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누비는 사진작가 김 향 득

부딪히는 곳은 항상 현장이었다. 바른 목소리를 내는 역사의 현 장에는 작가가 있었다.

광우병 반대집회, 세월호 진상규명과 세월 호 걷기 현장,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 표지석이 있는 곳, 혹한 속의 촛불집회 등, 보이지 않은 작은 목소리를 내는 외면당한 현 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오며 가며 작가와 마주쳤다.

노란리본과 함께 늘 달려 다녔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등에 지고 상기된 얼굴로 자발적으로 움직 이며 기록으로 남겼다. 작가를 보며 무엇이 그로 하여금 길 위에 서 서성이게 하는 지, 전국의 같은 장소를 계절과 함께 돌며 민주 화운동 표지석이 있는 성지를 찾고 기록하게 하는 지, 스스로 갇 힌 소명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역사의 현장 _마음 밭을 갈다
 

김향득 민중사진가. ⓒ광주아트가이드

시키지도 않은 일. 누군가 들여다보지도 않은 일, 그럼에도 불구 하고 결코 멈출 수 없는 일. 오랜 시간이 지나고야 비로소 그 중요 성을 인식하는 작업, 바로 작가가 하고 있는 아카이빙(archiving) 작업이다. 2006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누볐다.

작가는 “고3때 5·18민중항쟁을 겪었다. 독서회 활동을 계기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불거진 학내문제가 거리로 나왔고 5·18민중항쟁으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어린 나이였 지만 역사의 거대한 물결은 나를 관통했다. 항쟁기간 동안 구도청 과 YWCA에 시민들에게 알리는 대자보 붙이는 일을 했고, 시내 를 비롯해 외곽을 돌며 광주의 항쟁상황을 알리는 투사회보를 배포했다. 5월27일 새벽 YWCA에서 계엄군에 의해 연행되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살아있어 늘 불편했다. 항쟁기간 동안 어린 학생이던 자신을 격 려하며 배려해 주던  ‘형’들의 얼굴이 잊혀 지지 않았다. 대학을 다 니는 동안 무거운 납덩이 하나가 심장에 덜컥 놓여있는 것만 같았다.

작가는 “울화통이 터져서 살 수가 없었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미미했고, 이미 속병이 도져 몸도 마 음도 지쳐있었다.”며 “그러다 자연이 내게로 왔다. 들꽃이 눈에 보 였고 야생화 이름을 알고 싶어 카메라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길 위의 시간

자연의 싱그러운 꽃과 신록이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초록 의 산과 나무를 들여다보며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삶의 물음표는 작가를 자연에 머무르게 그냥두지 않았다.

역사는 흘러가고 있었고 모습과 모양을 바꾸어 작가에게 다시 소명을 갖게 했다. 2007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 전야제 촬영을 계기로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치유의 과정이라 여겼던 자연의 너 그러움에서 진일보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었다.

삶이란 현 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은 것이다. 201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은 삶의 변곡점이었다. 2006년부터 촬영해 온 구도청, 다시 말하면 광주민주화운동의 가 장 중심 현장이었던 구도청의 원형에서부터 훼손의 현재까지를 시간과 역사성의 전시로 보여준 것이다.

구도청의 원형과 훼손의 현장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이 전시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들었고 현재만을 보아왔던 많은 사람들에 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태풍으로 죽어가는 회화나무를 후계목으로 잇게 했고, 소공원을 만들어 냈으며 더 많 은 사람들에게 1980년 5월의 항쟁기간 동안 구도청에서 산화한 열사들을 기억하게 했다.

작가는 말한다. “누군가 내게 왜 구도청 촬영에 집착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촬영하는 구도청은 카메라 앵글 안에 전면만 있지 않 다. 측면, 후면 그리고 하루 시간의 흐름과 계절까지 기록할 수 있 는 모든 것을 촬영한다. 난 사진으로 말하고 싶었다. 항쟁기간 동 안 이곳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까지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시민을 향해 최초 발포를 명령한 사람도, 헬기를 띄워 무차별 살상을 자행한 사람도, 쓰레기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사 람도 밝혀진 것은 없다. 숨겨진 진실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난 살 아남았다. 내가 할 일은 영령의 뜻을 기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구도청의 현재의 모습을 기록하는 까닭이다.”

작가는 아카이비스트이다. 단지 기록(recording)이 아닌 시간을 기록하고 보관하며 자기만의 저장(archiving)을 하고 있기 때문이 다. 작가는 오늘도 고문의 흔적으로 비틀거리는 다리로 거리에서 ‘지금’을 기록하고 있다.       

** 윗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102호(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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