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걷고 또 걸어 묵정(墨丁)에 이르다

내심 놀랐다. 처음 본 작가의 얼굴이 우울해 보였다. 뭐랄까, 생의 모든 것을 통과해버린 느낌. 삶이란 터미널을 통과하면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를 빠트리고 잃어버린 느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작가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서도 그것이 무엇에서 연유한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작가를 만나러 간 곳은 학교였다. 4층 한국화 실기실 한 쪽에 작가의 작품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열고 닫는 문이 없었다. 누구나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의자를 마주하고 앉아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의 작업은 이해가 쉽도록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었다. 눈에 띠게 서로 다른 소재와 재료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작업에 관한 설명을 하는 동안 작가의 얼굴과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그래서 또 놀랐다.

먼 길을 걸어왔다.
 

이선복 화가. ⓒ광주아트가이드


먹을 앞에 두면 그동안 삶을 송두리째 덮었던 검은, 혹은 흰 빛들이 생각났다. 맞다. 검었고 희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학교 진학을 미루고 아산 조방원 선생님을 찾을 때 작가의 삶은 검은 빛이었다. 아산의 품 안에서 웃고 울고 교육을 받을 때는 흰 빛으로 투명한 날이었다.

작가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찾았던 아산 스승님은 내게 그림을 그려서는 먹고 살 수가 없으니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며 “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열다섯 무렵에 다시 스승님을 찾아가자 그때서야 내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붓을 쥐어주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고 말했다.

그가 그림에 한발 한발 다가가는 여정을 듣는 동안 내내 먹먹해졌다. 우울한 낯빛과 그의 몸을 통과한 세상의 잡다함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짐작이 가고 이해가 왔다.

겸손했다. 작업을 풀어가는 과정 역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되어 보였다. 그려진 선들보다 여백이 더 많은 작업 앞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어린 시절 살았던 판잣집의 풍경에서 유년의 그가 보였다. 기다림도 보였다.

부모가 일을 하러 새벽 일찍 집을 나선 후 어린 아이는 긴 시간 동안 방안에 누워 있다가 심심함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골목으로 나왔을 것이다.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하고 자치기도 하면서 늦은 시간 돌아올 부모를 기다렸을 테다.

하늘은 언제나 먹색에 가까운 푸른빛이었고 줄이 닿지 않은 꼬리 연을 하늘에 풀어 날리며 유년의 어린 아이는 미래를 꿈꾸었을 지도 모른다. 하늘에 닿고 싶은 꿈. 지금 살고 있는 판잣집을 건너 더 멀리 저 높은 산을 넘는 꿈.

언제나 첫 걸음을 뗀다.

엎드려 처음으로 먹에 붓을 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때 느꼈던 전율. 감동. 먹먹함. 이것은 작가로 살아온 그동안 여정과 여전히 같은 선상에 있다. ‘무등산 호랭이’가 이렇게 다가왔다. 민화의 형상으로 호랑이 한 마리가 성큼 다가와 그를 껴안았다.

눈꺼풀 없는 크고 붉은 눈은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매 시간 채근하고 우뚝 솟은 등허리의 무등산 입석대는 작가에게 본향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며 각인시켰다. 작가를 키운 곳도 작가를 있게 한 곳도 언제나 한 결 같이 보듬어 준 무등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등산을 형상화한 작업은 작가에게 또 있다. 보름달 우뚝 둥실 떠 있다. 검은 먹으로 무등산은 다가왔다. 뾰족한 봉우리 없는 무등산은 어쩌면 그에게 넓고 푸근했던 스승의 품안과도 같았다. 스승에게 선물 받은 200년 전 조선지는 간찰과 함께 그에게 왔다.
 

이선복 - 무등산 만월 240×120cm. ⓒ광주아트가이드


작가는 조선지에 “무등산을 형상화 하는 작업을 하면서 관념산수보다는 현대적 해석으로 관람자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매 번 첫 작업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는 중이다.”고 설명했다.

그의 무등산에서는 호랑이가 뛰어다니고 능선을 따라 줄지어선 낡은 집들 뒤란에는 서걱이는 바람소리를 안은 대나무가 있었다. 섬세하게 조형된 대나무 이파리들은 바람을 일렁이며 무등산의 소리와 무등의 겸허를 작가에게 한 잎 한 잎 전달하고 있었다.

네 부모가 있다. 스승의 가족과 그의 부모였다. 네 분은 작가의 삶에 아픔과 절망, 희망과 깊이를 동시에 선물해주었다. 살아오는 동안 우울했고 치유가 필요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 역시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익혔다.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며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무를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한다. 그 일환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각과 촉각이 함께 공존하는 작업을 계획 중이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09호(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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