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아랫목(구들목: 온돌방에서 아궁이에 가까운 쪽의 방바닥으로 불을 때면 먼저 데워지는 부분을 말한다) [출처: 어학사전]

시골에서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아랫목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아궁이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보니 아랫목의 장판은 늘 검게 그을린 상태로 영역표시가 났던 곳. 

아침식사를 하고 나면 두꺼운 겨울 외투나 솜이불로 공기 밥을 묻어 두기도 했다. 지금처럼 보온시설이 안되었던 그 시절에는 아랫목이 보온 창고이기도 했다. 

추운 겨울밤 이면 따뜻한 아랫목을 중심으로 도란도란 화롯가에 둘러앉아 고구마나 군밤을 구워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던 추억의 단상들... 지금도 전기와 난방시설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는 여전히 아랫목은 진행형이다. 

어머니는 된장과 청국장을 담그기 위해 해 년마다 콩 농사를 조금씩 지었다. 가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와 콩밭에서 도리깨질을 했다. 흙먼지와 함께 널뛰는 노란 콩이 갑옷을 벗으면 1차 콩 수확은 끝이 난다. 

밭에서 수확한 콩은 다시 널따란 집 마당에서 가을 햇볕의 온기를 담아내는 자연 건조작업을 거치게 된다. 농약을 하지 않았던 유기농 콩은 질 좋은 것보다는 벌레가 파먹은 콩도 적지 않게 많았다. 몇 날 며칠 눈을 뜨면 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선별작업을 했다. 

콩을 고르는 동안 어머니의 혼잣말..“징그럽다, 징그러워.. 염병할 벌레가 다 파먹어 제대로 된 게 없네”
 

마루에서 콩 선별작업을 하고 있는 어머니 강복덕 님 ⓒ석산 진성영


깊어가는 가을이 지나고 겨울 초입에 들어서면서 어머니는 더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셨다. 막내아들과 같이 수확한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어 먹자고 했다. 그때가 2017년 11월 21일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1주일 전에 일이다. 

메주콩을 불려 체에 밭쳐 물기를 뺀 후, 소쿠리 위에 광목천을 깔고 콩을 감쌌다. 어머니는 옛날 집 아랫목 위치가 어디냐고 내게 물었다. “어머니, 지금은 난방시설이 되어 있어 옛날 아궁이 아랫목 의미가 없어요” 했더니, “아냐, 그래도 거기가 따셔”라고 했다. 아랫목이 있던 작은방에 메주콩을 놓고 이불과 겨울 외투로 덮고 4일을 기다렸다. 제법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질 무렵, 어머니는 작은 항아리에 담으면서 20일 후에 먹으면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함께 담았던 ‘아랫목 청국장’은 20일의 숙성기간을 기다리지 못한 채, 어머니는 끝내 뇌경색으로 쓰러져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에서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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