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아빠가 딸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광주학살! 민중항쟁! 광주사태! 민주화운동! 5.18은 이렇듯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단다. 그만큼 5.18민주화운동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어제 전두환의 광주재판을 보면서 어쩌면 어른들의 복잡한 세상이 정치라는 것이어서 차라리 너희들은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5.18문제는 단순히 기성세대들의 정치가 아니라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너희 중에 한명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집단따돌림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기억을 생각하면 아마도 이야기가 쉽게 들릴지 모르겠다.

11일 광주지방법원을 나오는 전두환씨. ⓒ광주인

광주는 지난 39년 동안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확인하고, 국가권력을 강제로 차지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까지 살상하는 범죄를 저지른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힘들고 외로운 투쟁을 계속해 왔었다.

그 결과 전두환을 비롯한 1980년 당시 쿠데타 세력들은 대법원에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처벌을 받았고, 5.18민주화운동이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 주장하고 잇는 불순분자들에 의한 폭동이 아니라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저항권의 시민항쟁으로 그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단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오랫동안 광주는 외딴섬처럼 고립당해 왔고, 진실은 철저하게 은폐되었으며, 오히려 광주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노력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들의 소행으로 매도당하기도 했었다.

광주의 고립과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에 대한 왜곡과 은폐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현실이 어제 전두환의 재판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죄를 지은 자와 범죄행위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 간의 화해는 우선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범죄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 진실에 기초하여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이루질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 아닐까?

11일 오월어머니들이 광주지법에서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광주인

그런 점에서 전두환은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때나 그가 법정에 세워져 단죄를 받을 때나 어제 다시 출판물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다시 재판정에 설 때나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은 여전히 과거의 불행한 사건쯤으로 묻어둘 일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전두환의 재판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지난 촛불시위 때도 기무사령부에서는 비상계엄을 계획했고, 그 때와 똑 같이 수많은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생각이었다고 한다.

과거의 진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불행했던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그 불행한 역사는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이 겪어 온 아픈 경험이란다.

동시에 이제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역사적 유산, 그것이 어떤 평가를 받는 역사이든 그 모든 역사를 확인하고 기억하고 더 발전시켜가야 할 몫이 너희들에게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과거의 불행을 완전하게 청산하지 못한 것은 미안한 일이다.

부슬비를 맞으며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전두환을 기다리던 5.18가족들 중에는 부모형제를 잃은 사람들도 있었고, 1980년 이후 39년의 세월 동안 신체적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부상자들도 있었다. 

다시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구속되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두환을 향해 할 수 있는 것이고는 마음으로는 전두환의 진정한 사죄였을 것이고, 밖으로는 그 마음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고함으로 내지르는 것이 전부였다.

11일 오후 재판을 마친 전두환씨가 차량을 타고 광주지법 정문앞을 통과하려다가 시민들의 저지에 막혀 있다. ⓒ광주인

나와 가족과 이웃들에게 그토록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그 책임자를 보면서도 광주의 이 사람들은 분노와 회한을 물리적으로 해소하지 않고 속으로 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광주의 여전한 비극이고 고통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면 한다.

반면에 초등학생들까지 나선 광주시민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미동조차 하지 않는 전두환의 그 뻔뻔함과 위선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5.18가족들의 가슴에는 또 한 겹의 회한과 분노의 그늘이 더해졌다는 것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란다.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여러 방법들이 주체와 세대들 저마다 달리 하고 있지만,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직 추념의 단계가 아니라고 말하고, 또 일부에서는 이제 축제의 장으로 승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모든 주장의 바탕에는 ‘진실’과 ‘기억’이라는 너무도 분명한 전제조건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나는 가벼운 말일지 모르지만 5.18민주화운동이 사람들의 기억 안에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연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연구실장.
허연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연구실장.

기성세대로서 우리들의 방식이든, 너희들 나름대로의 방식이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가치가 민주, 인권, 평화의 이름으로 너희들의 삶에 의미 있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건대 어쩌면 너희들의 생동하는 삶은 우리 어른들에게는 추억 하나하나를 쌓아주는 것이고, 우리 어른들의 삶은 과거의 반추를 통해 너희들의 삶이 조금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역할을 보태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너희들의 삶과 우리들의 생애가 늘 함께 만나서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이기도 할 것인바, 그 방법 안에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우리들의 삶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한 작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이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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