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에서 보듯 곡성은 첩첩 산중이지만 오히려 그 탓에 섬진강이라는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관광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 옛날 심청이 팔려간 뱃길과 기찻길이 사이좋게 어깨동무하여 구례를 향해 달리다 한숨 돌려 가는 압록 다리에 이르면 샛강이 하나, 오른 쪽으로 제법 넓고 길쭉하게 뻗쳐 잔잔한 물줄기를 실어다 주고 있으니 보성강이다.
 
 그 구절양장의 허리춤쯤 해서 모처럼 작지만 깊숙이 열린 들판이 수줍은 듯 반기는데 이른바 이재백의 단편 「돌각담」에 나오는 목사동이다. 아미산이 그 부챗살을 펴고 비스듬히 누워 곰방대처럼 빨아들인 봄 햇볕을 한가로이 쬐고 있는 한적하고도 아담한 마을이다. 
 
 섬진강 매화가 소들소들 해진 꽃 비늘을 벗을 즈음이면 기다렸다는 듯 마을이 온통 파르라니 흰 배꽃 세상을 여는 것이 꼭 “이효석의 메밀꽃”을 더 몽실몽실 수놓아 아예 꽃밭 채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배꽃바다가 해일처럼 밀려오는 산그늘을 좇아가면, 동그마니 돌담 그늘을 드리운 채로 깔끔하게 단장한 초로의 안방마님 같은 한옥이 고즈넉이 둥지를 틀고있고, 그 입구에 늙은 느릅나무가 아치를 그리고 있는 길을 살짝 비켜서서 공손히 허리를 낮춘 사랑채가 손님을 맞고 있다.

   
  ▲이재백씨가 작업실 '희구당'에서 글쓰기를 준비하는 모습. ⓒ줌뉴스  

그가 서재 겸 작업실로 사용하는 희구당(喜懼堂)이다. 기쁠 때도 항상 조신하라는 뜻의, 대를 이어 세월의 먼지를 털어 내온 편액이 아늑한 시공의 은은한 향기에 취하게 하는 방에는 역시 대를 이어 손때 절은 고담준론을 머금은 고서들이 사방으로 병풍을 두르고있다.
 
경향의 묵객들이 사랑방처럼 들고나는 발길에 이골이 난  부인이 가리지 않고 늘 새 손님처럼 반갑게 일일이 챙기며 잠시의 노독과 스스럼을 씻어주는 것도 희구당(喜懼堂)만의 아름다운 풍속도다.
 
 옛 사람들이 살아왔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많은 흔적들이 얽히고 설킨 황토 구릉마을, 그 입구마다 자그만 비문이라도 세워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아픔이, 그리움이, 분노가, 함께 하는 마음이 절절이 스며있다고.....
      ―작품집 「돌각담」작가의 말, 4쪽 
 
 마치 몸과 마음을 둘로 쪼개듯이 사회적 현실로부터 문학을 분리시켜 오직 문학만의 순 밀도를 추구하는 창조적 미시담론의 생산자들이 있다. 반면 문학도 삶의 일부분인 만큼 현실과 문학을 따로 보지 않고 삶의 궤적과 일치하는 문학을 지향하는 실천적 거대담론의 집행인들도 있다. 대개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으로 대별해 온 문학사의 뜨거운 화두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전자는 사람과 작품이 따로국밥처럼 겉도는 경우, 아무리 우수한 작품일지라도 실패한 인격의 교언영색으로 그 진정성을 훼손당한다. 후자 또한 문학인은 문학을 통하여 참여해야 하는 문학적 현실참여의 본분을 잊고 문학적 치열보다 전투적 사회개혁에만 진력하는 탈 문학적 외도의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는 전자가 문학적 성취로 반사회적 행적을 면죄 받으러드는 것처럼, 후자도 사회 운동의 과시적 공적만으로 수신과 제가에 소홀한 불성실을 위장하려드는 경향도 적지 않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격과 작품과 문학적 현실참여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경우를 진정한 문학인의 텍스트로 꼽는다.

 그런 흔치 않은 모범이 바로 평생을 고향 농촌에 뿌리박고 살며 일과 창작을 아우르는 이재백 작가이다. 절망, 참담, 자괴, 막막함...죽음보다 더 짙은 색깔의 언어를 어디 가서 찾을까.

 고샅길 외진 곳에 서 있는 앙상한 홰나무 가지에 까치들의 울음소리는 물론 발소리도 그친 지 오래 되었다.
       ―작품집 『돌각담』 작가의 말, 4 쪽

 목사동 배 마을 공동 출하장 뒤뜰에는 산등성이를 닦아 작품이라도 빚듯이 일구어 놓은 배 밭이 미끄러질 듯 달려와 손님을 맞는다.

배나무마다 작가 내외의 손길이 지문처럼 새겨져 있는 마디마디 근육질의 가지가 뿌리를 향해 고개를 여미고 있다.

