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중심도시 어떤 미학적 비젼을 가지고 있는가?"

 "문화원형자원의 기획 및 연구에 관한 경험 없는 언론인 출신" 낙하산 논란 

노태우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정부 내 현안 가운데 원자력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의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가동된 것은 1978년 4월이었다.

이기표 아시아문화원장.

그런데 원자력발전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핵폐기물을 처리할 곳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생각해 보라. 집을 지어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도록 화장실을 만들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이 문제가 시급한 현안이었겠는가?

군부독재 시절의 관리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비밀주의’였다. 아주 은밀하게 그들만이 똘똘 뭉쳐 어떤 결정을 내리고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다.

정보장교 출신의 대통령과 그 수하들에겐 이런 방식의 현안 처리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을 터…. 당시 주무부서는 과학기술처였다. 장관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원자력 전문가였던 정근모 박사가 발탁되었다. 대통령의 뜻은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정보가 새나가면서 예정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거의 무정부상태의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의 반발이었다. 정부의 다음 선택지는 언론계를 움직여 반대여론을 무마시켜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언론인 출신 장관을 발탁하였다. 김진현 씨가 바로 그였다.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답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시길 바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직은 아시아문화원이다. 전당 전체의 운영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화와 관련하여 광주의 핵심적인 도시 아젠다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의 핵심적인 조직인 때문이다.

문화원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 원형자원의 기획 및 연구·개발을 통해 직접 전시·공연·페스티벌 등의 형태로 창작·제작하고, 결과물인 문화콘텐츠를 국내 및 아시아 시장에 마케팅 및 유통하는 시스템을 갖춘 21세기형 국제문화예술 교류·협력기관을 지향”하는 기관으로서의 정체성 제시는 이 기관의 위치에 관한 3가지 강조점을 알려 준다.

첫째, 아시아 문화원형자원의 기획 및 연구 개발사업. 둘째, 이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전시/공연/페스티벌 등의 창·제작 사업. 셋째, 그 결과물의 마케팅 및 유통사업 등이 그것이다.

지난 4월 13일 문체부는 아시아문화원장 선임을 발표하였다. 이기표 씨가 그다. 아시아문화원이 소속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현재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 정권이 바뀌고도 해결되지 못한 채 장기간의 수장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지난 해 이후 몇 차례 전당장 선임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선임하고자 하는 인사 자신의 문제나 지역사회의 여론에 이해 번번히 무산되었다. 이런 국면에서 정부의 선택이 이번 언론인 출신이자 캠프 출신의 이기표 원장이다.

그가 아시아문화원장에 임명된 사실을 두고 지역 문화계 안에서 반발 여론이 거세다. ‘비전문가’이며 ‘언론인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생애 대부분의 경력을 지역 언론현장에서 쌓아온 사람이다.

한 가지 더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캠프 출신이기도 하다. 그가 캠프 내에서 맡은 일도 미디어 분야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2008년 석사학위논문은 대선후보에 대한 지역 텔레비전방송의 보도 경향을 연구한 것이다.

확실히 그가 문화(행정)와는 다소 다른 쪽에서 경력과 경험을 쌓아온 인물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문화원형자원의 기획 및 연구에 관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문화관련 콘텐츠의 창·제작에 관여한 사실도 없다.

또 그는 문화 콘텐츠의 유통 및 마케팅 같은 분야에서 관련 경험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의 선임을 둘러싸고 ‘낙하산’ 시비가 이는 이유이다.

이는 자칫 “언론인 출신이 문화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데 대한 지역 문화계의 불편한 시선”이라는 차원으로 호도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사태의 본질은 이보다 다른 측면에 있다고 본다. 전당장 공백 사태를 뒤로 하고 먼저 그 하위조직인 아시아문화원장을 선임한 것은 사실 전당장 선임 문제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여러 갈등들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의도가 지역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건설이라는 지역 현안과 관련하여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라는 것으로 읽혀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로컬리티를 내면화하고 있는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건설이라는 문화 아젠다와 관련하여 “어떤 미학적 비젼을 가지고 있는가?”에 모아져야 한다.

또 그가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를 이루기 위해 “어떤 정책적 합리성을 견지해 왔는가?”를 물어야 한다. 취임 이전은 물론 이후에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앞서 지적한 어떤 것들도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윗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102호(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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