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왜 수배령이

수배령이 내렸다. 전 국민을 향해 내려진 수배령이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범국민적인 수배령인가. 실제로 잡아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수배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스스로 말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리 오랜 세월이 가도 드러나지 않는다. 귀신이란 말인가.

바로 ‘양심’이다. 양심을 찾아내자는 수배령이다. 오늘의 현실은 양심의 부재와 실종을 통탄하는 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양심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름만의 존재인가.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입에 올리고 있는 양심인가. 얼마나 그리워하는 이름인가. 그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양심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이런 고백을 하지 않을까.

얼굴을 들고 세상에 나갈 수가 없다. 나를 보면 양심이 맞느냐고 얼굴 좀 보자고 한다.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다. 숨어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

입만 열면 양심을 말한다. 특히 세상에서 조금 알려진 이른바 지도자란 인간들은 입만 열면 하는 말이 양심이다. ‘솔직히 양심적으로 말한다.

거짓말을 한다면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는다’ 얼마나 좋은 말이냐. 그러나 등을 돌려 돌아서는 순간 그의 말은거짓이다. 벼락도 말짱 거짓이다. 너무 부정적인가.

■양심이란 무엇인가

ⓒ한국방송 영상 갈무리
ⓒ한국방송 영상 갈무리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쳐 19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 출옥하자 성당에서 촛대를 훔친다. 미리엘 신부는 자기가 준 것이라는 거짓말로 장발장을 구해준다.

잃어버렸던 양심을 되찾은 장발장과 법과 원칙을 중시하며 장발장을 뒤쫓는 자베르 경감. 여기서 양심을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가.

매일 언론을 장식하는 많은 기사 가운데 빠지지 않은 것이 삼성 바이오로직스(biologics)와 연예인들의 문란한 성 관련 문제. 그리고 차마 자식들 앞에서는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김학의·윤중천의 고약한 성 추문.

여기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모두 죄가 없다는 것이다. 피의사실은 모두가 ‘아니다’ 딱 한 마디다. 아니라면 믿어야 하는가. 바로 여기에 숨어있는 양심을 찾아내기 위한 수배령의 이유가 있다.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대통령이다. 그는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의 한 마디는 세상에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죄진 인간을 살릴 수도 있다.

문제는 그의 양심이다. 한국처럼 많은 대통령이 범죄자로 구속된 나라가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천 만의 국민이 추운 겨울밤 촛불 들고 거리로 나와 쟁취한 헌법수호와 독재타도는 세계의 자랑이었다. 해외에 나간 동포들이 자랑스럽게 어깨를 펴고 큰소리 쳤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독재타도 헌법수호’ 구호를 듣는다.

한국당의 황교안과 나경원이 외쳐대는 소리다. 기가 막히지 않는가. 독재와 헌법파괴의 추종세력이 누군가. 독재에 충실했던 심부름꾼이 누군가.

어디서 독재타도니 헌법수호니 하는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대통령과 대담을 하는 기자가 당당하게 독재 운운하는데 대통령이 독재자란 말인가.

박정희·전두환 앞에서 그따위 소리를 했으면 기자는 어떻게 됐을까. 햇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황교안·나경원은 독재타도 헌법수호를 외쳐댄다.

그래서 우리는 실종된 양심을 찾아야 하는 절대적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이다.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 황교안·나경원류의 사이비가 헛소리하지 못하도록 양심 찾기에 앞장 서야 한다.

■배고픈 서러움을 아는가

매도 맞아 본 놈이 아픈 줄 안다. 밥도 굶어본 놈이 배고픈 걸 안다. 황교안·나경원에게 배고픈 게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가 한 말이 있다.

“한국인은 참 요상하다. 배고프면 빵도 먹고 초콜릿도 먹고 과일도 먹지 왜 꼭 밥만 먹으려고 드느냐”

나는 안다. 15세 소년이 배가 고파 아카시아 순을 삶아 간장에 무쳐 먹던 기억. 남의 집 고구마밭에 들어가 손가락만 한 고구마를 훔쳐 먹던 기억.

