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보다는 차라리

 “나라가 망하면 너희는 노비가 된다. 노비로 사느니 죽는 게 낫다.”

계백은 장검을 뽑았다. 계백의 가족은 모두 죽었다. 전해 오는 계백의 비극사다. 계백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늙은 모친은 있었을까. 어린 손주는 없었을까.

■망망대해 일엽편주

한 달 동안의 보도가 1백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단일보도가 이처럼 엄청난 양을 기록했으면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을까. 모두가 적이었다. 망망대해 일엽편주. 전쟁이라면 당연히 최후를 생각할 것이다.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가 맞이한 라·당 연합군. 결과는 이미 예측된 싸움이다. 싸움에 임하는 계백에게 남은 것은 하나. 죽음뿐.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또 있다. 조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 영상 갈무리

■한국 언론의 현주소

며칠 동안 수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어찌 될 것이냐는 것이다. 점쟁이도 불가능한 예측을 나에게 하라는 것인가.

한국의 정치 난장판을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언론 멘토단 고문을 한 덕인가. 그들을 지지해 왔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파란만장 우여곡절을 헤치고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으로 조국을 임명했다.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검찰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간다면 그 역시 권력기관의 개혁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보태고 뺄 말이 없다. 서로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 언론도 같다. 그러나 믿을 수가 없다. 검찰은 언론에 흘리고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언론과 아니면 말고 식의 기레기들은 말이 되든 말든 써 갈긴다.

9월 10일, 점심을 하면서 옆에 있는 신문을 집었다. ㅈ일보였다. 동석했던 ㅈ일보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대답은 한마디. ‘죄송합니다.’ 그가 나중에 보낸 문자는 공개하지 않는다.

기자는 소신껏 기사를 쓴다. 공정은 생명이다. 공정하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는다. 믿지 않는 기사는 화장실에 휴지만도 못한다. 백만이 넘는 기사는 모두 조국과 관련된 기사다. 아니 조국의 딸과 관련된 기사다.

그러나 조국의 범죄를 확인한 기사는 하나도 없다. 물었다. 이것이 공정한 기사냐. 대답을 못 한다. 그래도 써 댄다. 여론은 호도된다. 그것을 노리는 것인가. 검찰과 언론의 합작인가. 이것도 특권이라고 한다면 항의를 할 것인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국민 위에 있는 법무부와 검찰은 없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 국민 위에 법무부와 검찰이 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법무 검찰 개혁의 제도화에 진력하겠습니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미래의 시간, 진정한 변화와 혁신의 시간을 맞이합시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민만 바라보고, 서로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검찰은 특권계급인가. 그렇다. 왜 특권계급이냐고 이유를 밝히라면 검찰에게 물어보라. 공부 잘한 아이가 고시에 합격해 나이 30에 검사가 됐다. 사무실에 한 번 들렸다. 그들끼리 부르는 호칭은 ‘영감’이었다. 기가 막혔다. 그렇게 특권 의식은 머릿속에 박힌다.

6·25 때 기억이다. 서울 수복 후 한강 다리 건너기가 힘들었다. 도강증이 있어야 했다. 고등학생인 내 곁에 있던 젊은 사람은 분명히 도강증이 없는데 웬 청년이 나타나더니 데리고 도강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를 데리고 간 사람은 기자였다.

뻘건 줄이 모로 처진 신분증은 기자증이었다. 어디든지 만사통과. 부러웠다. 입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에서 부탁한 애들은 훈련소에서부터 원하는 부대로 배치됐다. 훈련도 받지 않고 특무대(기무사)에 파견돼서 놀았다.

내가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갔다. 당시 새마을 관련 취재는 최고였다. 현역 대령인 도지사, 군수는 대위. 최고급 음식점. 차량 편의까지 받았다. 취재가 끝나면 필수적으로 따라 나오는 봉투. 모두 부러워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정치판을 구경하게 됐다. 취재기자들에게 하는 정치인의 말은 ‘잘 부탁 한다.’ 뭘 잘 부탁하는가. 기자들의 의식이 변하기 시작한다. 노무현 의원도 죽인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대단한 그 기자는 언론사의 고위직이 됐다.

‘노무현 아방궁’과 ‘논두렁 시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엉이바위로 올려보냈다. 언론이 특권계급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하는가. 베드민턴채를 고급 골프채로 만들고 텃밭이 골프장으로 둔갑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 오보와 거짓 기사에 대한 사과를 한 기억이 있는가. 안 해도 되는가. 특권 의식이다.

■명절 잔칫상에 오른 증오와 갈등

추석은 우리의 최대 명절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가. 아침상을 받았다. 풍성하다. 한데 음식 사이에 이상한 놈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증오’과 ‘갈등’이란다.

