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달호'와 '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Music and Lyrics By)'

   

우리는 영화를 ‘본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듣는다’, ‘보고 듣는다’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시각에 의존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눈(카메라)으로 정보를 담고, 그것은 눈(사람)으로 읽혀진다.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눈으로 희로애락한다. 하지만 엄격히 말한다면 이는 틀렸다. 보여지는 것의 주변을 다양한 소리가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실 ‘보고 듣는’ 것이다.

영화가 들려주는 소리에는 대사, 음향, 음악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독립적인 소리는 음악이다. 영화음악이 영화를 떠나서도 온전하게 소비되는 이유다. 그러나 영화음악이 영화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완전한 것도 사실이다.

독립과 종속의 경계에 영화음악은 놓여있다. 영화에서 음악의 비중에 대해 말하는 것은 벅차다. 배경으로 장면에 종속되기도 하고, 전면에서 장면을 이끌기도 하고, 영화 전체를 압축하기도 하는 등….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흐르는 음악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음악이 화면보다 더 인상적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음악은 이렇듯 무의식과 의식의 제일 깊은 곳을 오가며 영화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깊게 만든다. 음악이 없는 영화를 상상하는 것은 당황스럽다. 눈만큼이나 크게 귀를 열고 영화관에 앉자.

올 아카데미 공로상은 엔리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에게 돌아갔다. 그는 지금까지 400여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우리에게는 「황야의 무법자」(1964), 「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 「Mission」(1986), 「시네마천국」(1988)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음악은 영화를 다시금 떠오르게 하고, 감정을 확대시키며, 향수에 젖게 한다. 과거의 한 시점에 잠시 머물다 돌아오는 느낌이라고 할까? 기억을 연장시켜 주는 신비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Once Upon a Time in America」속 데보라(엘리자베스 맥거번 분)의 춤과 「시네마 천국」속 토토(살바토레 카시오 분)와 알프레도(필립 누와레 분)의 자전거 씬은 우리 기억에서 이미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과 그가 작업했던 영화들을 모르더라도 음악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그만큼 음악은 매력적이고, 독립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는 증거다. 영화속에서는 영화를 숨쉬게 하고, 영화를 떠나서도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음악과 관련된 영화가 아니라도 음악이 깊게 남는 대표적인 사례다.
 
「아마데우스」(1984), 「서편제」(1993), 「파리넬리」(1994), 「불멸의 연인」(1994),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등등….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음악을 내러티브로 채택한 극영화들은 일반적으로 그 음악과 관련된 사람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또 비극적인 결말이 많다.

음악이 탄생하기까지 주인공이 겪는 슬픔, 고뇌, 두려움 등이 화면에 펼쳐지고, 열정이 음악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보여지는 삶을 통해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한다. 여기에 비극적 결말이 가미되면 음악에 대한 이미지는 굳어진다. 실화인지 허구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음악에 깊숙이 빠져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이후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 영화의 장면들은 머릿속에 오버랩된다. 잘 만들어진 음악영화들은 이렇듯 마음을 움직여서 삶과 음악 모두가 우리에게 남게 한다.

   

「복면달호」는 트로트가 소재다. 지방 밤무대 락가수인 봉달호(차태연 분)에게서 ‘뽕필’(뽕짝과 feel의 합성)을 발견한 기획사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가수왕을 만드는 줄거리다. 영화에서 트로트는 완벽하게 조롱당한다.

주인공은 시종일관 트로트를 폄하하고, 피한다. 한마디로 ‘쪽팔려서’ 가면까지 쓰고 나온다. 카메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화속 기존의 트로트 가수를 마음껏 희화화하여 기예단원을 만들어 버린다. 주인공은 트로트가 아닌 발라드를 불러서 트로트 가수왕이 되고, 마지막에는 락버전으로 편곡해 부르기까지 한다.

극중 인물들이 ‘트로트는 마음’이라고 수차례 강조하지만 그 마음은 영화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배신만 보인다.   

「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은 한물간 팝(POP)스타 알렉스 플레쳐(휴 그랜트 분)이야기다. 다시한번 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데 기회는 오고, 여자와 함께 만든 곡으로 그 기회를 잡는다. 여기서도 팝음악에 대한 시선은 고깝다.

섹스어필을 통해서 돈벌이를 하는 도구로 폄하된다. 주인공은 아줌마들 앞에서 느끼하게 허리를 돌리고, 10대 아이돌 가수는 더 못벗어서 안달이다. 영화 첫 부분에 뮤직비디오가 흐르는데 제목이 Pop Goes My Heart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여기서도 마음이 나온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주인공에게서 찾을 수 없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들은 사랑을 얻는다. 다만 그들이 부른 음악은 사랑을 위한 수단으로만  기능할 뿐이다. ‘이차선 다리’, ‘Way Back into Love'는 이 영화들에 나오는 음악들이고, 주인공들이 극중에서 부른다. 전자는 달호에게 가수왕을 안겨주고, 후자는 알렉스를 재기하게 한다.

둘 다 잘 만들어진 곡들이다. 귀에도 무리없이 쏙 들어온다. 하지만 영화와 함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지는 않다. 극중 인물들에게는 사랑을 이루게 한 추억의 곡일지는 몰라도, 관객들의 마음을 깊고 오래 움직일 수 없는 곡이라고 본다.

등장인물들을 통한 대리만족은 마음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기분이 잠깐 옮겨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음악에 스스로의 삶과 열정을 녹여내지 못하는 음악은 남들의 마음을 움직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음악 자체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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