보리밥 한 솟을 앞에 놓고 너무 먹어 배는 터질 것 같은데 입에서는 여전히 잘도 받아들이는 끝없는 식욕.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을 나는 이해한다.

지금 세계는 배고픈 북한 주민들을 돕자고 식량을 보낸다. 어떤가. 우리는 나 몰라라 외면을 해야 하는가. 호랑이처럼 무서운 시어머니 미국도 식량 보내기는 눈을 감아주기로 했다. 그러나 황교안·나경원의 한국당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반대다. 민주당 안에서도 시기를 조절해야 한단다.

먹을 게 없어서 난리인데 시기라니. 무슨 빌어먹을 시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냐. 굶어 죽은 다음에 재사 상에 쌀밥 올려놓을 작정인가. 양심이 있느냐. 이런 인간들 굶겨서 배고픈 걸 알도록 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완급이 있다.

황교안·나경원에게 애원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늙은이가 애걸한다. 한국당에서 먼저 북한에 식량을 보내자고 해라. 한국당의 지지율이 엄청나게 오르는데 기절초풍을 할 것이다. 왜냐면 인간의 양심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황교안의 눈물, 눈물의 의미를 아는가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황교안이 시민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왜 울었는가. 세월호 아이들이 가엾어서 눈물이 나오던가. 굶주림의 고통을 알았는가. 그렇다면 북한에 식량을 보내는 데 앞장서라.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라. 거짓 눈물이면 벌 받는다.

45년 전인 1974년 4월 25일,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며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 8명의 무고한 국민을 대법원판결 18시간 만에 사형 집행, 사법살인이란 오명을 세계에 떨쳤다. 그런 독재의 후예가 한국당이다.

한국당의 뿌리인 ‘박정희·전두환’은 헌법을 파괴한 10월 유신을 자행했고 5·18 민주화운동을 압살한 주범이다. 지금도 그들은 ‘5·18 유공자’들을 괴물집단이라 부르고 5·18은 폭동이라고 한다.

독재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그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다. 얼마나 공허하고 위선적인가.

황교안·나경원은 독재타도니 헌법수호니 하는 씨도 안 먹힐 소리를 이제 입 밖에도 내놓으면 안 된다. 저렇게 하늘이 푸르지 않은가. 황교안·나경원은 독재의 법 집행으로 고통받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독재시대에 말 한마디 못하던 이른바 기레기들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 왜 기레기로 불리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녹슨 훈장 같은 조·중·동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聞)’자다. 그러나 많은 기자는 ‘물을 문(問)’으로 잘못 안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다시 한번 명심해라.

숨어 살던 양심이 국민의 수배령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양심은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었다. 양심을 말하면 웃었다.

검찰에 출두한 김학의는 모든 것을 부인했다. 아무 죄도 없다는 것이다. 죄지었다고 자인하는 혐의자를 본 적이 있는가. 법을 아는 김학의다. 증거를 코 앞에 들이대도 아니라고 부인하는 범죄자들이다

다시 장발장으로 돌아간다. 그토록 장발장을 괴롭히던 자베르가 자살을 한다. 그 과정을 설명하면 너무 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

바로 양심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회복한 양심은 그로 하여금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의미를 상실토록 한 것이다. 불행한 인생이다.

양심에 대한 수배령이 빨리 해제되기를 기원한다. 양심 스스로가 아무 두려움 없이 이 세상에서 얼굴을 들고 당당하게 사는 세상이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양심을 말하면 바보가 되는 오늘의 세상에서 양심이 당당하게 행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가.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제 양심에 대한 수배령을 해제하자. 숨어있는 모든 양심이 당당하게 밝은 세상으로 나오도록 하자. 그게 바로 한국의 지도자들이 할 일이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