여와 야로 갈려 서로 증오하는 이 나라의 명절 풍경. 가슴이 찢어진다. 조상님들이 마음 편안하게 송편 한 개 드실지 걱정이다.

밥 먹는 개 밥그릇 건드렸다간 물린다. 금기다. 비유가 기분 나쁜가. 검찰특권, 언론특권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가. 몰라서 묻는가. 물려고 덤빈다.

고위 검찰을 지낸 분과 대화를 나눴다. 격의 없는 사이라서 물었다. ‘검사보다 판사가 더 존경을 받는 민심이다. 왜 검사가 되었느냐.’ 검사가 더 좋다. 특권이 많다는 얘기다.

내 생각 그대로다. 특권을 부리지 않는 검사들은 땅을 칠 일이다. 서지현 검사가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을 때 칼럼을 썼다. 유부녀인 서지현 검사가 추행을 당했을 때 어땠을까.

검찰 안에서 반골로 낙인찍힌 임은정 검사가 떠오른다. 재판 때 문을 잠그고 구형을 한 임은정 검사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그냥 모른 척 넘기면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라는 신념이 임은정 검사에게 있었다.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검사들도 모두 그것을 안다. 실천을 못 할 뿐이다. 이제 세상은 달라진다. 국민이 조국 장관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특권의 포기다. 양심의 회복이다.

검찰개혁-언론개혁, 반드시 성공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경험은 스승이다. 경험처럼 훌륭한 스승이 어디 있는가. 나이 많이 먹은 것이 자랑은 아니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 보고 겪고 느낀 경험은 더없이 소중하게 여긴다. 6·25 때 같은 혈육이 죽이고 죽는 골육상쟁을 경험했다.

국가와 민족에게 충성을 약속한 군이 반란을 일으켜 군사독재라는 비극을 겪었고 남북의 비극도 모자라 동서의 증오도 겪었다. 5·18의 동족상잔은 또 무엇인가. 수유리 4·19 국립묘지, 광주 5·18 민주묘지 앞에 서보라.

독재를 증오한다. 오늘까지 지켜 온 신념이다. 그러나 왜 양심이 아프지 않으랴. 독재자를 위해 글을 썼다. 손가락을 꺾어버리고 싶지만 살고 있다. 고통을 견딘다. 양심이 운다. 속죄해야 한다.

왜 한국당을 미워하는가. 반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정통을 이은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그들은 무슨 짓을 했는가. 동족끼리의 갈등 조장이다. 불법·탈법은 전매특허다. 아닌가.

검사와 법무부 장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한 황교안은 버젓이 법을 어기고 있다. 왜 경찰소환에 응하지 않는가. 추석 기간 1인 시위를 했다.

소리 높이 소리를 지르는 그의 1인 시위가 공허하다. 이유가 무엇인가.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이 그렇게 두꺼운가. 그가 가야 할 곳은 경찰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취임이 무서워 그들이 펼친 행위는 눈물겨울 정도다.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다. 안 될 것이다. 반드시 개혁은 될 것이다. 개혁이 안 되면 나라가 망한다.

검찰과 언론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양심의 회복이다. 아무리 정권을 잡고 싶어도 억지로는 안 된다. 경험하지 않는가. 지금 그토록 목이 터지라 정권타도를 외쳐도 국민이 지지하던가. 기레기들이 그렇게 도와줘도 효력이 없다. 양심부재를 국민이 알기 때문이다.

국민의 명령이다. 반(反) 개혁분자가 되지 말라.

언론은 조국의 딸에서 5촌 조카로 방향이 바뀌었다. 언론이 써 대는 것을 보면 어디선가 정보를 흘려주는 것이 분명하다.

검찰은 아니란다. 언론이 알아서 취재한 것이란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국민은 모르는 것 같아도 검찰과 언론의 상투 끝에 올라앉아 있다. 허튼수작들 포기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검찰과 언론이 살아남는 방법은 한가지다. 양심의 회복이다.

어떤가. 지금 자기들 앞에서 굽실대면서 설설 기고 알게 모르게 이권이나 챙겨 먹는 걸 특권이라고 생각하는가. 특권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눈물지는 양심의 통곡 소리는 듣지 못하는가. 안 들리는가.

양심이란 흐르는 물과 같다. 억지로 막으면 잠시는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넘친다. 흘러넘치는 양심을 어찌할 것인가. 그때 썩은 검찰과 기레기들은 인생의 새로운 모습을 볼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으로 인간이 사는 모습인지를 알 것이다.

검찰과 기레기들은 자정의 칼을 빼라. 스스로 오욕의 덩어리들을 잘라 버릴 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시작이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내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계백이 가족의 목을 벨 때 심정은 치욕스러운 삶의 거부다. 똥통에 몸을 담그고 사는 인생을 거부하는 것이다. 검찰과 언론도 또 다른 의미의 거부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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