금남로에서'-송필용. 234×140cm_ acrylic on canvas_ 1986.

직선으로 망설이지 않고 쏟아낸다. 푸르고 희다. 그리고 꿈틀거린다. 대비를 이루며 정확하게 낙하한다. 귓바퀴 어디엔가 물소리가 들려오고 그림 안에서 물안개가 튕겨져 나올 것만 같다.

작가는 “땅의 역사를 체득해 갈수록 땅은 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이 갖는 힘, 물이 주는 깊음, 땅을 어루만져주고 땅을 살게 하는 힘은 결국 물에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 제 몸을 갖고 있지 않는 물. 상대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내어 변형시켜주는 물, 가두기보다는 흐르는 물성을 갖고 있는 물.

높은 곳에서 아래로 직선으로 낙하는 물. 그곳이 어디든 흐르고 흘러서 결국은 바다에 닿는 물. 땅을 적시며 유장하게 생명을 키워내는 물.

작가는 사유와 철학의 깊이를 넘어 물에 다다른다. 물과 함께한 작업의 탄생이다. 직선으로 우르르 쾅, 굉음으로 쏟아지는 폭포와 아우라지 곡선을 그리며 멈추지 않은 물도 화폭 안으로 조형되기에 이른다.

절대적 푸른색과 흰색의 재비로 강렬함으로 무장까지 마쳤다. 땅이 갖고 있는 붉은 힘과 푸르고 흰 물의 역동성이 부감법으로 조형되어 작가만의 언어를 탄생시켰다.

물과 땅의 조형 위에 금강산도 우뚝 솟아올랐다. 스무 번이 넘게 올랐던 금강산은 우리 역사의 상징이자 삶의 표상이다. 덧칠하고 또 덧칠한다.

붉은 땅이 역사로 점철된 것처럼 작가의 ‘몽유금강’이 응축된 역사로 다시 생명을 얻어가는 과정이 눈물겹다. 하늘을 향해 나팔꽃처럼 터져 오르는 몽유금강의 화법(畫法)은 붉은 땅과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이 응축된 삶의 고갱이라 해도 맞을 것이다.

작가는 다시 물을 따라 붉은 땅을 걷는다. 더께가 앉은 삶의 시간을 비워낸다. 씻고 또 씻으며 소쇄(掃灑)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작업은 여기서 비롯될 것이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21호(2019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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