 한편 문명의 획기적 전환기인 노마드 시대에 접어들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뚜껑 열린 소주병 속 알코올처럼 다투어 대처로 뛰쳐나갔다. 그리하여 농촌은 솎아 내고 난 콩나물 시루처럼 세월과 비례하여 허전해지기만 했다. 이제 농촌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도농 간의 격차에다 수입 개방이라는 치명적 악재까지 겹쳐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그는 천년 고향을 지켜내려는 절박한 구심력의 벼릿줄을 명줄인 양 움켜쥐고 정중동의 치열한 삶을 지켜간다. 무분별한 원심력의 결과물인 도시화(유목)가 가파를수록 그 반대 축인 구심력을 다지려는 그의 농촌(정착)에 대한 열정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가 원시농의 늪에서 잠자던 이웃을 일깨워 조상 대대로의 고향인 목사동 일대를 배 수출 단지로 조성한 것이나, 수원지 부근에 설치하려는 쓰레기 소각장 반대 투쟁에 앞장 선 것도, 수몰지구 이주민의 애한을 안타까이 재조명하는 것도, 모두가 그런 맥락에 다름아니다.

 “왜 서울 유학을 하고도(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셨습니까?” 라는 우문(愚問)에 작가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 그거? 농촌에 살며 농촌을 쓰기 위해서였지. 지금도 후회는 없어.”
          ―작가와의 대화

 그의 작품은 그가 역사와 민족과 사회로부터 빌려 쓴 은혜의 원리금을 환원하는 문학적 현실참여이다. 그는 사회운동의 일선에 나서서 깃발을 들고 목청을 높이는 대신 작품을 통하여, 그리고 묵묵히 내실을 추구하는 농사로 자신의 탯줄이자 젖줄이며 인간성의 사막화와 자연파괴를 일삼는 도시문명의 근원적 대안인 농촌의 존재가치를 북돋운다. 대부분의 이웃이 쌀 수입 반대 시위를 하기 위해 상경한 날도 그는 마을 공동답의 물꼬를 살피고 대체작물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 전에 소수문학이나 변방문학으로 쇠락한 농촌문학을 자신에게 부여된 숙명이나 의무처럼 고집하는 것은 거의 시대착오에 가까운 고독한 외길이다. 그런데도, 아니 그러기에 그는 손수 씨뿌리고 가꾸는 손이 아니고서는 감히 쓸 수 없는 농촌만의 끈끈하고 고유한 정서를 실록이라도 남기듯 되새겨 놓는다. 넘치는 외국어의 물결 속에서 야생화처럼 흩어져 숨어있는 모국어를 갈고 닦는다.

 점토적 휴머니티와 맛깔스런 서정이 살아 숨쉬는 그의 첫 작품집 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전쟁 때 치열한 격전지였던 고향을 무대로 야기된 민족 분단의 상처(「돌각담」「두 친구」「나루터 전설」), 조상 대대로 가꾸어 온 삶의 터전이 개발논리에 떠밀려 수몰지구로 내몰리는 애한(「마지막 배란기」「흔적을 찾아서」), 수원지 부근에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서는(「상여 울음소리만 남았다」) 절박한 농촌의 문제적 현실을 다루고 있다.

 “자네가 정말 목사동으로 내려온단 말이제? 저 돌각담을 다시 쌓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제?
 덕배가 느닷없이 내 뺨에 자기 뺨을 비벼왔다.
 “세월이 허문 돌각담을 사람의 손으로 꼭 다시 쌓을 필요가 있겠는가?”
              ―「돌각담」33쪽
 
  때로 부조리하고 근시안적인 사회상을 고발하는 진정서 같은 작품 속에도 항상  상보적 화해와 따뜻한 인간성의 회복을 통한 자체 해결의 의지가 고여있다. 어쩌면 미구에 불어닥칠 지도 모르는 도시문명의 파멸을 구원할 농촌에 다시는 그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채근하는 씻김굿이자 준엄한 메시지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집『돌각담』이 우수문학 추천도서로 선정된 것은 그의 안팎이 한결 같은 창작 활동에 대한 주변의 각별한 관심과 격려임은 물론이려니와, 한편 작가 스스로 무욕(無慾) 탈속(脫俗)의 자신에게 베푸는 고독한 자기확신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다.  

   

그에게 농한기는 없다. 낮에는 배 밭에서 논으로, 논에서 또 배저장고를 오가느라고 쉴 새가 없고, 밤에는 밀린 원고나 새로운 작품을 붙들고 밤을 지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바지런한 걸음마다 작품에 대한 구상이 무르익고, 질박한 문장 구구절절마다 흙 냄새로 물씬하다. 

 배꽃이 진 자리가 하루 다르게 푸르러져 차츰 손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무렵에도 그가 저장고 깊숙이서 꺼내 손수 깎아주는 배 맛은 여전히 시원하고 ,달고, 사근사근하기만 하듯, 사철 한결같은 배 맛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녹아들어 아스팔트 먼지에 찌든 독자들의 심금을 아련히 적신다. 

 그는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은 지극한 성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히 어떤 비범과도 바꿀 수 없는 밀도와 가치를 지닌다. 그는 남의 눈에 도드라지게 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품이어서 그만큼 안으로 자신을 갈무리한다.

 그 질박한 외유내강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숨은 열정과 강직과 온화가 상호 적절한 긴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한결같은 자아의 균형과 평화를 유지하는 중력으로 작용한다.

  자꾸만 그가 독백처럼 뒷전에 흘리던 한 마디가 맴돈다.
 "요즘 힘들어 누가 농사짓겠어, 그래도 농사지으며 글 쓰려면 굼뜨진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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