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넝마주이에서 시민군으로, 행방불명자로
"김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관객들 당신의 몫"

지만원에 의해 붉은 점들로 채워진 5.18민주화운동의 빛바랜 사진 속의 ‘김군’.

붉은 점을 찍고 붉은 선을 그어가며 북한군이라고 우겨대는 사이 김군은 그날 목숨을 함께 했던 동지들의 기억에서조차 가물거린다. 영화도 끝내 그의 이름을 확인해주지 못한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둔이 된 김군.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이 된 김군.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넝마주이였다는 그의 삶의 단편만을 확인해주었다. 그럼에도 김군이 다시 소환한 39년 전의 진실은 그의 이름과 삶의 단편을 확인할 것을 주문한다.

그랬다. 1980년 5월은 이름과 신분의 확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늑대들이 할퀴고 간 피흘리는 도시에서 이름과 신분 같은 경계는 아무런 가치를 가질 수 없었다.

칼빈과 M1으로 광주와 광주시민의 목숨을 지키는 시민군에게, 목숨 걸고 투쟁하는 젊은이들에게 주먹밥으로 격려하고 고마움을 전했던 그 광주공동체 안에서 넝마주이였던 김군은 어쩌면 5.18민주화운동 안에서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되찾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김군 포스터.
영화 김군 포스터.

그런 그가 사라졌다.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 사라졌다. 영화 ‘김군’은 함께 목숨걸고 광주를 사수했던 시민군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통해 39년 전의 기억을 소환한다.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기억은 좀처럼 선명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희미하거나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다른 한편을 지만원의 붉은 점과 붉은 선들과 북한 인사들의 사진이 더 선명하게 덧칠하고 있다.

영화 ‘김군’은 보는 내내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래도 끝까지 영화에서 눈을 떼거나 외면할 수 없게 한다.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안 행발불명자 묘비. ⓒ광주인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안 행발불명자 묘비. ⓒ광주인

끝내는 확인되고야 마는 ‘김군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1980년 5월의 진실로 다시 소환되어야 한다.

마당으로 누가 먼저 발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내가 먼저 마당에 발을 내려놓았더라면 김군이 아닌 내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이대졌을 것이고, 그의 죽음이 내 죽음으로 바뀌었을 것이란 동지의 기억 안에서 ‘김군’은 비로소 5.18민주화운동의 진실, 더는 미룰 수 없는 진실 안으로 들어선다.

5.18역사왜곡과 망언으로 얼룩지고 있는 5.18진상규명! 그 과제 안으로 들어선 ‘김군’, 그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관객들 당신의 몫이라고 영화 ‘김군’이 말하고 있다.

김군과 같은 임들을 위한 새로운 행진에 당신도 함께 들어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옛5.18묘지(현 민족민주열사묘역). ⓒ광주인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옛5.18묘지(현 민족민주열사묘역). ⓒ광주인

넝마주이에서 시민군으로, 시민군에서 그날 이후 김군은 행방불명자가 되었다.

반드시 드러내야 할, 더는 미룰 수 없는 진실의 확인만이 온전하게 저승으로 가지도 못하고 이승에서는 존재조차 찾을 수 없는 ‘중음신’이 된 ‘김군’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바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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