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상에는 약 800속(屬) 3만 5천여 종에 이르는 난과식물(蘭科植物)이 있으며, 극지방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나 열대지방이 다른 지역에 비해 그 밀도가 더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약 39속 80여 종의 난이 자생하고 있으나, 자생란에 대한 관심이 적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 중국, 일본의 자생란을 개량한 동양란과 미국이나 유럽에서 원예화한 서양란을 구입하여 기르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는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는 배양품종의 가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 이외에도 자생지가 남부지방에만 한정되어 있는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우리나라 자생란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난의 어원은 나비난초屬 난초의 덩이진 뿌리가 고환을 닮았다 하여 고환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르키스’에서 오늘날 오키드(Orchid;난초)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계절에 따라 각양각색의 꽃을 피울 뿐 아니라 향기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약 1,500여 년 전부터 난을 재배했다고 전해지며, 이웃 일본도 본격적인 난 재배역사가 200여 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옛 선비들의 벗으로 사군자 소재로 오르내렸을 뿐, 난을 배양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30년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배양토나 농약, 비료를 비롯한 자재는 물론이거니와 배양기술도 뒤져 있어 많은 분야에서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애란인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그 동안 난에 관련된 서적의 보급과 전시회 및 모임을 통해 난인구가 크게 늘었고 개개인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고는 하나, 산지가 한정되어 있고 희귀품종은 극히 일부의 애란인이 소장하게 됨에 따라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문제들을 보게 된다.

난의 잎은 가냘프고 부드러우며, 휘되 꺾이지 않아 선비의 절개나 여인의 지조에 비유되었고, 얌전한 규수를 일컬어 ‘봉심이 단정하다’고 하였는데, 난의 꽃을 보면서도 이 말을 곧잘 하는 것을 보면 오래 전부터 난과 여자, 특히 미인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난의 꽃은 부엽토 밑에서 약 9개월 이상 꽃망울로 추운 겨울을 넘기고서야 꽃을 피우는 인내가 배어 있으며, 꽃에는 은은하고 그윽한 청향까지 간직하고 있어 ‘幽谷의 佳人’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렇듯 난을 생각하면 선비, 미인, 순결, 지조, 우정 등 좋은 의미들만 연상되어지는데, 옛 선비들은 왜 난을 기른다고 하지 않고 ‘난을 친다’고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난과 일체감에서 비롯된 표현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깊은 우정을 뜻하는 고사 성어들을 보면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이런 모습에 비추어 보면 요즈음 우리의 모습은 부끄러운 점이 없지 않다. 의리나 우정보다는 난에 비중을 더 두는 사람이 있고, 질이 떨어진 외국 난을 우리나라 난으로 속여 파는 일이나, 무분별한 한 채로 인한 자생지 훼손, 애란인의 마음마저도 훔쳐가 버린 난 도둑 등등. 이 모두가 ‘난은 곧 돈’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빚어낸 결과이며, 옛 선비들이 보여주었던 애란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난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어둡고 번잡한 시대에 왜 난을 배양하는지. 그것은 어쩌면 우리 삶의 창틈에 스며드는 한 줌의 바람과 한 줄기 빗물 때문일 것이다. 이 땅에 부는 바람과 내리는 비는 초원 같은 폐원의 끝에 피었다가 지는 들풀의 새 촉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런 푸르고 슬픈 바람, 싱그러운 비라면 온몸으로 바람과 비를 맞으며 들꽃이 아무렇게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길을 걷고 싶다. 몇 푼의 돈으로 표상되어지는 그런 난인과 난계의 위상이 아닌 가운데서 나는 그런 비바람을 흠뻑 맞으며 싱그러운 영감에 젖어 내 마음의, 우주의 표상의, 천년의 풀잎의, 그런 난과 더불어 살고 싶다.그리고 나는 한 가지 신념만은 가지고 있다.

아무리 떼밀고 다그쳐도 이 땅에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리며, 들꽃은 들녘의 길섶에 아무렇게나 흐드러지게 피었다 진다는 것, 나 또한 푸르고 슬프면서도 싱그러운 그런 비바람을 맞으며 들꽃을 찾아 들길을 헤매게 될 것이라는 것, 그런 동안 이 어둡고 번잡한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더 진화되어진 그런 난은 새 촉을 틔우고 꽃을 피워 청향을 내뿜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말이다.

정을식님은 전남 보성군 출신으로 197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당선 이후 시 소설을 써오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회원, 국제펜클럽 회원입니다.

정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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