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 40여년을 영화와 함께 했다. 젊은 시절은 시가를 입에 물고 잔뜩 찡그린 「황야의 무법자」(1964년)였고, 불만 가득한「더티 하리」(1971년)였다.

찡그림과 불만은 얼굴에 주름을 남겼을지 모르지만, 함께한 세월은 인생을 보는 깊은 안목과 연륜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은 「밀리언달러 베이비」(2004년)의 프랭키에 가까워 보인다.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죽어가는 젊은 권투선수의 병상을 지키며 책을 읽어주는…. 긴 세월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살아보니 인생이란 이런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나이든 선생님의 얼굴이 보인다.

그의 이야기에는 화려함이나 긴장을 통한 강요나 주입이 없다. 오히려 사실을 차분하고 담백하게 말함으로써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느낌이 깊게 남는다. 세월에서 얻은 곰삭은 것들은 공감대라는 느낌을 통해서만 올바로 전달되는 것이리라.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미개봉)와 한쌍이다. 태평양전쟁 중 이오지마섬을 무대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미국인과 일본인의 시각을 각각 교차시켰다고 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개의 시선도 흥미롭지만, 그 접점이 어디인지가 못내 궁금하다. 뒤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앞 영화를 통해 의미를 연장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미국은 돈에 허덕인다. 달러를 마구 찍어서 전비를 충당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국민들은 점점 더 전쟁에 냉소적이 되어간다. 

이때 이오지마에서 날아온 한 장의 사진은 상황의 돌파구가 된다. 미해병대가 이오지마섬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이 연출된 사진은 미국인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하기에 충분하였고, 그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미국정부는 전쟁경비를 모으는데 사진과 그 속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이용한다. 연출된 사진이 이미지를 만들고, 이 이미지는 돈을 만들고, 결국 돈이 전쟁을 이어간다.

영화는 이미지의 생성과 소비의 과정을 비판적으로 그린다. 이미지 속 주인공인 세 병사는 이 이미지에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 진실을 말하거나, 조용하거나, 오히려 이미지를 적극 이용하려 하거나…. 하지만 이미지는 냉정하다. 이미지는 그 속의 인물들의 삶과 상관없이 자생력을 얻고, 동상(銅像)으로 만들어져 현재까지도 소비되고 있다.

감독은 이미지의 안팎을 속속들이 파헤쳐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그들 모두가 ‘우리의 아버지들’(Our Fathers)이었다고 고백한다. 전장에서 죽었는가, 살아남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그 아버지들이 영웅이 아니라 ‘사람들’이었음을 강조한다. 휴머니즘을 매개로 반전을 말한다기 보다, 전쟁의 시대에 삶의 일부로 전장을 거쳐갔던 ‘사람들의 삶’이 핵심이다.

하나의 영웅이 아닌 ‘사람들’을 이야기하기에, 제목은 하나의 깃발(A Flag)이 아니라 ‘깃발들’(Flags)이다. 깃발 각각은 개개인의 삶이 되고, 그것이 아버지들의 참모습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의 중심도 ‘사람들’이 아닐까? 섬을 방어하는 일본군의 모습에서도 영웅을 발견하기는 힘들 것 같다. 삶 속에서 전쟁을 맞이하고 죽어가는 ‘인간들’이 담담하게 그려질 것이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돈을 위한 이미지를 생산하기 보다는, 일왕을 구심점으로 하는 충성의 이미지를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미지에도 감독의 시선은 곱지 않을 것이고, 초점은 개개인의 삶일 것이다. 짧지만 조심스럽게 두 영화의 접점과 차이를 예상해 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영화들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법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삶은 시작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악(惡)으로 비춰지는 삶에도 너그러운 편이다.

과거를 보여주며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방식에 가깝다. 죽음을 앞둔 이의 머리맡에서 ‘당신은 왜 그렇게 한평생을 못되게 살았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열정을 가지고 의미있게 살았고, 혹 과거의 쓰린 기억일랑 잊어버리고 가세요’라고 누구나 말하고 싶어 할 것이다.

76세의 노장이 세월 속에서 쌓아온 삶의 깊이와 폭은 이런 방식으로 담담하게 다가온다. 부담스럽지가 않다. 까닭은 개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그것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그의 영화속에서 죽어 마땅한 삶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가 이 진지함과 따뜻함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우리들은 영화속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우리네 삶에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감독은 그리 많지 않기에 소중하다. 인생 대선배가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삶에 대해 겸손의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 더 감동이다.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에서 또 다른 삶을 만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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