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토포' 등 초기작 개봉 앞두고 방한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76) 감독이 영화 홍보차 내한했다.
그는 1994년 국내 개봉된 '성스러운 피'(1989년)로 널리 알려진 칠레 태생의 멕시코 감독으로 독특한 정신세계를 영화 속에 투영해 '영화계의 이단아' 등으로 불린다.
'성스러운 피'는 국내 개봉 당시 부분삭제돼 반쪽짜리 영화로 상영됐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시네필에게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방한은 '엘 토포'(1970), '홀리 마운틴'(1973) 등 초기작 두 편의 국내 개봉이 성사되면서 이뤄졌다. 두 영화는 최근 미국 정식 개봉에 맞춰 HD(고화질)로 복원된 무삭제 필름으로 15일 필름포럼과 씨네큐브에서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백발의 감독은 "영화 홍보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아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어처럼 항상 물살을 거스르려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영화는 의식을 깨우는 도구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감독과의 일문일답.
--동양적인 색채가 강하다.
▲'엘 토포'가 10년 전에 미국에서 개봉됐다. 서부 영화인데 동양적인 느낌이 많은 영화다. 영화를 만들 당시 차이나타운에서 홍콩 영화를 많이 봤다. 명상 수련도 하던 때다. 도교사상에 흥미를 느껴 영화 속에 이를 투영했다. '홀리 마운틴'에도 불교사상과 도교사상, 연금술 등을 집어넣었다.
--영화 제작 당시의 얘기를 듣고 싶다.
▲영화는 자본이 필요하다. 초기에 '환도와 리(Fando y Lis)'를 찍을 때 돈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주중에 일을 해서 돈을 모으고 주말에 영화를 찍었다. '환도와 리'는 당시 멕시코 영화와는 전혀 달랐다.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더라(웃음).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마 소녀가 돼지를 낳는 장면이 문제였던 것 같다.
--작품을 만들 때 어디에서 영향을 받나.
▲한 시대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 그 중에는 종교도 있다. 그렇지만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시(詩)다. 시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야기를 짓고, 의상을 만들고, 음악과 편집, 연기까지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영화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나.
▲세상을 바꾸고 싶다. 내가 온전히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도 세상을 보면 불편한 점이 많다. 동물은 인간의 큰 스승인데 우리는 동물을 먹는다. 인간은 모두 로봇처럼 변하고 있고 도시는 시멘트 무덤 같다. 인생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예술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가 아닌 인간의 치유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점 등을 사람들은 알아야만 한다. 영화는 내게 의식을 깨우는 도구다.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밤마다 영화를 한 편씩 본다. 주로 동양 영화다. 이 시간을 통해 한국 영화를 많이 접했다. '왕의 남자' '괴물' '음란서생'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무수히 많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 영화의 새로움에 놀랐다. 주제ㆍ연기ㆍ테크닉 등이 기존 영화와는 다르다. 한국 영화는 홍콩, 일본 영화를 앞선 지 오래다.
미국 영화는 현재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똑같은 철학ㆍ장면ㆍ기술 등을 반복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13살짜리 어린애를 위한 영화일 뿐이다. 방한기간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과 만날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작가와 일해보고 싶다.
sunglok@yna.co.kr
(끝)


<모바일로 보는 연합뉴스 7070+NATE/ⓝ/ez-i>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연합뉴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